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및 시민모임의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2021년 사업 뒷이야기를 담습니다. 오늘 소개할 단체는 마을메이커스페이스 놀삶 시민모임입니다. 놀삶은 2021년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를 통해 ‘서재 지역 신구세대(구주민과 신주민) 관계 잇기’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옛동네 서재마을의 어르신과 신동네 아파트 아이들이 만나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네트워크가 마을을 변화시킨 프로젝트였습니다.   

대구 달성군 다사읍에는 ‘서재’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오랜 시간 집터였던 자리에 신축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는데, 지역의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이 공동체 삶을 위해 지은 협력적 주거공동체 ‘마음뜰’이다. 마음뜰 1층에는 주민 공유공간 ‘놀삶’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주민인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놀이를 통해 삶의 재미를 만들어간다.  

특명! 토박이 어르신들의 경계심을 낮춰라

서재마을은 과거에 금호강 너머로 배를 타고 학교를 다녔던 어르신들이 여전히 살고 계신 오래된 마을이다. 어르신들의 평균 연령대는 80대. 배추농사, 딸기농사, 부추농사 등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농촌마을이었던 이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외부인들이 유입된 건 1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생활권이 다른 아파트 주민들과 토박이 어르신들은 좀처럼 섞이지 못했다. 이에 놀삶의 운영위원들은 2021년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를 통해 ‘신·구 주민 잇는 삶마을학교’를 운영했다. 학교처럼 마을학습을 통해 서로 교류하자는 취지다.

신·구 주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놀삶의 강미영·이인경 운영위원은 어르신들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부터 험난한 미션이었다고 토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했던 시기라 경로당도 문을 닫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장님과 부녀회장님 연락처를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낯선 사람에 대한 어르신들의 경계심이었다. 그저 어르신들과 인사 나누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였지만,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며 이인경 운영위원은 당시를 회상했다.

놀삶의 공간을 이용하는 아이들과 함께, 뒤쪽 좌측이 강미영, 우측이 이인경 운영위원

“토박이 어르신들과 인사라도 나누고 차도 마시면서 교류하고 싶은데, 개인정보라서 이장님 연락처를 알려주시지 않는 거예요. 놀삶이 있는 건물이 누구네 집 아들이 사는 곳이라고 얘기하니 그제서야 겨우 이장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선거기간이었다 보니,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하는 걸로 오해하셨어요.”

놀삶의 운영위원들은 토박이 어르신들과 친해지기 위해 먼저 다가갔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드리고 싶다, 텃밭 가꾸는 거 배우고 싶다, 화투 잘 치는 법 배우고 싶다며 찾아갔지만 돌아온 건 오해였다. 선거 표를 받으러 왔느냐, 교회 선도하러 왔느냐, 물건 팔러 왔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불순한 의도로 접근해온 사람들이 많았기에 어르신들로서는 당연한 태도였다. 강미영 운영위원은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무모한 시도였다고 덧붙였다.

“어르신들께 우리가 무슨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마을주민이니 인사 나누고 친해지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이해를 못하셨어요. 시간이 점점 지나니 차가웠던 태도가 조금씩 바뀌셨죠. 올해 어버이날에는 경로당에 가서 카네이션도 달아드리고, 아이들이랑 트로트 공연도 했는데, 마음의 벽이 조금 허물어진 걸 느껴요. 집에 돌아갈 때 아이들에게 용돈도 주시더라요.”

마을을 알아가기 위해 시작된 신문 만들기와 바자회 개최

놀삶의 운영위원들은 마을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토박이 어르신들과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서재놀이신문’을 발행했다. 1년에 한 번 제작되는 이 신문은 놀삶에서 놀며 살아가는 아이와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과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아파트 주민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골목 구석구석을 줍깅(쓰레기를 주우며 하는 산책)하면서 탐방하고, 그걸 토대로 지도를 만들어 신문에 소개한다. 어디에 논뷰 카페가 있는지, 어디에 복숭아꽃길이 있는지, 어느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는지 등 시시콜콜한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우리 마을 이야기 강사님을 소개합니라’라는 코너로 토박이 어르신댁을 찾아가 인터뷰도 한다. 지난해 신문에는 서재1리에 시집 와서 63년 동안 살고 계신 유00 부녀회장님의 이야기를 다뤘다. 젊은 주민들은 어르신댁 마당에 둘러 앉아 대구환경자원사업소(쓰레기 매립장) 설립을 반대해 마을주민들이 똥물을 바가지째 부으며 데모했다는 이야기며, 정부에서 나눠준 안남미를 심어 논 농사를 지었던 이야기며 마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들었다며 이인경 운영위원은 후기를 덧붙였다.

서재놀이신문

놀삶은 토박이 어르신들과 친해지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어르신들이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 등을 팔고 사는 서재놀장(바자회)도 운영했다. 바자회 시기가 한창 바쁜 배추농사 시기와 겹쳐 토박이 어르신들은 거의 참여하지 못했지만, 바자회를 통해 서로 몰랐던 젊은 주민들끼리도 알아가고 교류하는 계기가 됐다. 놀삶은 이 바자회를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정기적인 연중행사로 이어나갈 생각이다.

마을공동체의 의미를 조금씩 찾아가는 서재마을

처음에 놀삶에서 어르신들을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냉담한 반응에 과연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었다는 운영위원들. 경로당을 찾아가면 고스톱을 멈추지 않고 눈도 맞추지지 않으려 했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고스톱을 접고, 귀 기울여주시는 태도에서 조금 더 가까워졌음을 느끼고 있다.

놀삶의 바람은 마을주민들끼리 함께 놀이를 통해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차마 어르신들에게 시도하지 못했던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도 앞으로는 시도해볼 생각이다. 또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토박이 주민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발행하는 작업도 해보려고 한다.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난관이 따랐지만, 서로 안면을 익히는 소기의 목적만큼은 달성했다는 놀삶 운영위원들.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이 끝나더라도 어르신들과의 교류를 이어나가며 즐거운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두 사람은 내비쳤다.

놀삶 강미영·이인경 운영위원의 한마디

“사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과 친해지고 뭔가를 한다는 게 아이들만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저희 같은 어른들도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저희가 다가간 만큼 어르신들께서도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셔서 뿌듯해요. 화·수·목요일 오후(방과후 시간)에는 놀삶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으니, 어르신들이 들어오셔서 차도 한 잔씩 마시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도 어르신들과 어울려 사는 삶을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글 |사진  더디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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