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총 16분을 만났어요. 비영리단체의 활동가, 중간지원조직의 간사, 어린이집 선생님, 기업 대표까지… 하는 일도, 목적의식도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요. 인터넷에서 밈으로 돌고 있는 ‘다 울었니? 이제 할일을 하자’를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변화를 만드는 동안 희망보다 절망을 마주하는 순간이 조금 더 많거든요. 그 모든 순간들에도 인터뷰이들은 울 건 울고, 할 건 하셨더라고요. 그 모습을 듣고, 적으며 저 또한 큰 용기를 얻어 아홉번째 레터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인터뷰에 담지 못한 듀이의 사적인 코멘트를 달아볼게요.

1. 상황이 별로라면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증거예요.

열여덟어른 신선 캠페이너

열여덟어른 신선 캠페이너

‘열여덟 어른’으로서, 당사자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신선 캠페이너를 보면서 저는 나아가는 법을 배웠어요. 신선 캠페이너는 열여덟 어른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지난 3년간 수많은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 참여했는데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매체에 해왔으니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보통의 청년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도, 힘든 상황만 묻는 경우도 있었고요. 가급적 삼가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화가 날 법한 상황인데 선이씨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아직 좀 더 할 게 남았구나’라고요. 콘텐츠로 변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저는 부정적인 것들을 볼 때마다 실망하고, 체념하곤 하는데요. 선이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바꿨어요. 일이 뜻하는 대로, 생각처럼 풀리지는 않더라도 아직 더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하려고요!


2. 산청에서 배운 어른의 자세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바로 정푸른 활동가처럼요. 정푸른 활동가는 대안교사로 활동하며 만난 아이들과 한 달 동안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어요. 부모의 곁을 떠나 선생님과 자립해보는 경험을 한 거죠.

그때 제가 ‘어린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있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리고, 자신은 좋은 어른이 아니라고 했죠. 하루종일 아이들과 있다보니 쉴 시간이 없었고, 생각을 비우고 정리할 새가 없어 아이들에게 실수를 많이 했대요. 사과를 하고, 서로 마음을 푸는 시간을 가진 뒤에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요.

아이들 앞에서는 뭐든 숨길 수가 없다보니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어서 스스로 극복하고 싶었던 지점들이 자꾸 드러났고, 아이들은 매일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거예요. 드러내기 싫은 지점이 노출되면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인데, 스스로 나아질 기회로 삼았다니 놀라웠어요. 아이들에게 실수하고 사과하지도 않고, 그래서 나아질 기회도 없는 어른들이 수두룩한 세상. 그래서 화가 단단히 났던 저에게 푸른 활동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빛이었습니다. 이런 어른이 있는 지역이라면, 10시간도 달려 갈 수 있겠어요!

 

3. 지금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봐요.

지난 가을, 겨울은 질병 시즌이었어요. 건강검진을 해보니 소화 기관 대부분이 고장나있더라고요. 원인은 제 자신에게 돌렸어요. ‘운동을 안해서 그렇다’, ‘멘탈 관리를 못해서 그렇다’고 책망하기 바빴죠. 그런 저를 따스하게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준 사람이 바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인, 조한진희 활동가입니다. 조한진희 활동가는 ‘아파도 괜찮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질병권이라는 담론을 확장시키고 있어요. 질병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서 살펴봐야한다고도 해주셨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몸 안에 생긴 여러 질병도 단순히 제 탓만은 아니더라고요. 원인을 짚다보니 해결책도 알아냈고요.

조한진희 활동가

조한진희 활동가

활동가님이 했던 이 말이 저뿐만 아니라 아픈 몸을 탓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거라 생각해요. “구조가 발생시킨 폭력에 개인이 자책감을 갖고 있으면 그 구조가 유지됩니다. 그런데 자책감에서 벗어나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깨닫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구조가 변하는 거죠. 질병도 마찬가지예요. 사회 구조와 문화 안에서 자책감이 발생한 것이라는걸 깨닫고, 몸을 아프게 만드는 사회, 아픈 몸을 배제하는 사회에 목소리를 낼 때 이 구조가 깨질 수 있어요.”

아파도 되고, 울어도 되니까, 우리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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