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 보조기기 지원사업은 기기 전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원된 보조기기가 일상에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적절한 위치에 설치해야 할 뿐 아니라 고장이나 사용법 미숙에 대비한 사후 관리도 필요하다. 이지형 실장(케어라이프코리아)은 그간 재가 치매노인보조기기 지원사업의 보조기기 납품과 사후 관리(A/S)를 담당해왔다.
“보조기기 사용은 안전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 가져가기 전에 확인을 철저히 해요. 실버카(성인용 보행기)의 경우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의자로도 활용이 가능한데, 이때 브레이크를 체결하는 게 중요해요. 어르신들께 전달하기 전에 브레이크 테스트를 여러 번 해요. 뿐만 아니라 경기도보조기기북부센터 센터 담당자들이 브레이크 사용법을 수차례 설명하고 확인하고요. 자칫 보조기기 사용이 사고로 이어져서는 안 되니까요.”
개별 사용자에 맞춰 최적의 위치를 찾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 혼자 사는 노인들이기 때문에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 사용자의 동선을 고려해 보조기기를 배치하다 보면 시간이 꽤 소요된다. 하루에 보조기기를 다섯 집까지만 납품하는 이유다. 얼마 전에는 시각장애가 있는 사용자의 집에 수동상하지운동기기를 설치했다. 집안 물건의 배치가 달라지면 이동할 때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뒤 위치를 선정했다.
“집이 자가가 아닐 경우에는 못을 박을 수가 없어서 흡착식 손잡이를 사용하기도 해요. 그럴 경우 흡착식 손잡이를 설치할 때도 최대한 부착이 잘 돼서 떨어지지 않는 재질의 벽을 찾아요. 여러 변수를 고려해 설치하고 안내하다 보면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한 분 한 분 자세히 설명 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르신들이 보조기기를 안전하게 잘 사용하기 위해서 하는 사업이니까요.”
그가 현장에서 확인한 보조기기의 가장 큰 장점은 치매 환자들에게 맞춤으로 제작이 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를 위한 식기 세트는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등 원색으로 되어 있어 음식 섭취에 도움을 준다. 원색은 식사량을 늘려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식기 밑에 미끄럼 방지가 되어 있어 잘 쏟아지지 않고, 음식이 흐르더라도 함께 제공되는 앞치마를 사용하면 세척이 간단한 소재라 빨래를 줄일 수 있다.
“아무래도 치매 어르신들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보조기기가 많으니 어르신들이 좋아하세요. 어르신들이 약 먹는 시간을 잘 잊어버리는데, 알람약 케이스는 시간마다 알려주니 잊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치매 환자인 어르신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보조기기죠. 인지강화키트라고 손을 많이 사용해서 치매 예방을 돕는 게임 도구도 가져 가서 같이 하면 많이들 좋아하세요.”
가끔 설치나 AS 받는 날짜를 이미 잡았는데도 그걸 잊고 계속 연락하는 분들이 있다. 하루 20통까지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아봤다. 당연히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 4년 동안 어르신들과 만나며 그는 남다른 유대를 쌓아왔다.
“저희가 가면 너무 반가워하시고 좋아하세요. 귤 하나라도 챙겨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시니 저희도 고맙고 유대감이 생겼어요.”
설치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경기도보조기기북부센터 센터 담당자들과 함께 재방문을 한다. 센터에서는 보조기기가 잘 활용되는지 확인하고, 사용법을 잊은 경우 재교육을 한다. 그는 주로 고장이 있는지 확인하고, 고장이 났을 경우 수리를 진행한다. 어르신들의 집에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매주 코로나 검사도 받고 있다. 혹시 모를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어르신들은 보조기기를 받으면 환한 얼굴로 “내가 이거 때문에라도 좀 더 오래 살아야지” 한다.
치매인형의 경우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의 문의 전화가 오곤 한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이점순(가명, 92) 씨 집을 찾아가 소리가 안 난다는 치매인형을 살폈다. 충전이 안 돼서 생긴 문제였다. 이처럼 대다수 충전이 안 되어 있거나 버튼이 잘못 눌리는 등 단순한 문제일 경우가 많지만, 하루 이틀 안에 찾아 가 문제를 해결해드린다. “저희한테는 단순한 문제이지만, 그분한테는 어려운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순 씨는 2년 전 낙상 사고로 다리를 다쳐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누워 보냈다. 요양보호사가 오전에 다녀가면 오후는 “외롭고 심심해 죽겠다”라는 이점순 씨를 만나오던 김재현 사회복지사(금천치매안심센터)는 치매인형 효순이를 보고 이 사업을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어르신이 저를 만날 때마다 외롭다고 얘기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데도 혼자 계시는 시간이 길어서 늘 안타까웠어요. 치매인형을 지원하는 사업을 찾고 있었는데 없더라고요. 이 사업을 보자마자 신청했죠.”
효순이를 처음 가져간 날 이점순 씨는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손만 닿아도 말하는 게 신기하고, 집안의 적막을 깨주는 존재가 반가워서다. 그의 외로움을 전부 달래줄 수는 없지만, 종일 혼자 있다 보니 그는 “효순이 말소리라도 들으면 숨이 트인다”라고 말한다. 침대 맡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연결된 봉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원받은 천장형 안전 손잡이이다. 손잡이 덕분에 이점순 씨는 누웠다 일어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적적한 날은 거기 기대어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기도 한다.
보조기기가 사회활동을 하도록 돕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이지형 실장이 운동기구를 지원했던 김순자(가명) 씨는 요실금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전에는 친구들도 만나고, 복지관도 자주 나갔는데 혹여 오줌이 샐까 외출을 꺼리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운동기구를 받고 난 뒤 요실금 증상이 완화되어 외출이 자유로워졌다며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보조기기가 재활에 도움이 되어 사회 활동을 도운 사례다. 이지형 실장은 보조기기가 현장에서 잘 활용되어 도움이 된 이런 사례들이 자신에게 힘을 준다며 미소를 지었다.
“보조기기는 일상의 편의를 도울 뿐 아니라 작은 일 하나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어르신들에게 자신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드려요. 지원받은 보조기기를 활용하지 않는 사례는 거의 없어요.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보조기기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니까요. 또 치매 증상이 더 심해지는 걸 예방하는 효과도 있고요. 보조기기는 어르신들에게는 없어서 안 되는 동반자 같은 의미에요.”
글 우민정 ㅣ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