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저자 홍은전 인권기록활동가와의 만남
한 채팅창에서 “혹시 관심 있는 분 계시면요!”라는 말과 함께 어떤 링크를 받았습니다. 궁금해서 눌러보니 커다랗게 ‘<그냥, 사람>의 저자 홍은전 인권기록활동가와 만남’이 적혀있었어요. 그 페이지를 본 순간, 거창하지만 운명인가? 싶었어요. <그냥, 사람>은 지난 1월 페이지마다 인덱스를 붙이며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며 그저 스쳐 갔던 수많은 사람과 친해지고 싶게 만든 책이었거든요. 때문에 홍은전 저자와의 만남은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에 주저 없이 참여 신청을 하고 공유해주신 분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후 까먹지 않으려 모바일 달력 앱을 켜 8월 31일에 ‘홍은전 작가님’이라 적어두었습니다.
사소한 것에 담긴 진심 어린 마음
그러는 사이 참가비 10,000원을 낸 저를 아름다운재단은 ‘기부자’라고 불러주며 몇 번의 안내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행사 하루 전날 소포를 하나 받았습니다. 거기엔 참여하면서 드시라고 비건 쿠키와 나눔티가 담겨있었어요. 특히 캐모마일을 평온티로, 페퍼민트를 쿨티로 기부자들의 이야기와 엮어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홍은전 인권기록활동가님의 칼럼 3편을 QR코드로 담은 안내문도 담겨있었습니다. 종이 택배 포장, ‘thank you’ 문구와 스마일이 그려진 스티커까지 사소한 것에도 진심을 담은 작지만 큰 선물꾸러미였어요. 이 덕분에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마음을 잇는, 산책>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비장애인의 권력을 마주한 시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8월 31일 저녁, 화이자 백신 1차를 맞은 다음 날이라 접종한 왼팔의 욱신거림과 함께 온몸에 피로감이 퍼져있었지만 빈 종이와 펜을 찾아들고 몸을 의자에 똑바로 앉혔습니다. 왜인지 홍은전 인권기록활동가님의 이야기는 그렇게 들어야 할 거 같았습니다. 아마도 이 시간 함께한 사람들은 다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상상하며 활동가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람들의 생애 속에서 참사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활동가님은 과거의 나로부터 3번 정도 떠났고 그건 삶을 바꿀 만큼 큰 앎의 순간이라고 말하며 오늘은 첫 번째 순간인 2001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시절에 대해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활동가님은 당시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공부도 잘되지 않았고, 결과도 좋지 않아 막연히 좋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노들장애인야학의 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활동가님은 장애인을 만나서 자신이 비장애인임을 알았고 즉 자신이 권력을 가진 사람,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닫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일상 vs. 싸워서 쟁취해야 얻을 수 있는 일상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은 ‘버스를 타자!’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에 나오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가는 길, 누군가는 타지 못하는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이는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걸 자신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순간. 이 멀미 나는 괴리감을 좁히려고 그리고 없애려고 활동가님이 이 일을 하는 것이구나, 짧은 감상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존재다. 나는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거기엔 엄청난 용기와 힘이 있다.”라는 활동가님의 말에 잠시 멍해져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찌 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이 정확하고 정말 그렇다고 깊게 공감했습니다. 돌아보면 활동가님에게 노들장애인야학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앤 것이 아니라 장애라는 렌즈로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본 경험이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기부하는 것도 행동이다”
성실히 활동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적고 공감하다 보니 1시간가량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Q&A 시간의 마지막으로 활동가님은 기부자에게 ‘나는 왜 기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물음에 어떤 기부자는 “세상을 위한 작은 변화를 위해서”라고 답했고 또 다른 기부자는 “자신이 기득권자라는 걸 알게 된 후, 가진 걸 조금은 내려놓기 위함”이라고 적었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실천 중 하나가 혐오에 맞서 행동하는 곳을 후원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라고요. 얼마 전, 고민했던 건 ‘그래서 내 자리에서 뭘 할 수 있을까’였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보고, 직접하기 어려운 건 앞장서서 활동하는 곳을 지원하는 거로 행동하자고 정리한 참이었습니다. 기부는 어쩌면 여러 실천 중 가장 쉽고 간단하기에 기부자 자신도 행동이라 여기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직접 경험했었습니다. 월급 받는 직장을 나와 불안정한 수입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제가 가장 먼저 한 건 기부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대략 1년 정도 거치고 이제서야 다시 기부를 시작하고, 소액이라도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가 기부라고 여기며 말이죠. 홍은전 활동가님도 마무리 인사로 “기부하는 것도 행동이다”라고 덧붙여주셨어요. 그 덕분에 더 많이 행동해야겠다는 마음을 새기며 소중한 만남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음을 잇는 나눔산책> 홍은전 활동가님과 만남을 통해 비장애인으로 스스로 가진 권력과 행할 수 있는 폭력을 마주했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가진 비장애인으로서의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더 예민해지기로 한 이유가 되었죠. 그리고 기부가 소극적인 게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임을 깊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전 요즘 여전히 불안정한 수입이지만 조금씩 기부를 늘려가자고, 벌이가 좋아지면 기부액도 키워보자고 허황되지 않은 꿈이 꾸고 있습니다. 이 꿈을 이룰 수 있겠죠?
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고, 어떤 앎은 내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린다 – <그냥 사람> 중에서
글 | 홍슬기 기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