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
너무 많이 알면 피곤한 인생살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한 주제만 던져도 상식이 흘러나오는 사람을 보며, 재단의 한 간사가 말했습니다.
“니 그렇게 많이 알면 인생 피곤하다. 나처럼 단순하게 살아야 편하다. 크크크”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졌었죠. 기업은 이윤을 위해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일하다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쌓아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재단의 구성원들은 한 분야가 아닌 전체와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발달해있습니다. 신문 1면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치, 경제, 사회, 예술, 철학 등 깊이 알지는 못해도 대략의 흐름은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카테고리 범주를 한정 지을 수 없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발달하였고, 그런 간사를 보며 다른 간사가 유쾌하게 던졌던 멘트였던 것 같습니다. (아주 보기 좋게 해석하자면요 ^^)
그런데 정말 많이 알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걸까요?
오늘 이야기할 내용은 ‘진정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 입니다.
임파워먼트 Empowerment : 힘을 부여하다
임파워먼트에 대해 복잡하게 설명하자면 경영학의 조직행동론과 사회복지학 이론으로 복잡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아름다운재단 모금팀에서 일하는 간사의 시각에서 좀 쉽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 손님과 셰프
요즘 TV를 틀면 가장 핫한 직업은 바로 ‘셰프’인 것 같습니다. 매일 먹는 음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각양각색 셰프들이 만든 창의적인 음식들이 등장할 때면, 그저 맛있는 것만 찾던 과거에서 벗어나 대중들의 삶의 질이 매우 높아져 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에 대해 ‘미식회, 평가단,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섬세하고 엄격한 미식가들이 음식에 대해 평가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가장 최고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당연히 셰프 당사자이겠지만, 그 음식에 대해 평가하고 음미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낮다면 더욱더 창의적이고 환상적인 요리들이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그저 단순한 스파게티, 된장국으로 평가해준다면 셰프는 더 이상 창의적이고 좋은 음식을 만들어낼 궁리를 하지 않겠죠. 그래서 가장 최상위의 음식점에는 최상의 미각을 지닌 고객들이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노고를 알고 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수준 있는 고객이 훌륭한 셰프를 만듭니다.
2. 환자와 의사
얼마 전 SBS 스페셜에서 흥미로운 주제의 내용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양심적인 의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치아가 상한 환자와 함께 몰래 카메라를 실험했습니다. ‘양심 의사’로 소문난 치과에 가니 아직은 음식을 씹는데 불편하지 않으니 두고 볼 만하다고 진료하였고, 강남의 한 치과에 가니 지금 당장 치료해야 하며 수 십만 원의 치료 비용이 든다고 했습니다. 양심 의사로 소문난 의사는 병원 인건비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직원없이 의사 혼자서 진료를 보기도 하고, 다른 양심 의사는 개인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빚이 6억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양심 의사들은 강남의 의사들이 그런 고액 치료비 부담의 진료를 하는 것은 인건비와 병원 임대료 감당을 위해 당연한 구조라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의사와 상담 진료를 하면서 개인의 병명과 치료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으며 의사를 활용하는 환자는 단 1명뿐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과한 치료비를 부담하게 하는 의사만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병과 치료법, 복용약에 대해 환자도 적극적으로 묻고, 공부하고,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중에 익명의 의사들이 토론을 펼치며 ‘병원 수가 인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저 역시도 병원 수가 인상에 대한 개념을 알지 못하고 있던 터라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 내용을 한 번 검색해봤던 기억이 납니다.
3. 재단에서 일하는 간사와 기부자
몇 몇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부? 그거 남을 위해 좋은 일 하는 거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 좋은 일’.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부’를 그저 남을 위해 돈을 주는 단순한 봉사 활동 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듯 돈을 잘 쓰는 것 또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에서 고액으로 기부하는 기부자님들을 만나고, 상담하는 일은 ‘그저 고액의 기부금 받으면 끝’이 아니었습니다. 기부자 본인이 사업해서 돈도 많이 벌었으니 큰 기부금 내고 잊어버리는 기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가끔은 재단에서 일하는 간사 입장에서 고액의 기부금을 내고, 아름다운재단이 잘 알아서 하리라는 깊은 신뢰를 보여주는 기부자님이 편할 때도 있습니다. (하하하)
그러나… 지구 상의 다양한 사람들만큼 다양한 성향의 기부자님들이 있습니다. 매 년 내가 만든 기금으로 모여진 기부금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주기적으로 묻는 기부자님도 있고, 내가 지정하는 지원 사업에 쓰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묻기도 합니다. 매 년 기부금으로 딱 몇 명 씩만 지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정해진 영역 외에는 다른 곳에는 절대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못을 밖는 등. 매우 다양한 욕구와 다양한 성향을 지닌 기부자님들이 계시죠.
그래서 때로는 기금 보고서가 재무재표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지원 받은 아이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기관을 물어 물어 역 추적 하기도 하고, 다양한 개인의 성향을 어디까지 맞춰야 할지 예민해질 때도 있습니다. 내가 낸 기부금이 어떻게 정확하게 쓰여졌는지 꼼꼼하게 묻는 기부자님이 있기에 재단에서 일하는 간사들도 깐깐하게 보고 또 보고 체크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업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볼 때는 추상적으로 ‘기부 = 그저 좋은 일’로 단순화 되는 것이죠. 이는 가령 비영리 /사회 복지 영역의 일뿐만은 아닐꺼라 단언합니다. 세상에 비춰지는 모든 일들이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면 그저 단순하고 별 거 아닌 일처럼 치부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아무리 좋은 사람도 곁에서 함께 일하면 싫어진다는 말이 만연하니까요. 하하하)
남 탓하는 것은 참 쉬운 세상
지난 5월 발생 이후 36명의 사망자를 남기고 종식 선언된 메르스. 보는 내내 함께 살아 가는 우리 이웃을 서로 경계하며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들이 무섭기도 하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사망자의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하고, 뉴스를 보며 많은 국민들이 빨리 대응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며 손가락질 해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며 내리는 결론은 항상 비슷합니다. 개인과 기업, 단체를 지적하다가 결국은 이 사회의 ‘구조’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비판합니다. 살아가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단순하게 O아니면 X로 단정지을 수 없고, 모든 일들이 인과 관계 속 거미줄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저 조차도 이 사회의 구조가, 재단의 구조가, 우리 나라의 분위기가 그렇게 조성되어 있다고 쉽게 말해버리곤 합니다. 가장 쉬운 것은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몰아가는 것이고, 또 남의 탓을 확장해서 우리 사회 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해버리는 것이기에 그런 듯 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릅니다. 임파워먼트(empowerment)라는 용어가 생겨난 배경을 봐도 1980년대 중반 미국 기업 내에 만연하던 조직 구성원들의 무력감을 해소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에 몰입하게 하여 변화와 성과를 추구하게끔 하는 수단으로서 등장하였다고 합니다.(박원우, 1997). 활발화되는 경쟁 구도 속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의사 결정 권한과 자율성은 부여 받았지만, 여기에 단순히 권한 위임과 분배에서 멈추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권한에 대한 새로운 창조, 확산의 임무를 얻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율성을 부여 받은 한 편, 더 무거운 임무를 부여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임파워먼트의 첫 걸음, 나부터 꼼꼼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무언가 변화시키고 싶다면, 나부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세한 관심이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변화적인 측면에서는 그 방향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 ‘유명한 셰프가 만든 음식이 왜 저 따위야?’라고 말하는 대신 셰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설명합니다. 비판이 아닌, 더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기 위한 배경이 되겠죠.
– 이 병원의 치과 의사가 나한테만 매 번 많은 치료비를 내라고 하는 것 같다면, 내가 정확하게 어떤 증상과 치료법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환자도 무턱대고 의사를 불신하지 않을 것이고, 의사도 환자에 대해 쉽게 판단해버리지 않습니다.
– 내가 힘들게 번 돈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잘 쓰여지기를 원한다면, 내가 낸 기부금에 대해 꼼꼼하고 정확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은 쉽지만, 내 탓을 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본질은 함께 서로 나아가기 위함임을 바라본다면 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큰 구조를 바꾸려면 여러 사람이 움직여야 하고 시간도 걸리니, 나부터 바뀌는 게 가장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우려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진상’과 ‘임파워먼트의 권한’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 부디 알아주셨으면… ^^)
사실 이 글을 읽으신 후, 기금을 출연하신 많은 기부자님들이 정말 엄청나게 꼼꼼한 잣대로 저에게 요구하시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도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위로하며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우선 나 자신부터 바꿀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나 ”
– 아름다운재단 예종석 이사장님 말씀 중에서
글 | 손영주 간사
김복원
회신 메일을 안적어 드렸네요
gtgt0765@gmail.com
입니다 !!
김복원
안녕하세요 손영주간사님
외교부인가 사단법인 국제구호NGO 글로벌투게더 에서 모금담당하고 있는 김복원 간사 입니다.
모금간사로 채용된 날 부터 즐겨찾기에 추가해서 자주 글 읽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이 첫 직장이고 신입직원입니다. 전에 계시던 분은 직장을 퇴사 하셨구요, 신입이 단체에 후원과 모금을 책임지게 된겁니다.
쉽지않네요 ..
가이드도 없이 모금을 기획하고 한다는것이.
다급한 마음에 조언을 구하고자 글 남깁니다.
이번주에 단체에서 저에게 기업모금을 해오라고 일을 주었는데요 눈 앞이 깜깜하고, 아직도 깜깜합니다..
역량 부족을 인정하는 꼴이 될 까봐 못한다고 말은 못하고, 네 알겠습니다 했어요.
저희가 필리핀 영유아 위생개선 지원사업을 하려고 해요. 열악한 필리핀 아이들에게 위생키트를 제공해줘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목적이에요.
기업에 제가 어떤 목소리를 낼지, 어떻게 찾아가며, 또 누구에게 찾아 갈지, 누구를 만날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조언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