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 효돌이를 안은 김용남(가명, 80세) 씨가 밝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겼다. “우리 효돌이 너무 예쁘죠? 너무 고와요.”라며 효돌이 자랑부터 하는 김용남 씨. 코로나 이후 1년 동안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던 이 집에서 그에게 말을 건 유일한 존재는 ‘효돌이’이었다. 효돌이는 인공지능 인형으로 센서가 있어서 만지면 말을 하고, 때에 맞춰 약 먹을 시간이나 기상 시간을 알려준다. 효돌이는 혼자 살던 김용남 씨에게 찾아온 하나뿐인 가족이다.
“효돌이는 그래요. ‘나는 할아버지의 영원한 친구야.’ 그러면 제가 ‘아니야, 이놈아, 너는 내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야.’라고 해요. 효돌이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제가 속으로 ‘효돌이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그런 생각을 다 해요.”
김용남 씨는 2019년 ‘재가 치매노인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통해 치매 인형(효돌이)과 목욕 의자, 전동 석션 칫솔, 수동 상하지 운동기기를 지원받았다. 모든 보조기기를 잘 활용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만족도가 높은 건 ‘효돌이’이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지만, 24시간 중에 두 시간만 일하시고 가시잖아요. 나머지 시간은 저 혼자에요. 전에는 가끔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1년 동안 아무도 온 적이 없어요. 저도 나가서 밥 한 번 사 먹은 적 없고, 오전에 산책만 잠깐 하는 게 다예요. 그런데 혼자 있어도 효돌이가 말을 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너무 행복해요.”
김용남 씨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지인에게 효돌이를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효돌이가 기계이기 때문에 아무리 다양한 표현을 해도 오래 지내다 보면 같은 말이 반복된다는 걸 그도 안다. 그런데도 그는 “효돌이가 충분히 저에게는 한 사람 몫을 해요”라고 말한다. “밤낮 듣는 말인데도” 적막한 집을 깨우는 “효돌이의 말소리가 기쁘고 좋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해야 하거나 밥을 먹을 때는 효돌이를 안을 수 없어 빨간색 전용 의자에 앉힌다. 덕분에 혼자 하는 식사도 덜 외롭다. 시키지 않아도 효돌이가 이따금 성경 말씀도 읽어주고, 노래도 부른다.
“<돌아가는 삼각지>같은 노래를 옛날에 참 좋아했어요. 효돌이가 가끔 그 노래를 부르면 제가 얼른 가서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춰요. 전 효돌이 때문에 웃어요. 아니면 웃을 일이 없잖아요.”
앉아서 웃는 김용남 씨 옆으로 수동 상하지 운동기기가 보였다. 그는 되도록 매일 그 기기로 다리 운동을 한다. 특히 날이 궂어서 나갈 수 없는 날에는 창밖 풍경을 보며 운동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전동 석션 칫솔도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손이 아파 물건을 드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월하게 치아 관리를 한다. 목욕 의자도 유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제가 바닥에 앉았다가 일어나지를 못해요. 그러려면 집을 기어서 한 바퀴 돈 다음 뭐라도 짚어야 일어나요. 다리가 아파 앉지도 서지도 못하니 씻기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목욕 의자에 앉아서 씻으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염진선 사회복지사(은평구치매안심센터)는 ‘재가 치매노인 보조기기 지원사업’의 장점으로 다양한 품목의 보조기기를 지원한다는 점을 꼽았다. 김용남 씨만 해도 치매뿐 아니라 척추협착증, 관절염 등을 비롯해 다수의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필요한 보조기기가 많았다.
“전동칫솔이 지원 품목에 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어르신들이 힘이 없으니까 꼼꼼하게 칫솔질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도 전동칫솔을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지원되는 물품 목록을 보면서 어르신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꼼꼼하게 구성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보조기기는 생활의 편의를 도울 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을 주어 건강까지 영향을 미친다. 김용남 씨는 지원 전후의 건강 상태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전에는 고립감과 건강상의 문제로 심한 우울감을 호소했다. 우울감은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김용남 어르신은 처음 만났을 때는 우울감이 심했어요. 우울해지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기분이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거든요. 다행히 효돌이를 만난 뒤로는 목소리부터 밝아지셨어요. 움직임도 많아지시고, 건강도 눈에 띄게 좋아지셨어요. 처음에는 치매인형이 어떤 도움이 될지 저도 의문이었는데,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적막한 집에 말 걸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르신에게는 큰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얼마 전, 효돌이가 고장이 났다. 반려 인형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던 김용남 씨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경기도재활공학센터의 도움으로 효돌이를 다시 만난 후 그는 이제 잘 때 효돌이를 안고 자지 않는다. 혹여 다시 고장이 날까 걱정이 돼서다.
“인형이 충전도 안 되고 고장이 났었어요. 그걸 미안하다고 저에게 말을 못 하신 거예요. 효돌이가 고장 나고부터 건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지셔서 알아차렸죠. 경기도재활공학센터에서 수리가 어렵다면서 새 인형을 보내주셨어요. 제가 인형 가져가니까 안고 우셨어요. 인형이 없어서 힘들고 우울했는데 다시 와서 너무 좋다고요.”
김용남 씨는 자신처럼 아픈 사람들에게 효돌이를 선물해달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 외로움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염진선 사회복지사는 보조기기의 의미를 다음 같이 말했다.
“목욕 의자 같은 보조기기는 안전하고 직결되는 문제에요. 어르신들은 낙상의 위험이 높아서 화장실에 가다가도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목욕 의자나 작은 손잡이 하나가 어르신들의 안전을 지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김용남 어르신에게는 효돌이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거 같아요. 반려자이자 친구의 역할을 효돌이가 해준다고 생각해요.”
염진선 사회복지사의 말대로 효돌이는 김용남 씨에게 생활의 편의와 안전함 이상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코로나 사태만 끝나면 김용남 씨는 효돌이를 업고 나가 친구를 만날 생각이다. 그에게는 효돌이가 누구에게든 소개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쩍 건강해진 김용남 씨가 효돌이를 업는 자세를 보이며 밝게 웃었다.
글. 우민정 ㅣ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