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의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보호종료청년들이 안정적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학업유지 및 자기계발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자립준비를 위한 역량강화 및 지지체계를 형성하는데 힘을 더하고자 합니다. 2021년에는 ‘나들목바하밥집 리커버리센터’(이하 리커버리센터)와 협력사업으로 4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습니다. 이공계 장학생으로 2021년 4학년을 보낸 박○범 장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진짜 멋지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재단과 리커버리센터가 함께하는 ‘2021년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2021년도 장학생으로 선발된 40명 가운데 눈길을 끄는 이공계 장학생이 있다. 화학공학과를 전공하고 2022년 봄 대학 졸업을 앞둔 박○범 학생이다. 그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하던 중에 시설 선생님이 장학생 모집 소식을 알려주셔서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이 더없이 멋진 늦가을 오후.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취업을 바삐 준비하는 박○범 학생을 만났다. 머지않아 노력의 열매를 맺게 될 박○범 학생. 장학생이 되고서 일 년간 어떻게 학업을 하고 있는지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보고, 포부도 들어봤다.
“여유가 생기니까 시간관리를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전 9시. 기상 후 8시면 박○범 학생은 아침밥을 차린다. 박○범 학생이 밥솥에 밥을 안치면, 요리 솜씨가 그만인 룸메이트는 국을 끓인다. 얼른 먹고 자취방을 나서 깔끔하고 밝은 스터디카페(독서실)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을 때 학교 도서관도 문을 닫아서 스터디카페에 가기 시작했는데 요새 거의 매일 스터디카페에 다닌다. 졸업반이라 학교에서 필수로 이수할 과목이 한 과목만 남아서, 오전에는 취업을 위한 영어 자격증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일단 제저 자신에게 투자할 기회가 늘어나서 정말 좋았습니다. 장학금으로 스터디카페 이용권을 끊어서 공부하니까 규칙적으로 일과를 보낼 수 있게 됐어요. 스터디카페 비용이 만만치 많게 드는데, 지원을 받아서 150시간이나 이용권을 끊을 수 있었어요. 여유가 생기니까 시간 관리를 잘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건 맞더라고요.”
오후, 저녁 시간에는 위험물산업기사(위험물을 다루는 사업장에서 안전관리) 자격증 시험 과목을 공부한다. 얼마 전 박○범 학생은 대개 화학을 전공한 이들이 치는 화공기사(화학제품의 제조공정 전반 업무 등을 조작·관리·감독) 시험을 봤다. 그 결과를 기다리면서 새로 위험물산업기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수 있으면 하고 싶어요. 놀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놀다가 안 되면 큰일이니까.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쉬었다가 다시 준비하고요.”
취업 때 제출해야 하는 영어 시험은 여러 번 봐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벌써 몇 번이나 시험을 쳤다. 시험 응시비가 한 번에 자그마치 7만 8100원이라 상당히 부담스러웠는데 장학금을 받고서 시름을 덜었다. 시험이 끝나면 하루쯤 바람 쐬러 가기도 하지만, 시험날이 다가오면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그야말로 ‘고3 수험생 모드’에 돌입한다. 공부에 몰입할 수 있어서 전보다 취업 준비가 훨씬 수월하다.
“힘들지 않았냐고 하는데 저는 할 만 하더라고요.”
머리에 쥐가 나는 듯한 일상이지만, 이런 하루하루가 좋다.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잘 하기도 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치킨집, 닭꼬치집, 커피숍에서도 일해보고 학과 사무실에서 학사행정을 돕는 근로장학생으로도 일하며 공부했다.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는 일을 하며 공부해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곤 한다.
“저는 할 만 하더라고요. 타이머를 맞춰놓고 시간 맞춰서 반죽하고, 기름에 튀겨 꺼내고, 그 다음에 양념하고. 하나씩 하나씩. 그런데 학교에 가서 조니까, 물론 원래 잘 졸기도 하는데. 그래도 시간이 좀 아까웠어요. 다른 애들은 공부만 할 시간에 저는 알바를 해야 하니까요. 장학생이 되니까 그런 (부족한 공부시간) 부분이 해결돼서 도움이 많이 되고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찰, 시설에서 살았다. 중고생 때도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도움을 받을 기회를 잡으려고 복잡한 서류를 많이 썼다.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와 어려운 전공 공부를 병행하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닐 법도 한데, “저는 저 아니면 누가 저를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까 책임감이 있었어요”라며 담담히 자신이 지나온 길을 이야기했다.
“고등학생 때 꿈이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워낙 화학을 좋아했어요. 물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원소나 원자를 파악하는 걸 좋아했고요. 또 화학을 전공하면 취업률이 얼마나 되는지도 살펴보고 전공을 정하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화학 공부를 하자, 박○범 학생은 무기화학을 좋아하게 됐다. 구리, 아연, 철, 알루미늄 등과 같은 재료(무기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성질을 알아가는 게 무척 재밌었다고 한다. “재료마다 각각 고유한 성질과 특성이 있어서 잘 맞았다”고 한다. 새로운 원소를 알게 됐을 때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이던 시절처럼, 대학에 들어와서는 한 사람 한 사람 고유한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람 만나는 게 즐겁잖아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절에 살 때는 어린 나이에 스님처럼 머리도 밀고 그래서인지 남을 만날 때 자신감도 떨어지고 소극적이고 말도 안 하고 그랬는데, 노력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겉은 무섭고 냉정해 보여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 많아요. 대화라는 게 일상부터 시작하니까, 그냥 오늘 뭐 먹었는지 물어보고, 아! 요새는 밥 안 먹고 커피 먼저 먹는 사람도 많으니까 커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고요. 그러다 보면 말이 통하게 되고.”
불편함을 느낀 채 언제까지나 숨기고만 있을 순 없으니까
먼저 다가서면서 박○범 학생은 학교 친구들과 친해졌다. 친한 친구 중 믿을 수 있는 몇몇한테는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말하기 조심스러웠지만, 일상 대화에서 가족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불편함을 느낀 채 언제까지나 숨기고만 있을 순 없었다.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이야기했다.
학교 동아리 활동은 축구 동아리, 학술 동아리 두 개나 하고 있다. 축구 동아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 모여 체력단련을 위해 시합을 벌인다. 박○범 학생은 빨리 달리는 편이라 왼쪽 윙어 포지션이다. 학술 동아리는 학과 동기가 모인 동아리인데 반도체 관련 스터디를 하고 있다. 최근에 박범 학생은 전자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의 공정에 관심을 갖게 됐고, 앞으로 진로로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는 엔지니어가 되려 한다.
취업 후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 나가 일해보고 싶다. 나아가 고성능 저전력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에 기여할 전문가가 되자고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 최종목표도 세웠다. 또 하나 펼쳐보고 싶은 꿈은 장학사업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 좋게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베풀고 싶어요. 도움을 받은 학생들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소소한 장학사업 규모가 될 수도 있지만 해보고 싶어요. 받는 입장에서는 그게 정말 큰 의미니까요.”
쓰라리고, 애쓰던 과거를 바탕으로 지금의 내가 있긴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미래의 내가 바라는 나로부터 지금의 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자신의 힘의 원천을 스스로 일구는 박○범 학생. 그 지혜와 인간애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범 장학생의 가슴 속에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루는 열매와 씨앗이 깃들어 있다.
“상황이 안 좋고 힘들고 하더라도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성장을 체감하게 돼요. 고생하겠지만 다 제 피와 살이 될 터이니까 참고 헤쳐나가고 싶어요. 또 실패를 하더라도 시도조차 안 하기보다는 실패를 직접 느끼면서 스스로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실험실의 나 ‘드림프로젝트’
박○범 학생이 올해 장학생이 되어 참 좋은 점을 또 꼽았다. ‘작은변화프로젝트’로 팀 활동 ‘드림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다른 지역에 사는 장학생들을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드림프로젝트’팀은 자신의 꿈을 표현하고, 또 자기 인생에서 갖게 된 물음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잡지를 만들려 한다.
박○범 학생은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 사진을 바탕으로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다. 화학공학과 특성상 학교에서 화학실험을 자주 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실험을 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실험 한 번 하면 대여섯 시간은 실험실에만 머물러야 해서 솔직히 편해졌지만, 내심 실험시간이 그립고 소중하다. 인터뷰 때 줄곧 차분한 어조라 짐짓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나 보다 여겼는데,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핑·캠프·차박(차에서 캠핑)과 같은 데에 관심이 많다. 동적인 활동이 좋다”고 한다. 또 어릴 적에 자신과 관련된 증빙을 하도 많이 떼고 서류도 하도 많이 쓰다 보니, 늘 컴퓨터에 자신에 관한 서류 폴더를 만들어 놓곤 했다. 그 습관이 문서 정리정돈 노하우가 됐다. 이제는 뭐든 서류 작업을 척척 한다.
약점은 강점으로 만들고, 활력 넘치는 반전 매력을 생생히 보여주는 박○범 학생. 박○범 학생이 기부자들께 미리 정성껏 준비해온 감사의 인사를 꺼낸다.
“기부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께서 주신 힘으로 더욱 발디딤 해서, 앞으로 진짜 멋지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글 : 조승미 작가
사진 : 최지은 간사 (변화확산팀)
잔용
당신은 이미 멋지고 괜찮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