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 vol.8 농업의 지속가능성 편에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농업의 맥과 가치를 이어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여성농민 생산자 공동체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어가고 있는 언니네텃밭 이야기입니다. |
토종씨앗, 들어보셨나요? 우리 땅에 토착화된 씨앗으로 세대를 거쳐 전승되어 온 씨앗을 뜻하는데요. 토종씨앗은 우리 땅에 최적화되어 있고, 다시 심을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지만 글로벌 종자 회사가 시장을 독점하고, 씨앗에 로열티를 부여하면서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언니네텃밭은 토종씨앗 보유 현황을 파악하고, 토종씨앗을 받기 위한 채종포를 운영하는 등 토종씨앗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여성농민 생산자 공동체가 만든 제철 농산물을 담은 꾸러미를 정기배송하고 있죠. 언니네텃밭에서 움트고 있는 변화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여성농민의 안정적인 생산 기반, 지속가능한 농업이 됩니다.
Q. 언니네텃밭은 2009년 4월 첫 꾸러미사업을 시작해 벌써 12년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꾸러미 사업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A. 시작은 전국여성농민총연합의 식량주권사업단 ‘언니네 텃밭’이었어요. 2009년, 강원도 횡성에서 처음 공동체를 만들었고, 제철꾸러미를 만들어서 보내드리는 사업을 했죠. 다품종 소규모 농사를 지어서 소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드리는 거예요.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협동조합으로 분리를 해서 지금의 ‘언니네텃밭’이 되었습니다. 제철 꾸러미를 통해 여성 농민들은 생산비를 보장 받게 되고, 생태농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지원 받습니다. 소비자들은 건강하고 다양한 제철 먹을거리를 제공 받죠.
Q. 소규모 농사를 짓고, 또 직거래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가격 책정이나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한데요.
A. 농산물 가격은 농민이 받을 금액에 약간의 수수료를 붙여 매깁니다. 여성 농민들이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또 어떻게 하는지 알기 때문에 시중가격보다는 조금 비싸게 책정하고 있어요. 그래야 지속적인 생산 기반이 갖춰지니까요. 다행히 소비자들도 좋은 먹거리라고 생각하기에 지속적으로 소비를 하시는것 같습니다. 실제로 온오프라인 장터의 고객들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Q. 구성 중에 1인 꾸러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도입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A. 1인 가구가 많이 늘다 보니까 꾸러미 식품들을 다 소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1인 가구에 대한 고민 끝에 꾸러미를 내게 되었고요. 이제 건강이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분들을 위해 봉강 공동체하고 채식 꾸러미를 만들게 되었어요. 또 요리 뚝딱 꾸러미라고 사람들이 시간이 없고 바쁘니까 재료를 다 주고 조금만 노력하면 해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만들었습니다.
토종씨앗으로 우리 식량 주권을 지킵니다.
Q. GMO(유전자변형농수산물)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토종씨앗* 지키기가 함께 소개되곤 하는데요.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GMO 제조회사에서는 씨앗을 특허권으로 독점하고, 매년 씨앗과 농약을 비싸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거죠. 환경 파괴, 다양성 훼손 등의 이슈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 땅에서 이어져온 토종씨앗을 먹고, 또 지키려 하고 있어요. 토종씨앗은 1회용 씨앗이 아니거든요. 씨를 심고 자라면 또 받아서 심을 수 있죠. 지속적 생산이 가능한 구조고요. 생산 공동체에서 토종씨앗을 심고, 농산물을 기르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토종씨앗은 우리 땅에 토착화 된 씨앗, 형질이 고착화 되어 매년 안정적인 수확량이 검증된 씨앗입니다. 원산지가 어디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심어왔는지의 측면을 넘어 우리 땅과 기후에 적응해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한 씨앗입니다. 또한 재해에 강하고 자가 채종이 가능해 공급의 안정성을 지켜줍니다. 반면 로열티를 지불해야하는 기업의 씨앗은 이윤을 높이기 위해 한 번 밖에 발아하지 못합니다. F1(잡종1대)품종, 터미네이터와 트레이터 등은 1회성 품종이기 때문에 매년 농민들이 새롭게 구입해야 하는 1회용 씨앗입니다. 또한 생명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해 그에 맞는 농약을 살포해주어야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언니네텃밭 홈페이지 발췌) |
Q. 몽탁 찰수수, 갓끈동부 등 처음 들어보는 토종 품종들이 많더라고요. 토종 씨앗을 어떻게 찾고, 또 관리하게 되나요?
A. 예전에는 옆집 종자가 괜찮다 싶으면 얻어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다 돈을 주고 사거든요. 그러면서 토종 씨앗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거죠. 그래서 지역마다 토종 종자를 조사, 발굴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각자 종자 주머니나 종자 보급소 등에서 보관하셨던 씨앗을 저희가 받아서 국립종자원에서 검증을 받아요. 이후에 토종으로 판정이 된 것들을 심고 가꾸어보는거죠. 문제는 기후가 변하면서 예전에는 잘 자라던 토종 종자들도 수확이 안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수확이 잘 되는 것들을 심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토종 씨앗 축제를 해요. 거기서 씨앗을 나누기도 하고 소개하기도 하죠.
Q. 집안에서 집안으로 씨앗을 이어 보관하다보면 사연이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 사연들이 있나요?
A. 여성 농민들에게 들어보면 다양한 사연이 있어요. 전쟁을 겪으면서도 어렵게 보관했던 씨앗을 며느리가 물려받기도 하고요. 더 이상 농사가 힘들어서 못 심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다음 세대나 이웃들이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축제 같은데 오셔서 씨앗을 물려주시는데요. 그때는 참 눈물바다가 되죠. 말 그대로 세월이 담긴 씨앗이니까요.
만들어 온 변화를 딛고, 더 나은 농촌을 향해 갑니다.
Q. 전국여성농민총연합에서도 활동을 시작하셔서 언니네텃밭까지 오래 활동하고 계신데요. 활동의 키워드는 ‘여성농민’이 아닐까 합니다. 여성농민을 둘러싼 현실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A. 농협과 거래를 할 때도 조합원은 한 집에 한 사람만 할 수 있다보니까 대부분 남성 농민이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희가 농민 활동을 하면서 복수 조합원제를 하게 되었고, 여성 농민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게 되었어요. 본인 명의로 된 통장이 없던 분들이 언니네텃밭과 거래를 하면서 통장 개설을 처음 하게 된 경우도 있고요. 요즘에는 노령연금이 있다보니 통장이 있다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여성 농민들이 자기 통장에 물품 대금이 매달 입금될 때 참 뿌듯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여성 농민들이 시골에서는 ‘누구 엄마’, ‘누구댁’ 이렇게 불려요. 어딘가에 주체적으로 나서는 것도 어렵고요. 언니네텃밭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자기소개를 꼭 시키는데 부끄러워하시면서도 이름을 이야기하고, 소개를 이어가는걸 보는게 참 벅차더라고요.
Q. 여성농민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면 좋겠지만 기후 변화 등으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언니네텃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을 해나가고 계신가요?
A. 농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기후이다보니까 저희는 지구온난화를 크게 체감하고 있어요. 그래서 농산물 포장재도 친환경적으로 바꾸고 있고요. 웬만하면 비닐 등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무엇보다 무제초제 원칙을 지켜가고 있어요.처음에는 공동체에서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짓는 것에 의아해하셨는데요. 생태 농업 교육에 참여하시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고 친환경 농사로 전환을 하게 되었죠.
Q.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활동을 이어가실 생각이신지요?
A. 농촌이 고령화되고 있다보니 힘들어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공동체에서도 은퇴하는 농민들도 나오고 있고요. 그래서 좀 더 젊은 분들이 들어와서 공동체에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언니네텃밭이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또 여성농민들이 나서서 요구하지 않으면 듣지 않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좀 더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농촌 생활을 다룬 드라마 ‘전원일기’를 기억하시나요? 개성있는 여성 캐릭터들이 참 많이 나왔지만 정작 캐릭터 본명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쌍봉댁, 일용이 엄니 등으로 불리니까요. 언니네텃밭은 토종씨앗을 이어받아, 묵묵히 농사를 짓고 있는 여성농민들이 자신의 이름과 권리를 찾아, 지속가능한 농업을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있습니다. 오랜기간 이어져온 땀과 지혜, 기술이 끊기지 않고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