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시련과 행복에 대하여

정까리따스 이른둥이 이야기

 

 

 

ⓒ 아름다운재단

 

탄생, 그것은 서사시(epic story)의 서막이다. 저마다가 타고난 기운을 가지고 한 판 펼칠 모험의 첫 장이다. ‘으앙’ 울음을 터뜨린 순간, 주사위가 떨어진다. 평생의 기승전결이며, 그것을 헤쳐 나갈 기질도 정해진다. 그것이 명(命)이다. 이리 말하면 잔인하다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제 막 태어난 생명에게 네 길이 그려졌다니. 하지만 그래서 운(運)을 덧붙이는 것 아닌가. 이리저리 자유로이 움직이며 의지대로 멋진 서사시를 장식할 ‘운’을. 그런 의미에서 엄마란 진정한 ‘운’이다. 아이가 맞는 최초의 ‘운’이다. 이른둥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까리따스에겐 송유선 씨가 바로 그 ‘운’이다.

 

“까리따스를 임신하고 병원에 갔더니 기형아라며 큰 병원에 가보라더라고요. 선택을 하라는데… 생명 앞에서 선택이라니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느님이 내게 특별한 아이를 주시려나 보다. 평화가 깨지진 않았어요.”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거였다. 세상 빛도 못 본 ‘명’을 나 살자고 거둘 수는 없었다. 조건부 생명에 길들여졌다면 다른 결론을 쥐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유선 씨는 자신과 함께 뛰는 심장을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일곱 번째 아이 까리따스를 낳았다.

 

“여덟 달만에 아이와 만났는데 보는 순간 ‘까리따스’가 떠올랐어요. 사랑, 애덕, 자비, 자선이라는 뜻의 라틴어. 그런 아이가 되었으면 바랐으니까요. 물론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진 않았다. 여러 병원을 매번 업어서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제 몸이 그다지 튼튼한 게 아니라서…. 나중엔 퇴행성관절염과 디스크가 왔는데 어쩌겠어요, 엄마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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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휘청거리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 송유선&정철운 부부는 각자 수녀와 신부를 꿈꾸는 신실한 신도였다. 한데 그들의 운명은 다른 곳에 닿아 있었다. 신이 아닌 인간을 섬기는 삶이 그들의 사명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결혼서약과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을 찾아오는 생명을 겸허하고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약속했다. 결혼하자마자 들어선 첫째부터 7년 전에 낳은 막내까지 여덟 명의 아이 모두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물어요. 제왕절개를 하면서까지 여덟 명을 낳은 이유를요. 그리 넉넉지도 않은데 게다가 건강하지도 않은 애들을 왜 낳았느냐는 거죠. 제 답은 언제나 같아요. 생명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가 타고난 삶과 소명이 있는 거다! 그 소중한 뭔가를 함부로 계획하고 싶지 않았어요.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고요.”

 

17년 동안 낳은 5남 3녀를 잘 키우려고 송유선&정철운 부부는 뭐든 열심이었다. 송유선 씨는 아이들을 보살피며 집안을 지켰고 정철운 씨는 공사(公社)에 다니며 가족을 책임졌다. 하지만 아이 여덟 명을 양육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쉴 틈 없이 일해도 뭐든 넉넉지 않았다. 더군다나 까리따스와 막내는 장애를 가진 이른둥이였다. 별 것 아닌 감기에도 병원 신세를 지는 게 그네들의 일상이었다. 송유선&정철운 부부의 시련은 예서 멈추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아이마저 희귀난치병과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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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리따스와 막내 때문에 정신없을 때 큰애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어요. 몰랐었죠, 저는. 굉장히 힘들었고 그 일로 마음을 크게 다쳤어요. 감정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삶을 놓으려고 해서 지금은 병원에 있어요. 제 마음이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죠. 잘 키워보려고 노력했는데 역부족이네요. 생활비는 줄일 수 있는데 약값, 병원비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요.”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고통을 가진 큰아이를 입원시키자 단번에 집안이 휘청거렸다. 건강하던 다른 아이들도 좀체 웃지 않았다. 부부라고 예외일 리 없었다.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돌파구가 보이지 않으니 감히 웃을 수 없었다. 송유선 씨는 이렇게 지내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지키려고 혼신을 다해 버텨온 지난 17년이 수포로 돌아간 듯 허무한 까닭이었다.

 

“빚이 자꾸 쌓이니까 해결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퇴사를 결심했어요. 퇴직금을 써야 하니까,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암담하지만 또 이렇게 살아보려고 해요.”

 

까리따스, 그 생명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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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이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를 때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알게 됐다. 누구라도 손 내밀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송유선 씨에게 이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까리따스가 다니던 성모병원 복지사 선생님께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알려주셨어요. 남편퇴사한 뒤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는데 그것도 떨어져서 너무 낙담했는데 이렇게나 고마운 일이 생기다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데 굉장한 위로가 됐어요.”

 

허허벌판에 맨 몸뚱이로 버려진 기분이었는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만나고 안심이 됐다는 송유선 씨. 그녀는 누군가 그녀의 가족을 지켜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모든 게 까리따스를 통해서라는 걸 깨달았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생명의 위대함. 그것은 놀라운 인식의 확장이었다.

 

“여덟 살 수준이 안 돼요, 우리 까리따스는요. 대화도 안 되고 말도 못해요. 예전엔 그게 힘들었는데 얼마 전부터 까리따스를 보면 웃게 돼요. 이런 상황에서도 미소를 짓게 돼요. 이 아이가 나를, 우리 가족을 선택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어요. 만약 까리따스가 없었다면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도 모르고 지냈겠죠. 이 힘든 시간, 살아야 겠다 다시 힘을 내게 돼요.”

 

헤아려보니 가족 모두의 쉼표였던 ‘2013 이른둥이 가족캠프’도 까리따스 덕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사랑, 애덕, 자비, 자선을 품고 닮은 까리따스는 그야말로 특별한 아이였다. 그 생명의 고귀함이 분명 송유선&정철운 부부와 일곱 형제를 보살폈다. 이내 치유했다. 그렇게 그들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래서이다. 이른둥이 다운증후군 까리따스는 그들 모두의 행‘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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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승연  사진.정김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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