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가 함께하는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의 2021년도 생계비 지원 대상은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하는 농·어업노동자, 돌봄 노동자였습니다. 농·어업노동자는 이주노동자인 경우가 많고, 섬이나 산간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에 지원사업 소식이 닿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반갑게도 순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순천이주민지원센터’를 통해 스무 명의 이주노동자가 지원사업에 신청해주셨고, 센터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 어업노동자 몇 분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스무 명의 노동자, 스무 개의 아픈 이유
● 한 분은 선박 수리를 위해 용접을 하다가 화상을 입었습니다. ● 두 분은 어업·양식업 작업 중 앙망기(어획 그물을 끌어올리는 기계)에 손가락이 말려서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 세 분은 허리통증 때문에 일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픈데도 억지로 일하고 있습니다. ● 네 분은 작업도구(밧줄, 통발)를 사용하다가 또는 작업 중 미끄러져 다쳤습니다. ● 한 분은 건설 현장에서 전기톱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 두 분은 원인 모를 신체 일부의 괴사가 있습니다. ● 일곱 분은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등 소화기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
스무 명이 겪은 일은 모두 산업재해일까요?
‘산업재해’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업무는 근로복지공단에서 맡고 있습니다. 일하다가 사고가 발생해서 눈에 보이는 상처나 장애가 남았다면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대체로 산업재해라고 봅니다. ‘일하다가’ ‘다친 것’이 눈에 보이기에 인정받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셈이지요. 달리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이나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흔히 ‘골병’이라고 부르는, 허리, 어깨, 무릎 등에 발생하는 근골격계질환이 그렇습니다. 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가 ‘일 때문에’ 골병이 들었음을 입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식도염이나 위염은 어떠할까요. 일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문제로 언뜻 여겨지고, 실제로 어업노동자의 식도염과 위염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업노동자의 의식주는 선주 또는 사업주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 특성상 배에 머물러 빠르게 일해야 하다 보니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 하고, 정해진 업무 시간이 아니어도 사업주가 부르면 수시로 나가서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인터뷰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은 김 양식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성수기에는 하루에 15시간까지도 일을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나마 김 양식을 할 땐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작업하기 때문에 ‘퇴근’이란 게 있지만, 어선에서 일할 때는 꼬박 이틀을 내리 지새운 적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어업노동자는 취약한 노동환경에 놓여있습니다. 어업노동자가 겪는 다양한 건강 문제가 일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산업재해’를 겪어도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하는 어업노동자
산재보험은 모든 노동자가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강제 가입 보험입니다. 어딘가에 고용된 노동자라면 개인이 직접 가입하지 않고,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가 신고하는 방식으로 가입합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산업재해를 겪어도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나중에 사업주가 밀린 산재보험료의 일부 금액을 부담합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당연히 적용되고, 이주노동자의 등록·미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적용됩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일하다 아프게 되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스무 가지 사례 가운데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은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비교적 산업재해로 인정되기 쉬운 큰 사고를 겪은 여덟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 ‘산재보험은 무조건 가입’이고, 등록 여부와는 상관이 없는데도 이분들이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임·어업 및 수렵업 중 5명 미만인 사업은 제외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명시된 위 규정 때문입니다. 업종만으로 산재보험 가입제외 대상으로 명시된 유일한 규정입니다. 농업, 임업, 어업, 수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려면 법인으로 등록된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5명 이상인 사업장에서 일해야 합니다. ‘어업’이라고 하면 대부분 커다란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에 대부분은 5명 이상이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혹시나 5명 이상인 곳에서 일한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산재보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려고 여쭤보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이주노동자 중에서 5명 이상인 사업장에서 일했다고 답한 분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통계에 잡힌 수치만 보아도 연간 약 140명의 어업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는 상황이지만, 어업노동자는 산재보험에 가입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입니다.
다친 후 어업노동자가 마주하는 생활고와 치료비, 작업 중 벌어진 사고도 외면하는 사업주
노동건강연대가 어업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주신 순천이주민지원센터는 전남지역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지원사업을 하고, 일하다 다치는 등 여러 이유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과 생필품을 지원합니다. 담당 수녀님께서 꼼꼼히 작성해 오신 일지 덕분에 사고 날짜, 경위, 증상 등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일지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다친 후에 완벽히 몸이 낫지 않아 일하지 못하거나, 예전만큼 일하지 못하다 보니 잡부를 하며 적은 임금만 벌고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 씨는 몇 개월에 걸쳐 화상을 치료하고 업무에 복귀한 경우입니다. □□ 씨는 비 오는 날 배를 수리하라는 지시를 받고 용접을 하다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무리한 요구를 받고 일하다 다쳤는데도 사장은 치료비와 생활비 지급을 외면했습니다. 다행히 순천이주민지원센터와 주변의 도움으로 □□ 씨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회복하는 데 두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래는 □□ 씨의 상담기록일지 중 일부입니다.
…배 수선 중 용접기계에 의해 열화상 손이 불편해 아무 일도 못하고 있음. 사장님이 생활비 도와주지 않음. 다음 방문 때 생활지원 필요함 손 화상은 나았으나 생활이 어려움. 바다에 조업을 나가도 낙지, 문어 등을 일당으로 받아옴. 낙지, 문어 별로 좋아하지 않음. 쌀 10kg 지원 |
소비자에게 노동자는 쉬이 보이지 않습니다.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수많은 농·어업 노동자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신선하고 먹음직스럽게 포장된 농·수산물을 보면서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까지 떠올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건강하지 않은 노동, 아프고 다쳐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기억해야만 합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던 □□ 씨의 집에 이르는 길이 떠오릅니다. 고흥 교외에서도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했습니다. 마을엔 다른 한국인도 분명 살고 있었는데, □□ 씨의 낡은 슬라브 집만은 마치 꼭꼭 숨겨놓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도 노동의 연결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감추어져 있는 듯한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를 밝히는 관심과 고민이 함께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글 ㅣ변수지 노무사(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사진 ㅣ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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