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는 외롭다. 가족을 위해 아침 저녁 바쁘게 일한다. 피곤하고 지칠 때도 힘들다는 내색조차 할 기회가 없다. 가족들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도 익숙치 않은 한국의 아버지들. 이른둥이를 가진 아버지들은 더 그렇다. 이른둥이들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생이별을 하고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때로 힘들기도 할텐데,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조차 없는 이른둥이 아버지들. 그런 이른둥이 아버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버지들의 솔직, 담백, 감동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본 인터뷰는 5월 11일 ‘이른둥이 가족캠프’에 참가하신 세 가정의 아버지들과 이뤄졌습니다. 참여해주신 한담희 어린이의 아버지(이하 담희), 현명성 어린이의 아버지(이하 명성), 이채수 어린이의 아버지(이하 채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재단
진행 : 늦은 시간 이렇게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보통 가족의 중심이라 하면 가장인 아버지를 떠올리는데, 정답이 아니겠죠. 안주인이라고 불리는 어머니도 아니고 바로 ‘우리’, 가족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어머님의 신청으로 캠프에 참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떠십니까? 아버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참가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명성 아버님?
명성 : 물론 애 엄마가 신청했죠. 참가도 처음이구요. 작년에 기회가 있었지만 일 핑계로 못 왔죠. 솔직히 애 엄마처럼 적극적인 마음은 아니에요. 제가 성실한 가장도 못 되고, 평소 귀가가 늦는 편이라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늘 부족해요. 심하게는 보름에 한 번 애들을 보기도 하는 걸요. 막상 와 보니 기대 이상이었어요.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좋아하리라 생각 못했죠.
채수 : 집사람이 신청했죠. 우리 채수는 둘째인데, 또래 아이들에 비해 작고 외소해서 평소 걱정을 많이 해왔어요. 그런데 이런 곳에 와서 보면 정상적인 아이와 전혀 다르지 않아요. 저는 작년에도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실은 이번에는 안 뽑혔으면 했어요. 우리 가족이 참여하면 다른 가족에게 기회가 줄어들 테니까요. 행사에 참여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담희 : 맞아요. 야외에서 이뤄지는 행사라 평소보다 훨씬 생기 있고 밝은 게 사실이에요. 저희도 애 엄마가 신청했고 올해로 두 번째에요. 평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여의찮아 기회만 되면 아이 엄마가 하는 일에 동참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진행 : 세 분 모두 직접 신청은 못하셨는데, 어머님들의 적극성을 따라잡기는 어렵겠죠. 행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어머님들의 관계망은 아주 넓고 단단해 보였어요. 아버님들은 어떠십니까? 어머님들처럼 아버님들의 모임이나 교류가 있습니까?
명성 : 우리 집 아이는 쌍둥이로 큰애를 24주, 작은애를 27주에 낳았어요. 나서부터 인큐베이터에 재활치료에, 병원 생활을 오래 했지만 대부분 아내의 몫이었어요. 같은 병동을 쓰는 엄마들끼리 정보도 공유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죠. 하지만 제가 낄 자리가 딱히 없다고 해야 할까요.
담희 : 저도 그래요. 고작해야 주말에나 한 번 들르는데 아버지들끼리 어울리는 게 불가능하죠. 애 엄마들끼리 얘기하는데 끼는 것도 어색해서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따로 없어요. 엄마들이 아이를 보는 집중력이 워낙에 뛰어나다 보니 말 그대로 낄 지리가 없죠. 솔직히 그 핑계로 아이를 엄마한테 일임하고 나 몰라라 하는 부분도 있기도 하죠.
명성 : (웃음) 맞아요. 일임하는 편이죠. 대신 아이에 관한한 애 엄마 의견을 무조건 따라요. 어떤 제안도 반대 안 해요. 어떻게든 잘 해보겠다고 사방으로 뛰어다는데 그것마저 뺏으면 진짜 나쁜 놈이죠.
채수 : 아버지들과의 교류, 안 쉽죠. 대부분 육아는 엄마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요. 병원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알고 지내는 사람도 생기고, 아이 건강을 걱정하는 얘기를 나누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 집의 아버지들에게 여유랄 게 있나요.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는 게 일상인데.
모두들 : (웃음) 맞아요. 시간이 남아도는 아버지는 또 돈 벌러 나가야죠.
채수 : 장애 치료, 재활 치료 등 처음에는 모르는 것 투성이에요. 몰라서 지원을 못 받거나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나마 지인들끼리 정보를 나눴으니 가능했어요. 감사하죠.
담희 : 동병상련 아니겠습니까? 퇴원 후에 다시 만나는 일은 드물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잖아요. 서로 이해하는 거죠.
진행 : 맞습니다. 서로가 이해하는 관계죠.
채수 : 좀 전에도 말했지만 엄마들 대단해요. 꼭 주도권이 아니어도 우리는 애 엄마들 못 따라가요. 아이가 심하게 아플 때는 의사들도 나가떨어져요. 수술이 몇 번 되면 쳐다보는 것도 힘들지 않겠어요? 그래도 엄마들은 해요. 내 새끼니까, 그래야 사니까. 아이들 입원이 길게는 1년도 넘기는데, 레지던트나 인턴보다도 더 능숙해요. 나중에는 의사가 물어보기까지 한다니까요.
명성 : (웃음) 맞아요. 대단해요. 그런 말 있잖아요. ‘여자는 약한데, 어머니는 강하다!’
진행 : 우리 어머님들 강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죠. 그 어머니를 써포트 해주는 분이 또 아버지들 아니겠습니까? 출산부터 아이의 병원 생활, 재활치료를 해오면서 힘든 적이 많았을 겁니다. 경제적 부담감도 컸을 테구요, 어떠셨습니까 담희 아버님?
담희 : 경제적인 부담은 당연히 없을 수 없죠. 저는 그보다 내 아이를 보면서 느낀 절망감이 더 컸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예요. 병원을 전전하면서, 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왜 하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을까, 숱하게 생각했습니다. 집사람을 탓하는 마음도 있었구요. 어쩌면 대상없는 원망 같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휴.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런 마음 없어요. 아내도, 누구도 탓할 일이 아니에요. 이렇게 된 이상 잘 살아보자, 한 번 잘해보자 그런 마음이에요.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을 아내가 해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다행이고 감사하지 않습니까?
이채수이른둥이 아버지 ⓒ아름다운재단
명성 : 병원 생활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이 아주 커요. 벌이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애 엄마가 일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잖아요. 두 아이가 일주일에 열두 군데 정도의 병원을 다녀요. 치료비용이 싼 곳은 7천5백원, 비싼 곳은 4만원까지 가요. 당장 제가 일을 쉬면 모든 게 중단되죠. 애 엄마도 그것을 알면서 가끔 짜증을 내요. 제가 너무 안 도와 주니까.
진행 : 좀 도와주고 그러세요. (모두들 웃음)
명성 : 도와주긴 해야 하지만, 저도 사생활이 있다 보니. (모두들 웃음)
채수 : 저도 마찬가지에요. 부담은 물론이고, 우리 아이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으로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애 엄마랑 말을 안 할 정도였어요. 우리 부부는 결혼 초에 아이 계획이 없었어요. 애초에 부부끼리 재미나게 잘 살아보자 했어요. 그런데 말 그대로 애가 덜컥 생겨버린 거죠. 둘째 채수는 아프기까지 하고. 원망 많이 했죠. 아내한테 원망도 많이 들었구요. 이혼까지 생각했어요.
진행 : 극한까지 생각하셨군요. 그런데 아이 계획이 없었다는 건 놀랍군요.
채수 : 저희 부모님들도 아이 욕심이 없었어요. 처가댁은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도 처가에서는 손자를 바라요. (웃음) 여하튼 채수를 낳은 직후에 종교를 접했죠. 목사님과 주변인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결혼 초처럼 젊었다면 극한까지 갔을지도 몰라요. 안타깝게도 젊은 혈기가 일을 그르치게 하더라구요. 주변에서 보니 아이가 부모가 젊을수록 이혼 위가가 더 크더군요.
진행 : 세 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럽습니다. 아픈 아이가 있다 보니 다른 형제의 육아나 집안일, 가족 간의 관계도 쉽지 않았겠어요. 주변에서 도움 주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채수 : 저는 말씀드렸듯 종교에요. 종교를 접하기 전까지 우리 부부도 서로의 탓만 했어요. 좋은 말씀과, 진실 된 관심으로 극복할 수 있었죠. 이제는 시련이라고 생각 안 해요. 다 내려놨죠. 내려놓고 보니 마음 편해요. 우리 채수, 지금은 저 녀석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에요. 사람들이 종종 우리 가족을 이상한 눈으로 보기도 해요. 애가 아픈데 저렇게 웃는 낯으로 종교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하, 이젠 다 감사해요. 우리 채수도 아빠를 얼마나 잘 따르는데요. 고맙죠.
진행 : 명성 아버님은 종교가 있습니까?
명성 : 전 없습니다. 저흰 장인어른 장모님이 같이 사셔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담희 : 우와, 애 봐주는 사람이 한 분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요. 그런 감사한 일이 없죠.
명성 : 맞아요. 정말 큰 도움이 돼요. 처음에는 출퇴근 육아도우미를 썼어요. 월 150에 6개월 정도. 부담이 너무 크더라구요. 두 아
이 모두 병원 생활을 했으니 힘든 일도 많았죠. 우리 명성이는 산소 호흡기를 떼고 나왔지만 우성이는 호흡기를 달고 퇴원했어요. 산소호흡기 센서가 3,40분마다 울렸어요. 잘 수가 없었죠. 90볼트 이하로 떨어지면 센서가 울리는데 당연히 일어나야죠. 애가 위험한데. 아내는 아내대로 저는 저대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리고 제가 술과 친구를 너무 좋아해요. 저는 술로 스트레스를 풀어요.
담희 : 저희 부부는 성격 탓인지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아요. 10년 가까이 살면서도 크게 싸운 적이 없어요. 화가 나서 서로 언성을 높인 적은 있지만 그 순간뿐이었어요.
진행 : 담희 아버님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성격 같아요.
담희 : 그런 편이죠. 도움을 주는 사람은 특별히 없지만 우리 담희에게는 형제가 있잖아요. 동생들이 누나와 같이 놀아주고 어울려주고 심지어 제 공부할 때 누나를 참여하게 해주는데 보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요.
진행 : 방금 담희 아버님께서 형제들 이야기를 하셨는데, 아무래도 아픈 아이에게 관심과 손길이 치우치기 마련이죠. 다른 형제들이 그것을 잘 받아들이나요?
현명성 이른둥이 아버지 ⓒ아름다운재단
명성 : 명성이가 490그램, 우성이가 830그램으로 태어났어요. 실은 우성이 뒤로 딸 하나가 더 있었는데 열흘 만에 떠나보냈죠. 명성이는 열이 40도가 넘는 불덩인데도 울지 않는 아이였고 우성이는 조금만 아파도 울고불고 난리였죠. 두 아이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아팠지만 실상은 명성이가 더 심각했어요. 그래서 엄마의 손길이 더 갈 수밖에 없죠. 요즘 우리 우성이가 그걸 알아가는 것 같아요. 어려서 시샘하는 표현도 울음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형한테 무조건 양보하지는 않아요. 그 모습을 보니 우성이가 더 안쓰러워졌어요.
채수 : 아픈 동생 때문에 집사람이나 나나 큰아이한테 마음을 많이 못 준 건 사실이에요. 채수는 너무 작게 태어나서 울음소리도 잘 안 들렸어요. 그런 동생 때문에 병원에 뛰어나다는 부모로 큰애가 많이 외로웠을 거예요. 실은 작년에 채수 때문에 귀농을 생각했어요. 공기 좋은 곳에서 놀이 같은 학교생활을 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큰애 때문에 포기했어요. 우리 부부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큰애는 배움에 욕심이 많아요. 피아노, 영어, 수학, 최근에는 춤까지 너무 좋아해요. 이제는 큰애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어요.
담희 : 실은 제가 집사람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바로 아이 때문이었어요. 집사람이 들으면 오해할 것 같아서 말 한 적은 없지만 솔직히 애가 먼저였는지 집사람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어요. (모두들 웃음)
진행 : 그게 그거죠. 경상도식 프로포즈가 “내 아를 나도!(내 아이를 낳아줘)” 아닙니까? (모두들 웃음)
담희 : 아, 그러네요(웃음). 우리 담희는 36주에 자연분만으로 출산했기 때문에 다들 정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신생아 검사 때도 이상 소견이 없었구요. 1년 가까이 까맣게 몰랐죠. 어쩌면 보는 것으로 그냥 예쁘고 좋아서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도 있었어요. 아무튼, 담희 밑으로 있는 두 동생들이 누나를 그렇게 안 챙겼다면 집사람은 더 힘들었겠죠.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죠.
진행 : 그렇군요. 다른 가정에 비해 형제들이 더 조숙한 것 같아요. 아이가 엄마를 양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채수 : 아무래도 환경이 그렇다보니 아이들이 알아가는 거죠. 우리 큰애도 밝고 명랑해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더라구요.
진행 : 네, 맞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엄마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웃음) 어머님들께서 큰 아이, 작은 아이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나서 아버님들 마음까지 헤아려 주십니까? 어떠세요 부부 간의 관계는 괜찮으세요?
담희 : 저는 찬밥이죠. (웃음)
명성 : 애 엄마만 남아 있는 거죠. (웃음)
모두들 : (웃음)
진행 : 안타깝군요. 술이라도 한 잔 하시면서 대화를 유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명성 : 대화가 쉽지 않아요. 솔직히 전 집사람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하면 겁부터 나요.
모두들 : (웃음)
명성 : 희한하게 집사람 잘못인데도 결국에는 제가 나쁜 놈이 돼 있더라고요. 여자들은 조목조목 잘 따지잖아요. 그러다보면 윽박지르게 되고 싸움이 커지죠. 아예 얘기를 안 한 때도 있었어요. 저희 부부, 실은 이혼법정까지 갔었어요. 그런데 그 무렵 집사람이 아팠어요. 말을 안 했으니 저는 전혀 몰랐죠. 병원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는데, 유방암이라고 했어요. 산후 우울증도 심했고 명성이 우성이로 힘들었을 텐데 제 몸까지 아팠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때 처가댁에서 욕 많이 먹었죠.
진행 : 그럼 아내의 암 때문에 이혼을 철회하신 건가요?
명성 : 집사람이 안 됐더라구요. 애도 아프고, 애 엄마도 아픈데 이혼까지 하면 전 정말 죽일 놈이죠.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났고 애들도 조금씩 좋아졌어요. 집사람 우울증도 좋아졌구요. 예전보다는 살 만하죠. (웃음) 저희 집은 제가 술만 끊으면 이제 다 된 거예요. (웃음)
채수 : 그 정도 했으면 술 끊을 때가 됐는데.
모두들 : (웃음)
채수 : 결혼 초에는 저도 많이 싸웠어요. 술, 담배, 다 했어요. 지금은 안 그러죠. 젊었을 때는 집사람을 참 많이 오해했어요. 여자들이 그렇잖아요. 마음은 안 그런데 말을 툭툭 던지듯 뱉거든요. 그게 꼭 남편을 원망하는 목소리로 들려요. 그러다보면 욱하고, 욱하면 싸움 이 되죠. 다 종교의 힘이에요. 이제는 집사람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요. 뭔가를 시키면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시켰나 생각하는 거죠. 걸레질을 원하는지, 휴식을 원하는지 다 알아요. 우리집은 청소도 밥도 모두 제 담당이에요.
명성, 담희 : 이런 얘기 밖으로 새 나가면 안 돼요. (웃음)
모두들 : (웃음)
채수 : 집안일은 물론이고 정기적으로 집사람한테 시간도 줘야 해요. 여자들이 그런 걸 좋아해요. 한 달에 한 번 친구를 만나게 한다던가. 저는 당연히 술도 담배도 예전처럼 안 해요. 제 인생은 무소유에요. 제 이름으로 된 건 달랑 휴대폰 하나에요. 모든 걸 포기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모두들 : 사리 나오겠어요 채수 아버님. 대단하세요. (웃음)
채수 : 모르긴 몰라도 여기 오신 부모님들은 다 사리 한두 개쯤은 나올걸요.
한담희 이른둥이 아버지ⓒ아름다운재단
진행 : 저는 제외지요? (웃음)
담희 : 저는 채수 아버지처럼 그렇게 못해요.
진행 : 경상도 남자들 퇴근해서 집에 가면 딱 세 마디 한다면서요? ‘아는(아이는)?’, ‘밥 도(밥 줘)’, ‘불 꺼’. (웃음)
담희 : 맞아요. 딱 그거에요. 그런데 오늘 ‘부부 역할극’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집사람 마음을 결혼 후 처음 들여다본 것 같아요. 나만 믿고 따라와서 내 곁에 사는 여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예전에는 이런 사람이었지, 내가 오해했었구나, 만감이 교차하던데요. 채수 아버지 말처럼 여자랑 남자는 언어가 다른 것 같아요. 솔직히 역할극 참여하기 전 설문지를 보면서 이걸 왜하나 했거든요.
진행 : 그래서 담희 아버님, 연애 때 감정을 느꼈습니까?
담희 :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오늘 같은 경험은 처음이에요. 놀라웠어요. (웃음)
진행 : 대화로 못 푸는 게 없다고 하잖아요. 술 한잔 하면서, 차 한 잔 나누면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우리 아이들 얘기로 마무리를 해 볼까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커나갈까, 아버님들의 기대와 염려가 클 거라 생각합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 잘 적응하고 내 아이가 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아버님들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명성 : 현재는 아이가 어려서 어딜 가도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일이 별로 없어요. 아마 자랄수록 명성이나 우리 가족이 넘어야할 산이 더 높아지겠죠. 죄근에 아이 엄마가 학교를 알아보고 있더라구요. 명성이가 다른 아이들처럼만 산다면 뭘 더 바라겠어요.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힘을 키워줘야죠.
담희 : 우리 담희는 지금 상태로 보아서는 많이 자라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 부부가 같이 가야죠. 담희가 우리 부부보다 더 힘이 강해질 때까지, 우리 부부의 힘이 바닥이 될 때까지 우리가 안고 가야죠.
채수 : 채수는 또래보다 조금 작을 뿐인데 스스로 약하다는 생각으로 활동이나 사람관계를 제한해요. 그게 많이 안타까워요. 마음이 단단해지도록 끌어줘야겠어요. 그리고 동생 때문에 많이 외로웠을 우리 큰아이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려주고 싶어요.
진행 : 늦은 시간까지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정말 아버님들끼리 오붓(?)하게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가족들끼리 모일 수 있는 기회나 자리가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면서 긍정적인 힘을 얻는 건 아이든 어른이든 똑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해서 아름답고, 부모님들의 사랑이 모여서 따뜻한 밤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아름다운 재단’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소영
안녕하세요. 실은 담희 아버지의 글을 읽고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도 36주의 자연분만으로 2.24의 아들을 낳았고 현재는 9개월쯤 되거든요..
신생아때 이상소견도 없었고요..
그저 첫 아이라서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하는데…
또래 아이들과 비교는 되더라구요…
죄송하지만…글중에 담희를 일년후에 알게되었다고 하는데..무엇을 말하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일찍 아이를 나은 후 항상 감사하면서도 걱정이 많은 엄마라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