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른 박강빈 프로젝트 <자립 100days>는 의식주 문제를 비롯해 고지서 납부, 세탁기 고장, 응급실 문제 등 보호종료아동 100가지의 자립 경험들과 감정들을 100일 동안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
여러분의 자립은 어떠셨나요?
처음 집을 나와 혼자 자는 첫 날,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집 안이 따뜻해지지 않더라고요. ‘새 집이라 따뜻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나 보다.’하고 30도로 올려두고 친구네 집에서 잤습니다. 다음 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어요. 보일러 선이 꼬인 건지 제가 사는 집이 아닌, 옆집이 불바다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랴부랴 보일러를 끄러 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박강빈 캠페이너의 프로젝트인 ‘자립100days’를 보면서 혼자 살기 시작할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떠올리게 되었어요. 공감되는 에피소드들도 있고, 또 저는 알지 못했던 열여덟 어른들만의 자립 이야기들이 있어서 ‘아!’하며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도 느낀 것 같아요. 이렇게 열여덟 어른들이 일상 속에서 어떤 자립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해준 박강빈 캠페이너의 이야기를 오늘 들어보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열여덟 어른 당사자 캠페이너 박강빈입니다.
Q.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당사자 멘토로서 자립지원활동을 하면 할수록 아쉬운 점이 생기곤 했습니다. 저의 작은 영향력이 닿을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고, 후배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자립지원강화방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내용을 알고 있었고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 정말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연락을 받았을 때 바로 승낙을 했어요. 미디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용기를 내기 힘들 수도 있는데 그동안 진행해 온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 선배들을 보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A 100 bad days made a 100 good stories
Maybe(어쩌면)
A 100 bad days made(100개의 나쁜 날들이)
A 100 good stories(100개의 좋은 이야기들을 만들고)
A 100 good stories make me(100개의 좋은 이야기들은)
Interesting at parties(날 흥미롭게 만들어 줄 거야)
– 100 bad days 팝송 일부
Q. <자립100days>프로젝트명이 특이해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캠페인을 어떤 모습으로 풀어나갈지 고민하던 시기에 ‘100 bad days’라는 팝송에 빠져 있었어요. 너무 힘들거나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시간이 지나고 덤덤하게 풀었을 때, 100개의 나쁜 날들이 100개의 흥미로운 경험담이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어요. 자립강연을 할 때, 저의 실수와 시행착오들을 위주로 경험담을 풀면서 이야기를 할 때 후배들이 더 집중하고 공감을 많이 하더라고요. 이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눈에 보이는 일상의 순간뿐만 아니라 사색에 잠기곤 했던 정서까지 담아내고 싶었어요. 자립 초기에 처음이라서 또는 미숙해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풀어나가면 후배들에게는 자립에 대한 막연함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미 자립한 당사자분들에게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우리는 잘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박강빈 프로젝트의 이름을 <자립100days> 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열여덟 어른의 100가지 이야기
Q. 박강빈만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열여덟 어른들의 이야기를 모아 인스타그램으로 가상의 보호종료아동 ‘백우리’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보여준 이유가 있나요?
저는 빨래 세탁과 방 청소를 엄청 미루는 편이에요. 혼자 집에 있으면 밥도 잘 안 챙겨 먹고 매번 일정에 늦을까봐 택시도 자주 타요. 그래서인지 지금 저의 자립 안에서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묻는다면 ‘가까운 곳에서 나를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고 직설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가장 필요해요.’라고 답할 거예요. 그런데 모든 자립준비청년들이 저와 똑같은 대답을 할까요? 무조건적인 내 편, 생활지원금, 아늑한 집,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진짜 친구, 편견 없이 바라봐 주는 시선 등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무엇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지, 비슷하면서도 모두 다를 겁니다.
<자립 100days> 프로젝트에 저의 상황과 감정만을 담았다면 아마 편향되거나 풍성하지 못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눈이 겹겹이 쌓여야 발자국이 깊게 남듯이 여러 당사자의 이야기가 쌓여야 공감 버튼을 꾹 누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인스타그램은 한 사람의 일상을 보여주기에 좋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 내 게시물이 모인 피드를 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의 일부를 보여줄 수 있어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어려웠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일기장을 쓸 때는 오늘 하루 겪은 일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감정이 담기는데, 자립준비청년들이 어떤 상황과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놓고 ‘내 일기장을 봐주세요.’, ‘나 너무 힘들어요.’가 아니라 조금은 함축적인 내용으로 게시물을 작성하고자 했어요.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썼을까?’, ‘내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나?’라는 생각들이 더해지길 바랬거든요.
Q. 가장 마음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가장 공감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98day의 에피소드가 가장 마음에 남아요. 제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지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와 <자립100days>의 모티브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자립강연은 자립 선배가 후배에게 ‘얘들아, 나 이렇게 자립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자립경험담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립에 대한 동기부여를 주고, 자립정보를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래서 자립선배와 후배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고등학생 시절에 저희 시설과 지역아동센터에 찾아온 자립선배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지금은 그 선배들과 같이 자립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무색하게 빠르다는 생각과 동시에 당사자들의 연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느껴서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박강빈이 보는 백우리의 자립은 어떤가요?
제가 보는 백우리는 보호종료아동의 자립 모습이 담겨있다고 봐요. 실제 사연으로 만들어져서 그렇지만 자유와 외로움, 불안과 희망 등이 모두 있는 진짜 리얼한 자립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우리라는 사람으로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아이인 것 같아요. 자기 일기장을 남한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거든요. 근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위태로웠던 거죠. 물어볼 사람이 없고, 감정적으로 곁을 내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SNS에 ‘나를 좀 봐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사실 진영이한테만 이야기하면 되는데 진영이에게 말하는 것으로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중학생 때 같은 시설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가 카카오스토리에 자신의 짧은 개인서사와 가정사를 밝힌 적이 있어요. 저는 그 나이 때에 그 게시글을 보고 ‘부끄럽지 않은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많이 위태로웠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백우리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면 감정기복이 심한 편입니다. 게시물들의 사진이나 그림, 글의 온도가 확확 바뀌거든요. 마치 사람들이랑 즐겁게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불이 꺼진 방안을 보고 공허해지듯이 게시물의 전환이 극과 극으로 느껴져요. 온전히 나로 있을 때 내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직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한 친구입니다.
그래도 백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홀로 부딪히면서 해결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의견을 구하고,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자립준비청년들 중 일부는 정서적으로는 기대고 싶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관심을 잃지 않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해서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숨기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마음의 위로’, ‘동기부여’는 백우리가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인 주춧돌이 되어줄 겁니다.
‘우리’의 마음 일기장에 따듯한 문장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Q. 사람들이 이 <자립 100days> 프로젝트를 어떻게 바라봤으면 하나요?
항상 후배들 앞에서 하는 말이 있어요. 제가 들려주는 경험담과 알려주는 방법들이 정답이 아니라고 꼭 이야기를 합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의 세상 속에 있습니다. 자립 초기부터 씩씩하게 잘 헤쳐나가는 청년들도 있고, 프로젝트에 사실적으로 담기 어려울 정도로 안타까운 사례도 많았습니다. 저는 자립 지원이 확대되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이 아직 닿지 못한 곳까지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자립 100days> 프로젝트 속 ‘우리’의 어떤 하루를 보시더라도 그 상황과 감정의 이유들을 고민해주신다면 프로젝트를 진행한 캠페이너로서 뿌듯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백우리의 자립 이야기를 100개 올리셨는데 박강빈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해 주실지,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닿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누군가 나의 일기장을 읽지 않을까 의식하면서 글을 써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일기장을 쓰게 되면 진솔한 생각이 담긴 문장들을 몇 차례 검열하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인스타그램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사진 몇 장과 짧은 글로 자립의 순간을 포착하고 공유하다보니 당사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모두 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각 게시물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박강빈의 리그램’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나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우리’가 경험했던 상황과 감정, 그리고 내면의 생각들을 이끌어내면서 진행해볼까 합니다.
열여덟 어른에 관심이 많은 분들 또는 관심이 아예 없던 분들, 시설에 살고 있는 후배들, 유관부처 관계자분들 등 다양하고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지만 꼭 닿았으면 하는 사람은 지금 저와 같이 자립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열여덟 어른들입니다. 저는 후배들이 더 풍부한 간접경험을 제공받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감사하게도 후배들 앞에서 설 수 있는 기회들이 정말 많았어요. 최근에는 저의 경험적 한계를 체감하기도 하고 후배들의 시야를 넓히고 자립에 대한 막연함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당사자 선배들이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자립하고 있는 ‘우리’와 곧 퇴소를 앞둔 ‘우리’의 마음 일기장 속에 따듯한 문장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이야기
박강빈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박강빈 캠페이너는 일상 속 보호종료아동의 진짜 자립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백우리’라는 가상의 보호종료아동으로 자립 이야기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백우리’는 실제 존재하는 한 사람의 일상 이야기가 아닌 보호종료아동 ‘우리’의 100가지 자립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을 밝히고, ‘백우리’ 안에 담긴 퇴소의 날, 주거, 외로움, 인간관계, 명절, 꿈 등 열여덟 어른들이 전해준 생생한 ‘말’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합니다. 용기 내 전해준 많은 열여덟 어른들의 이야기들이 퇴소를 앞둔 열여덟 어른들에게는 자립에 대한 막연함을 덜어주고, 오늘도 자립하고 있는 또 다른 열여덟 어른들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따스한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 박강빈 프로젝트 보러가기
👉 ‘백우리’ 인스타그램 보러가기(@100_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