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김혜라 이른둥이
ⓒ 아름다운재단
혜라는 울음 끝이 짧다. 앙~ 울음이 터졌는가 싶다가도, 엄마가 눈을 맞추면 금세 방실거린다. 혜라의 애교 필살기 덕분에 엄마도 웃음이 많아졌다. 아들을 키울 땐 몰랐던 애틋함으로 마음을 싹 녹이는 딸아이. 딸은 자라면 엄마의 친구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아직 돌도 안 지난 혜라지만, 벌써부터 상미 씨는 딸과 친구처럼 지낼 날들을 상상해보곤 한다.
세상과 만난 지 9개월. 혜라는 25주 하루 만에 태어난 이른둥이다. 119 구급차를 타게 되는 경우가 다 그렇듯, 상황은 급작스럽게 전개됐다. 어느날 갑자기 이슬이 비쳤고, 산부인과에 가보니 이미 자궁 문이 열렸다는 것. 빨리 인큐베이터가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기라 하여 구급차를 타고 원광대병원으로 갔다. 자궁이 더 열리지 않게끔 하는 처치를 받으며 이틀을 버텼지만 3일째, 결국 양수가 터졌고 790g의 작은 아기가 태어났다.
“심장도 잘 안 닫혀있고 장도 부풀고, 산 넘어 또 산이었어요. 그래도 혜라가 차근차근 이겨내줘서 고맙고 대견하고, 한편으론 그 작고 여린 게 인큐베이터 안에서 혼자 분투하고 있는 게 너무 애처로웠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아이의 생명력은 경이로웠고, 고맙게도 시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주었다. 한데, 뇌 쪽에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뇌척수액의 흐름이 막혀 뇌에 물이 고이는 수두증이란 병이었다. 뇌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옮기라 하여 전남대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밖으로 물을 빼내는 치료를 진행했지만 결국 마지막 선택이라는, 뇌에서 복부까지 연결되도록 몸 안에 관을 삽입하여 물길을 내는 수술을 받았다.
혜라는 수술도 잘 이겨냈다. 퇴원하던 날, 상미 씨는 혜라와 함께 집으로 가는 게 꿈같아서 울었다. 칼끝처럼 벼려둔 긴장이 풀리니 꾹 참고 있던 눈물의 둑이 터져버렸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더 아픈 법이다. 산후조리는 아예 포기하고, 아직 엄마 손이 더 필요한 네 살짜리 아들도 시부모님께 맡긴 채 병원만 쫓아다니느라, 그간 상미 씨의 몸과 마음도 많이 아팠다. 하지만 아픈 자식 걱정에 힘든 내색을 할 수 없는 게 또 엄마였으니…. 남편과 아들에 혜라까지, 처음으로 온 식구가 한 집에 모인 날, 상미 씨는 많이 웃고 또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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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값 하는 아이, 혜라
하지만 모처럼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퇴원한지 넉 달 만인 지난 해 11월, 혜라는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혜라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제일 먼저 눈치 챈 것도 엄마였다. 토를 하고 보채기 시작하는데, ‘아기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기엔 뭔가 불안해 수술을 받았던 병원을 다시 찾았다. 엄마의 직감은 맞았다. 수술시 삽입했던 관이 막혔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애가 고통이 심했을 거라고. 그것도 모르고, 혜라가 너무 보채니까 어르고 달래다 짜증을 낸 적도 있었거든요. 제 딴에는 아픈 걸 호소한 건데, 엄마가 그걸 바로 못 알아들은 게 제일 미안하죠.”
재수술이 결정되었다. 벌이도 없이 빚만 잔뜩 진 상태에서 또 수술이라니, 상미 씨는 앞이 다 캄캄했다. 사실, 혜라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경제적으로 위기상황이었다. 남편이 새로 시작한 가게가 문제였다. 하루 수입이 하나도 없는 날이 지천일 만큼 장사가 지독히도 안됐다. 이에 가게를 접으려 해도, 가게 또한 나가지 않아 빚만 늘었다. 그런 상황에 혜라가 힘들게 태어났고 수술까지 했으니, 빚은 갑절이 됐다. 그래도 부부는 절망하지 않았다.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도움으로 아이의 입원비와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만 살릴 수 있다면, 엄마와 아빠는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혜라의 첫 수술이 끝나고, 아빠는 가게에서 팔던 옷을 거리로 들고 나와 노점을 시작했다. 사람이 많이 들고 나는 길목이라 기대해 볼 만 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갈 의지를 다지고 용기를 충전할 즈음 혜라가 또 다시 아팠으니, 지칠 줄 모르던 부부도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툭툭 터지는 불행 끝엔 희망의 씨앗이 준비돼 있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라는 이른둥이 후원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혜라는 과연 이름값을 하는, 또 해야 할 아이였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세상에 널리 갚으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거든요. 지갑에 만 원짜리 한 장 없는 상황에서, 두 번이나 입원비와 수술비를 다 해결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정말 은혜를 많이 받은 아이인건 분명해요. 고마운 사람이 참 많아요.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 그리고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까지, 혜라를 지켜준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 은혜를 세상에 다시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혜라는 건강하게 자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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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끊임없이 단련된다
재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혜라는 웃음이 많아졌다. 몸이 불편하지 않으니 보채지도 않는다. 아이가 편안하니 엄마의 마음도 편안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에 희망을 만났던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장사를 나갔다. 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를 위해 집안일도 척척, 장난꾸러기 아들과는 친구처럼 놀아주고, 눈만 마주치면 웃는 혜라 덕분에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늘 입가엔 웃음이 맴돈다.
지금 상미 씨의 뱃속엔 셋째가 자라고 있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셋째라니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도 많지만, 상미 씨 부부는 힘들 때 찾아온 이 아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혜라를 위해서도, 훗날 힘이 될 수 있는 형제자매 하나 더 만들어주는 게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여동생이어도 좋고 남동생이어도 좋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다섯 살 큰아들이 여동생에 이어 어떤 녀석인지 알 수 없는 뱃속의 아이까지 강력하게 견제하며 질투하고 있다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서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임을 믿는다.
며칠 전, 뱃속의 아이가 25주 하루를 넘겼을 때, 상미 씨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25주 하루. 혜라가 태어났던 시점이다. 상미 씨는 혜라를 가졌을 때, 자신이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한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생활고에 임신과 육아의 피로가 겹쳐 큰 아이에게도, 뱃속의 혜라에게도 각박했던 게 아직도 미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엄마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걸, 아이가 자라듯 엄마도 자란다는 걸 그녀도 안다. 엄마란 아이들 때문에 웃고 울며 끊임없이 단련되는 존재라는 걸, 누구보다 진하게 경험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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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라 이른둥이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통해 재입원치료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