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나무는 바람결에 자라고
김수현 이른둥이 이야기
하나에서 스물까지, 숫자가 울려 퍼지는 내내 수현이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뒷머리에 양손을 젖힌 채로 재활 치료를 버텨 낸다. 제법 힘들 만도 한데 90㎝에 11㎏, 42개월의 자그마한 인격체는 서너 발자국 너머에서 지켜보는 엄마 김아름 씨에게 사이사이 경이로운 웃음마저 짓는다. 당연히 그녀 또한 사랑 그득 실어 아들에게 아름다운 미소로 화답한다. 무척이나 닮은 모자간의 그 환한 표정. 다만 여실히 모르긴 해도 아들에게 그 밝은 얼굴을 선사하고자 그녀는 숱한 밤들의 뒤안길에서 그토록 숨죽여 울어야만 했을 것이다. 오직 그 웃음, 미래를 넉넉히 살아갈 상징 같은 그것을 비로소 심어 주기 위하여.
이래도저래도 나의 아들이다
그날 산책길에서 느닷없이 양수가 흘러내렸다. 임신한 지 28주째. 끊임없이, 남김없이 아기의 생명수가 사라지는 동안 절박하도록 산부인과를 찾아야 했다. 아기를 포기해야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들으며 전전한 끝에 겨우 여분의 인큐베이터가 자리하는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견디고 견디던 열흘 후, 다행스럽게도 1.5㎏의 수현이를 출산했지만 아이는 호흡 곤란으로 인해 뇌병변이 발생하고 말았다.
“뭐 어때서. 말을 못하면 어떻고, 못 걸으면 어때서. 행여 침대에만 누워 있어도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인데 그 모습이 그렇게 중요해?”
수현이를 향한 남편의 핏빛 고백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남편의 이 소중한 마음이 한없이 무심한 듯 여겨져 야속하기만 했다. 외딴섬에 홀로 갇힌 것처럼 아무에게도 고통을 토로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쉬이 털어 놓지 못할 벅찬 슬픔에 한 달을 정신없이 눈물만 쏟았다.
“수현이 태어나고 1년 정도는 기뻐한 적이 없었어요. 힘들기만 하고, 괜히 수현이가 원망스럽기만 하고. 딸랑이를 흔들어도, 이름을 불러도 반응 없이 인형처럼 누워만 있으니까요. 그 때문에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수현이를 돌본 것도 같아요.”
부정과 체념으로 얼룩진 그해. 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엄마였다. 현실이 뭐래도 수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감사라는 가치를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재활 말고는 수현이에게 달리 병의 치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이 불현듯 감사해진 것이다. 그제야 수현이에게 완연한 모성애를 선사할 수 있었던 그녀. 단지 그럴수록 지난날 아들에게 못 다 준 사랑이 후회막급했다.
아름드리나무는 바람결에 자라난다여느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제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이른둥이의 양육을 위한 걸음은 만만치가 않았다. 병원비를 비롯해 여러모로 경제적인 부담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중됐다. 무엇보다 수현이에게 다양한 치료의 기회를 주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아무래도 치료 기관이나 복지 제도의 증설이 절실히 필요한 것도 같았다.
“작년이랑 올해에는 수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몇 군데 알아봤는데 다 거절을 당했거든요. 수현이 같은 경우는 앉는 게 안 돼서요. 어린이집에서도 수현이만 돌볼 수는 없는 거니까요. 이해는 하죠.”
그러고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 대해서 덧붙였다. 물심양면으로 수현이를 보살피는 데 매우 보탬이 됐다고 했다. 다른 이른둥이 엄마들에게도 널리 소개됐으면 하고 그녀는 어느새 수현이를 넘어 다른 이른둥이를 위하는 마음 또한 조심스레 전했다. 다름 아닌 수현이가 닮을 이타적인 사랑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일단 이른둥이를 지원하는 곳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좋더라고요. 지원금도 그렇고 보내 주는 책자도 굉장히 도움이 돼요. 수현이가 많은 애들이랑 달라서 어렸을 때 만져 줘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방법에 대한 것도 상세히 잘 적혀 있더라고요.”
행복, 그보다 숭고한 축복의 여정으로
수현이의 엄마 노릇이 첫 번째이지만 때때로 아내나 며느리, 그 외에 제몫을 다할 수 없어 못내 죄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실 좋게 티격태격하는 남편도, 병환 중인 시어머님도, 그 누구도 나무라기보다는 위로와 격려를 더했다. 그러하니 그녀는 더욱 수현이의 엄마여야만 했다.
“수현이가 엄마 정도만 말할 수 있었는데, 30개월 지나서는 갑자기 말문이 터지더니 진짜 수다쟁이 같아요. 조금 힘들게 얘기하긴 하지만 재활 치료 선생님이 예쁘다고 하기도 하고, 어쨌든 수현이한테 참 고맙더라고요.”
엄마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그 사랑으로 수현이는 나날이 성장했다. 그래서 내년이면 다섯 살인 수현이는 유치원으로 발을 내딛을 예정이다. 그간 병원이라는 공감대 어린 공간에서 모자는 부둥켜 나름대로의 감사와 기쁨을 찾아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은 물론이고 삶의 다음 계단을 오르기 위해 소망을 기도할 시기이다. 그렇기에 엄마는 염려 섞였지만 이제 수현이가 새로운 세계로 행보할 때 상처 없이 여전히 잘 놀았으면, 잘 웃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오롯이 품는다.
높고 맑은 가을하늘 같은 수현이의 웃음기, 문득 그 위로 행복과 축복의 영어 어원이 연상된다. 그러니까 영어에서 행복(happy)은 사건(happeing)이라는 우연성과 관련이 있다. 이에 비해 축복(blessing)은 피 흘림(bleed), 즉 희생에 기인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삶을 걸어갈 때 너나 할 것 없이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에 좌우되지 않는 인격이란 어린 시절에 내리받은 부모의 축복, 특히 엄마의 숭고한 사랑으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그런 의미에서 수현이가 터뜨리는 웃음은 엄마의 축복이다. 이대로라면 수현이는 아마도 언제나 넉넉히 살아갈 것이다.
글. 노현덕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