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군산평화박물관(전 평화바람부는여인숙)에서는 2021년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평화로 걷는 군산>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온 군산시 공군기지의 역사와 여기서 비롯돼 겪어온 수많은 위험과 문제들을 드러냄으로서 진정한 평화는 군사주의를 바탕에 둔 안보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 인권과 생태의 가치를 실천해나가는 속에서 가능함을 알리고 평화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군산미군기지와 기지 주변의 주민들의 삶, 기지문제에 대응해온 시민 평화운동을 아카이브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전시와 평화교육을 진행했다.
사라짐과 만남, 기억과 기록
2018년 기지 감시활동을 하느라 군산미군기지 주변을 돌면서 이상한 풍경을 마주했다. 탄약고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며 주민들을 내쫓은 하제마을은 매일매일 집들이 무너져나가는데 확장된 미군기지에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건물이 솟았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평화를 무너뜨리고 무서운 군사력을 높이 세우는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은 메꿔야 하는 커다란 구멍 같았다. 군산평화운동의 역사를 모으고 기록해야 할 책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2021년 이 작업을 시작했다.군산평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엄청나게 쌓여진 자료, 새롭게 모아낸 자료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90년대 후반 군산에서 기지 대응활동을 시작한 평화바람의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체계를 더듬어가고, 분류를 완성해갈 수 있었다. 군산평화아카이브는 군산평화운동 역사의 주요한 시작을 1997년으로 보고 그 변천사를 정리, 요약하며 이를 기준으로 삼아 평화바람 활동가들이 축적해왔던 자료뿐만 아니라 군산지역의 다른 활동 단체의 자료, 개인의 자료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현장행동 평화연대를 향한 <평화로 겯는 군산> 전시
군산평화아카이브 작업과 동시에 이에 전시 준비를 진행했다. 군산미군기지와 평화를 관람객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군산미군기지를 둘러싼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틀에 담아내 소통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토론했다. 무엇보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해서 논의한 결과 군산미군기지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군사적 논리로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주민들의 이야기, 평화활동가들이 수집해온 실물 자료, 관객참여 인터렉티브존으로 계획되었던 원래 기획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해당 내용들을 모두 포함하되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을 전달하고 깊이 있는 관객참여를 이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실물 자료보다는 가치 중심의 설명, 제작물을 통해 전시를 채웠다. 총 4부로 구성한 [평화로 겯는 군산]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이후 지금까지 청산하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는 군산미군기지를 조명하고, ‘무기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군사 안보에 저항해온 평화운동을 보여준다. 1부 ‘군산미군기지와 군산평화운동’, 2부 ‘국내외 평화운동’, 3부 ‘하제와 팽나무’, 4부 ‘평화바람이 걸어온 길’로 구성했다. 전시에는 윤여관, 김도형, 신정원, 노순택 4명의 작가와 박지연 큐레이터, 평화바람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전시는 관람객들 특히 전북지역 청소년들의 평화감수성을 증진하고 평화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군산평화박물관을 통해 자신이 속한 지역공동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개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 느끼며, 연대의 기운을 틔울 수 있기를 기대하며 7월 17일 문을 열었다.
백 번을 걸어서 지켜야 할 평화, 군산생태평화답사
군산미군기지 둘레를 걷다보면 박물관에서 이야기하는 기지의 문제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거꾸로 군산미군기지를 둘러보면서 느끼게 되는 시각적인 충격, 고민, 어지러움을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문제를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장을 전달하는 전시, 현장으로 연결하는 평화교육으로 박물관은 관람객들에게 군산미군기지 문제, 한미동맹의 문제를 더 잘 알리고 싶다.박물관 개관 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시해설 및 전시연계 현장답사, 청소년 전시해설가 양성을 목표로 한 다회차의 평화교육을 진행했다. 현장 답사의 경우 원래 계획보다 훨씬 많은 횟수가 진행되었다.
군산, 군산 외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 군산, 군산 외 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 프로그램 참여 요청이 왔기 때문이다. 평화답사는 주로 군산미군기지의 북쪽 남수라갯벌에서 시작해 기지 정문, 격납고와 탄약고, 하제포구, 하제마을과 팽나무를 둘러보며 기지확장 우려가 있는 새만금 신공항 문제, 주민들의 삶과 맞닿아 문제를 낳고 있는 기지와 기지 확장, 사람들이 떠난 마을을 지키고 있는 하제마을의 팽나무와 소나무를 만난다. 직접 현장을 방문함으로써 군산이 겪고 있는 생태와 평화의 문제가 무엇인지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평화를 일구는 행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이후에도 ‘군산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베어질 위기에 처한 600년 팽나무를 지키려는 팽팽문화제(매월 진행)‘에도 자발적으로 참석하고 있다.청소년 전시해설가 양성 프로그램의 경우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훨씬 돋보였다. 이들은 현재 군산평화박물관의 전시해설가 뿐만 아니라 박물관 지킴이로서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주기적인 모임을 통해 자체적인 프로그램 기획도 진행 중이다. 이에 오는 2월, 제주도 미군기지 반대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정마을에 방문하여 지킴이들을 만나 해당 지역을 탐방하고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방문하는 다크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금도 군산은 군산미군기지와 새만금 개발로 여전히 앓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군산 미군기지에서 노동자, 여성, 농민, 청소년, 저어새와 퉁퉁마디, 팽나무는 생명을 죽이는 개발과 안보에 저항해오고 있다. <평화로 겯는 군산>의 활동도 이 저항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우리의 저항이 결국에는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개발을 멈출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