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아이와 쫓겨나는 걸까.”
만 24세, 또래라면 취업과 공부가 우선일 나이. 은선(가명)씨의 일상은 ‘엄마’라는 이름에 적응하는 나날입니다. 아이는 생후 10개월. 5평 남짓의 좁은 방에서 출생신고가 안된 아기와 은선씨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속에 지내야 했는데요. 생명을 품고 키워내겠다는 결심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엄마가 된 은선씨를 보호하는 손길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울 거면 연락하지 말라”며 선을 그은 친정. 시댁과의 연락도 끊기자 육아는 오직 은선씨의 몫이 됐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아이를 간간히 찾아와 육아용품을 사주는 정도로 도움을 줄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은선씨는 집주인에게서 이틀 안에 방을 비우라는 급작스러운 통고를 받았습니다. 그나마 유지되던 주거지마저 사라지게 된 상황. 다행히 은선씨는 12개월 미만 아이를 키우는 청소년부모 대상의 긴급 거주공간을 알아냈습니다. 공간운영 단체에 연락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구했고, 그렇게 엄마와 아이는 긴급 거주공간에 무사히 입소했습니다. 이곳에서 은선씨는 아이를 돌보며 자신의 상황에 맞는 지원제도를 알아보는 등 생활의 안정을 찾는 중입니다.
119응급하우스, 12개월 미만 영아와 청소년부모를 위한 공간
은선씨가 임시로 머물게 된 거주공간은 12개월 미만 영아를 키우는 청소년부모 가정을 위한 ‘119응급하우스’입니다. 청소년부모 지원단체 ‘킹메이커’가 관리하는 곳인데요. 청소년부모의 사례관리와 주거지원을 킹메이커가 진행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하는 ‘청소년부모주거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최소 일주일에서 최대 3개월까지 지낼 수 있는 단기지원 공간으로, 깔끔한 개별 방과 거실, 주방으로 구성돼 있고 요리도구는 물론 육아관련 물품도 갖춰져 있어 아이를 돌보기에 한결 수월합니다.
청소년부모가 이곳에 머물며 지원받는 건 공간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킹메이커 활동가들로부터 생활 전반에 걸친 도움을 받는데요. 지원받은 물품 생활비를 쓰는 방법을 조언 받기도 하고, 병원을 가야 하거나 법률지원 등을 받을 일이 생길 때 상근자들이 직접 동행하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의 성장을 돕는 참모 역할을 하는 ‘킹메이커’처럼, 성인으로서 챙겨야 할 법적 절차나 건강문제 등 청소년부모가 어려워하는 일에 든든한 조력자가 되주는 겁니다.
킹메이커는 청소년부모가 사회에서 돌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주목합니다. 2019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만 24세 이하 청소년부모의 규모는 8000여 가구. 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제도는 많이 부족한 상황인데요. 정부차원의 비용이나 공간지원이 이뤄지기 전까지, 긴급하게 필요한 응급 상황에서는 민간 차원에서의 지지가 빠르게 이뤄져야 합니다. 이에 대해 사업총괄을 담당하는 배보은 대표는 부모가 되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청소년부모 관련 현장을 보면 미혼모나 한부모 같은 경우는 미약하게나마 지원체계가 마련돼 있어요. 반면 임신과 출산을 결정한 청소년부부는 별다른 지원 없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요. 청소년부모에 대한 사회 여건이 정말 열악한 거죠.”
119응급하우스 사업을 운영하는 조은별 간사도 자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은선씨의 경우 지금 만 24세에요. 119응급하우스에 들어오는 데는 아이가 12 개월 미만, 청소년부모는 만 24세까지 지원하고 있으니 이용 가능해요. 하지만 정부 지원에서는 배제되죠. 세상에서는 나이가 찼으니 어른으로 보는 거예요. 근데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하려면 그 역량을 준비할 기간이 필요하잖아요. 이 친구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현재 청소년부모의 생활을 긴급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는 매우 드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임신 출산 후 청소년부부까지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은 킹메이커가 운영하는 119응급하우스 하나뿐인데요. 청소년부부가 정부나 민간 차원의 주거지원책까지 연결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주거 공백. 킹메이커는 이 기간에 해당하는 청소년부모의 삶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긴급한 공백을 메우고자 119응급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숙과 무책임’ 청소년부모를 보는 시선
“생각 없이 사고친거야. 피임을 제대로 했어야지.”
“어려서 책임 못 지는데 아이는 어떻게 낳으려고?”
부모가 되기에 미숙하고 어리다는,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는 게 무책임하다는 시선. 킹메이커가 청소년부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대할 때마다 마주하는 편견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된 청소년들은 진지하게 출산을 결정합니다. 그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부모가 되죠. 최근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청소년부모의 이야기가 다뤄지는데요. 배보은 대표는 청소년부모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라마 속 여학생도 아이를 지우려고 많이 고민하지만 낳기로 결심해요. 임신 사실을 두고 절대 실수라 말하지 않고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뱃속의 생명은 태어나기 전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잖아요. “낳을 자신 있어?”라는 질문에 아버지인 학생이 말해요. “낳을 자신 없어. 하지만 지울 자신은 더 없어.” 그게 정답이거든요. 책임질 수 있어서, 낳을 수 있어서가 아니에요. 생명이라 지울 수 없어서 낳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에요.”
청소년부모를 자기 삶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주체로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 킹메이커 활동가들은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2019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꾸준히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2022년 사업 기획 시 활동가들은 재단 측에 ‘12개월 미만 영아’를 양육하는 청소년부모의 긴급 거주를 위한 119응급하우스를 제안했고, 이에 아름다운재단이 이를 지원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엄마가 나이가 많던, 아빠가 나이가 많던 부모 중 한쪽이 만 24세 이하이고 그들이 양육하는 12개월 미만의 아이가 위기라고 한다면 119응급하우스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아이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재단에서 청소년부모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해 지원을 해주셔서 저희 현장에 큰 힘이 됩니다.” 킹메이커 활동가들에게, 지난 3년 청소년부모지원사업에 대한 매뉴얼이 나오고 관련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 건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만든 성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청소년부모의 권리가 당연해지는 사회를 위해
청소년부모에 대한 지원제도가 조금씩 자리 잡히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을 위한 시설들은 부족합니다. 119응급하우스 같은 긴급지원 시설의 확산, 청소년부모의 아이 양육과 더불어 부모 자신의 학업과 성장을 도와줄 제도 보완 등, 청소년부모를 온전한 구성원으로 대하고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가 되야 하죠. 킹메이커는 원가족과의 분리, 생계와 육아의 막막함 등 청소년부모를 둘러싼 여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오늘도 활동을 계속 하는 중입니다.
“시설 이용자 수가 많아졌다는 건 저희가 원하는 사업성과가 아니에요. 이 세상이 청소년부모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어서 결국 ‘시설 이용자 0명’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그 덕분에 이런 응급보호 시설이 필요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청소년부모는 우리와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자 똑같이 시민으로 존중과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이들이지요. 청소년부모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그들이 양육하고 있는 아이가 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아름다운재단이 언제나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글. 이상미 작가 ㅣ 사진. 김권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