10월 21일, 20대 아빠가 뇌병변장애를 지닌 3살 아들을 안고 인천대교에서 바다로 뛰어 내렸다는 기사를 봤다.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이들은 무사할까? 그리고 아이는 장애인 등록을 했을까였다.
뇌병변장애는 대체로 임신 또는 출산 중에 발생한다. 아이가 뇌병변장애였다면 부모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주는 큰 기쁨, 이를 테면 손으로 딸랑이 흔들기, 앉기, 서기, 걷기 등등을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불어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아이는 보고, 듣고, 말함에 있어서도 장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그 부모의 일상이 평범한 발달과 성장을 보이는 아이들의 부모와는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진단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이 부모는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을 졌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눴다. 아빠를 욕하는 사람들과 이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세상이 지켜줘야 한다는 사람들. 참고로 난 후자다.
인간다운 삶과 권리, 등급부터 받아라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한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 보장 그리고 사회 활동을 위해 제정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라 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해당하는 자로 장애의 정도에 따라 등급으로 구분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한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장애인으로 등록 신청하고 등급을 받아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복지시책에 따라 장애아동 가정의 소득기준과 장애등록 또는 의사진단 유무에 따라 월 14만원~22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자의 소득기준에 따라 바우처 형태로 차등 지원 됨에 따라 전국가구 평균소득 150% 이상에 속하는 경우 전액 본인(부모)부담이 해야 한다.
발달재활서비스 또는 언어치료의 경우 치료센터에 따라 치료 1회 당 3만원에서 10만원까지 비용 차가 크다. 때문에 정부의 바우처를 지원받아 고가의 재활치료를 받는다 해도 소득 기준에 따라 회당 최고 6만원까지 자기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바우처를 받는 서비스 기관이라야 가능하고, 그외 치료기관이라면 온전히 자부담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참조1>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시행2013.10.31] [법률 제11977호, 2013.7.30, 일부개정]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시행2014.6.30] [대통령령 제25435호, 2014.6.30, 타법개정]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2014.8.6] [보건복지부령 제254호, 2014.8.6, 타법개정]
<참조2> 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시책 의료지원
<참조3> ‘바우처’란 정부가 특정 수혜자에게 교육, 주택, 의료 따위의 복지 서비스의 비용을 직접 보조해 주기 위하여 비용 지불을 보증하여 내놓은 전표를 뜻 한다.※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자세히 보기]
예를 들어 2014년 전국 3인 가구 평균소득 150% 이상의 가정(월 소득 약 640만원)이 1명의 미등록 장애 아동을 양육하면서 대소근육 발달을 위한 운동치료와 감각통합 재활치료를 받고, 언어 치료와 청각능력 치료를 중급 치료기관에서 받는다고 했을 때 월 치료 비용은 96만원(1회당 6만원, 월 4회 24만원, 4개 치료)이 든다.
이때 그 가정이 맞벌이를 한다면 아이 치료를 위한 이동 서비스나 돌봄 서비스가 추가적으로 40~100만원 가량 들어간다. 결국 아이 치료비용으로 월 최고 200여 만원을 쓴다. 가구 소득의 15~30%에 해당한다. 결국 치료비를 제외하면 이 가구의 평균소득은 월 440만원으로 전국 3인 가구 평균소득 100%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자녀 하나를 양육하기도 빠듯한 요즘 장애 치료까지 힘들게 자부담으로 안을 게 아니라 장애인 등록을 해서 바우처든 지원이든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점에 있어서 우리 나라의 장애인 복지정책에 대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의사들도 10세 미만의 영유아에게 발달장애 판정을 쉽사리 내리지 않는다. 자칫 어린 나이에 장애 진단을 하는 것은 오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느린 발달 양상을 보이긴 하지만, 학령기 아동이나 성인처럼 발달이 확실이 형성된 것이 아니기에 장애가 의심되는 상태라 하여 대체로 ‘발달지체’ 진단을 내린다.
이렇듯 장애가 의심되는 발달지체아동의 부모를 비롯해 뇌병변장애와 같이 확실히 장애 진단을 받을 법한 아동의 부모도 아이를 쉽사리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을 등급으로 나눈다는 것 그리고 한 번 등록되면 죽은 뒤에도 등급이 남는 ‘장애인 등록제’ 때문이다. 아이의 성장 발달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한 평생 따라다닐 장애인이란 낙인을 자신의 경제상태 때문에 선택한다는 것은 두려움과 죄책감이 남기 때문이다.
언젠가 치료센터에서 치료비 미납으로 상담사가 보호자에게 장애인 등록 하는 건에 대한 대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할머니 인듯한 보호자가 노여워하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내 손자가 소 랍니까? 어디 급을 매기오? 그건 못하겠네.”
사각지대를 찾아 더 촘촘하게
이건 어디 까지나 비용적인 부문만 본 것이고, 실제로 장애아를 양육하는 가정은 과중한 돌봄 부담과 죄책감으로 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때문에 발달장애를 지닌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를 대상으로 집중적인 심리적, 정서적 상담 서비스를 절실하다.
부모가 건강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그래야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부모들도 이런 간단한 인과관계를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록 상담의 기회가 있더라도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신을 위한 것은 후순위로 미루기 때문에 부모들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나마 아이가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그곳의 부모대기실에서 자기와 처지가 비슷하고, 경험에 공감하는 부모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받곤 한다. 아이 양육과 교육에 대한 정보부터 벙어리 냉가슴 앓 듯 말하지 못했던 것들도 편히 이야기 나눈다. 그러면서 같이 웃고, 울며 위로해 주곤 한다. 따로 상담시간과 장소를 정해두고 부모에게 와라 가라 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치료 받는 시간 중에 부모 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을 해도 좋을 것이다.
아들을 안고 투신자살한 아빠는, 엄마는, 아이는 사회적 돌봄을 받아 왔을까?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치료비 지원이나 부모 상담과 같은 치유 프로그램은 받아 봤을까? 우리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일생을 살 수 있도록 진정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든다.
나와 달라, 우리와 달라 차별 받는 이들은 사회 속에 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난 불편 없어,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기회가 주어져, 살기 좋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라면 차별받지 않는 이들 역시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