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초록빛 경빈이
문경빈 이른둥이 이야기
‘너 거북이니? 왜 느릿느릿 걸어 다니고 그래?’
여직 걸음마에 익숙지 않았던 지난 다섯 살에 경빈이는 어린이집 친구들의 ‘거북이’라는 놀림이 속상하도록 마음에 박혔다. 여문 가슴이어도 생채기 날 무던히도 아픈 말. 가시 같은 그 ‘거북이’를 빼내느라 엄마인 변수정 씨는 조촘조촘 조심스레 경빈이를 다독여야만 했다. 그러니까 경빈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엄마 배 속에서 백 밤이 아니라 여든 밤만 잠든 채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다고, 이른둥이라서 친구들과 달라서 그렇다고 변수정 씨는 경빈이를 토닥토닥 품어야만 했다. 그러자 그 서슬 퍼런 날에 경빈이의 몸짓이란, 변수정 씨의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그다지도 몸부림치며 펑펑 울었다고…….
삶의 이른 자리로 엄마를 마중 나온 특별한 생명
결혼한 지 6년, 다섯 번의 인공 수정과 두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축복의 선물처럼 경빈이는 변수정 씨의 품 안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오매불망 절실히 기다렸던 탓인지 경빈이는 겨울에 핀 봄꽃처럼 애잔하게도 34주 만에 세상에 불쑥 고개를 내밀고 말았다. 그로 인해 당시에는 호흡 곤란 증세도 지나쳤지만 경빈이에게 별다른 이상 징후는 띄지 않은데다 2.9kg으로 이른둥이치고는 제법 튼튼하게 태어났기에 그녀는 의사의 말처럼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경빈이가 2개월 때부터 뻗치는 모습이 이상하더라고요. 지인들에게 얘기해 봤지만 제가 경빈이 힘들게 가져서 예민한 거라고 다들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엄마니까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경빈이가 해야 할 단계를 안 하니까요. 경빈이가 9개월이 되었을 그제야 뇌성마비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병원에서는 미숙아라서 그런 거고, 운동 발달 장애에 이를 테니 큰 병원에서 재활 치료하라고 간단하게 얘기하더라고요.”
청천벽력 같은 그 진단을 변수정 씨는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또 다른 병원의 문을 세차게 두드려 봤지만 안타깝게도 의사들은 동일한 답이었다. 그녀는 좌절, 죄책감, 우울 등 통한의 감정에 휩싸여 친구들은 물론 친정어머니께도 경빈이의 남다른 장애에 대해 슬프도록 내내 알리지 않았었다. 대신 그녀는 경빈이의 재활을 위해 오롯이 두 발로 전력 질주만 할 뿐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치료하면 경빈이가 온전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 경빈이 치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죠. 경빈이가 심하게 울음 터뜨릴 때는 모유를 먹이면서 병원까지 운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뒤돌아보니 3년 동안 병원비를 지나치게 많이 썼더라고요. 아빠의 벌이는 한계가 있는데……. 그때 지인이 알려 줘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어요. 재활치료비 하며 어려운 시기에 무척 인상 깊은 감동을 받았죠.”
아빠의 죽음도 모른 체한 철든 꼬맹이
그날도 경빈이의 치료가 이어지던 2011년 10월, 설상가상으로 변수정 씨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존재했던 경빈이 아빠가 갑작스레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원인도 모를 그 몹쓸 병마에 경빈이 아빠는 애통하게도 끝내 숨을 거둬야 했다. 응급실에 실려 와서 중환자실에 머물러 사망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흘 만에 발생한 처참한 풍경이었다. 이제 변수정 씨는 한 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경빈이를 위해 당연히 벌이까지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한 8개월 정도 경빈이한테 소홀했었어요. 그러니까 걸을 수는 있던 애가 다시 주저앉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처럼 휠체어 타고 새롭게 집중 치료해야 했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경빈이가 제 몸을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재활 치료가 힘들지만 경빈이가 이렇게 잘 견뎌 주니 너무 고마워요.”
흐뭇한 미소를 짓던 변수정 씨는 살짝 표정을 바꿔 때론 아들이 애늙은이 같다며 경빈이랑 부둥켜안고 눈물지었던 그 순간도 털어놓는다. 사실 변수정 씨는 혹여 경빈이가 충격에 빠질까 봐 1년이 지나도록 아빠의 죽음을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빈이는 가슴 저미게도 이미 아빠의 죽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다만 경빈이가 내색하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는 아빠 얘기를 꺼내면 엄마가 울음지을까 봐, 엄마의 눈물이 세상에서 1등으로 싫은 작년의 여섯 살짜리 아이는 그래서 아빠의 죽음을 끙끙 참으며 홀로 속병을 앓았다.
“아빠 죽은 지 1년쯤 흘렀을 때 경빈이가 묻더라고요. 엄마, 아빠는 중환자실에 있지, 하고. 그래서 아빠 보고 싶냐고 물끄러미 쳐다봤더니 또 아니래요. 그런데 잠시 후에 응, 아빠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중환자실에 아빠 보러 갈까, 했더니 평소에는 됐다던 녀석이 조용히 내뱉더라고요. 엄마, 아빠를 어떻게 봐. 아빠는 하늘나라에 갔는데…… 하고.”
세상에 사랑을 흘려보낼 참 사랑스러운 아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간혹 마음이 어려운 순간을 마주하는 변수정 씨. 얼마 전까지도 지친 시간을 지새운 그녀는 주위의 격려도 감사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경빈이에게 혹여 악영향을 미칠까 봐 금세 마음을 굳건히 다잡았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일곱 살배기 아들을 위해 지난달, <이른둥이 가족캠프>도 기쁘도록 참여했다. 경빈이를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 용기를 낼 엄마의 아름다운 그 눈빛이란.
“물론 힘들긴 해요. 벌이도 그렇고, 아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경빈이한테 떳떳해지려고요. 아직 젊으니까 제가 더 노력해서 경빈이 더 보살피려고요. 그래서 경빈이가 이곳저곳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걸 알려 준다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경빈이 기죽지 말고, 자격지심도 없이 자라난다면 참 좋겠어요.”
변수정 씨의 간절한 소망이 깃든 초록빛 아이, 경빈이. 머지않아 조우할 수 있었던 경빈이는 예상대로 아픈 아이라기보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유쾌한 아이였다. 장래 희망에 대한 담소를 경빈이에게 귀 기울였을 때 아이는 사회복지사의 꿈을 들려주었다. 이전에는 재활 병원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던 변수정 씨의 증언에 비추어 보면 좋아하는 사람 따라 휙휙 바뀌는 소원인 듯도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확신하는 100퍼센트는 경빈이는 이 세상에 사랑 그득한 존재가 될 거란 믿음이다.
아흔아홉 가지를 다 주고도 하나를 더 주고 싶어 자신마저 내어 주는 변수정 씨의 모성애. 이에 화답하듯 엄마의 마음을 울림 가득 읽어 주는 경빈이의 어른 부끄러운 효. 그 사랑의 결을 따라 동행하는 길이라면 변수정 씨도, 경빈이도 서로의 존재 그 자체로 행복을 가늠하는 삶을 걸을 수 있을 거라 짐작된다. 경빈이가 행복하지 않다면 변수정 씨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은 도무지 없을 것이고, 변수정 씨가 행복하다면 경빈이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은 정말이지 없을 것이다.
* 이른둥이는 아름다운재단과 교보생명이 함께하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통해 재활치료비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글. 노현덕 ㅣ 사진. 이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