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세상 모든 아이들이 애틋하다

김재민 기부자

 

  다섯 살, 세 살 남자아이들이 뛰어노는 집답게 거실이며 아이 방이며 온통 자동차 장난감 천지다. 하지만 그 많은 장난감 중에서도 재민이(3세)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무조건 재희(5세)가 갖고 노는 장난감인지라 우당탕탕 소동이 그치지 않는다. 동생에게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는 재희와 형아가 손에 쥔 건 뭐든 뺏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재민이의 분투는 엎치락뒤치락 제법 치열하다.   샘 많고 애교 많은 세 살 인생 재민이의 특기는 형아가 갖고 노는 장난감 뺐기, 엄마가 형아 이름을 불러도 제가 먼저 달려 나가 엄마 품에 안기기, 눈부신 미소로 할머니 애간장 녹이기다. 심지어 샘 많은 동생 때문에 고달픈 다섯살 인생 재희도 잠든 재민이를 보면 “내 동생, 귀엽다!” 하며 꼭 끌어안는다 하니, 과연 마성의 귀염둥이라 할 만하다.   동글동글 빚어놓은 듯 예쁜 두상에 뽀얀 피부. 보름달처럼 잘생긴 재민이는 얼마 전 두 돌을 맞았다.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내 아이의 생일은 해마다 특별하다. 아이가 내게로 온 첫 날로부터 한 해 두 해, 쑥쑥 무탈하게 자라주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더욱이 내 아이가 여느 아이들이 좀처럼 겪지 않은 힘든 시간을 견뎌왔다면, 그 감회는 더욱 깊을 수 밖에 없다. 재민이의 두 돌을 맞아 최은선 씨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 기부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27주 만에 900g의 이른둥이로 태어난 재민이. 또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또랑또랑 건강한 재민이를 보면, 아이와 엄마가 지나온 힘든 시간을 연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애틋한 눈길로 손주를 바라보는 재민이 할머니의 말씀이 하루하루, 아니 매순간 간절했을 지난날을 짐작케 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 순간들을 옛 이야기처럼 하게 될 때가 꼭 올 거라고 주문을 외듯 다짐하고 장담했는데, 정말 그런 날이 왔네요. 건강하게 잘 자라준 재민이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작은 아기가 만든 강한 엄마   조산은 ‘어느 날 갑자기’란 말로밖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첫아이를 무탈하게 낳았던 만큼 둘째아이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선 걱정과 부담이 덜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주일 전 정기검진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평온한 일상 속에 마음과 몸의 컨디션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던 금요일 밤.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해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갔더니 진통이 멈추는 듯 하다가 급작스레 양수 파열로 진행됐다.   토요일에 입원해 월요일 저녁에 재민이를 낳았다. 7개월로 접어드는 첫날,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아기는 엄마가 품에 안을 수 없을 만큼 작고 여렸다.    출산 당일은 아예 아기를 만나지도 못했다. 이튿날 오전 담당의와 면담 후 신생아중환자실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처음 만났다. 삑삑- 기계음 속에 여러 개의 전깃줄과 링거 주사줄에 둘러싸여 있는 조그만 아기를 보며 은선 씨는 첫 아이 때와는 또 다른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당황스럽고 겁이 났지만 작고 여린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엄마는 더욱 크고 강해져야 했다.  

  두 달이 넘는 재민이의 입원기간 동안 은선 씨는 낮 2시와 저녁 8시에 가능한 면회를 꼬박꼬박 다녔다. 양평 집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진 왕복 두 시간이 걸렸지만, 아기를 잠깐이라도 보기 위해 하루 두 차례 병원과 집을 오갔다.    “낮엔 시부모님과 함께 가고, 저녁엔 남편과 함께 갔어요. 재민이가 병원에 있었던 77일 동안 제가 면회를 못간 게 두 번 정도일거예요. 제가 못갈 땐 어머님, 아버님이 대신 가주셨죠. 다른 아기들은 다 엄마 아빠와 만나고 있는데, 우리 아기만 혼자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잠깐의 눈 맞춤을 위해 하루에 4시간씩 차를 타고 다녀도 힘든 줄을 몰랐다. 내 아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으니, 엄마는 매순간 그리움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재민이의 이름으로 실천한 나눔   고맙게도 재민이는 수술 한번 하지 않고 잘 자라줬다. 교정일을 지나고도 3개월 여 진전이 없었던 미숙아망막증에 뇌출혈3기까지, 산 너머 또 산처럼 아슬아슬 가슴 졸일 일들이 잇따랐지만 늘 경계를 넘지 않고 고비를 넘겼다.   “밤에 갑자기 기침이 심해져서 응급실에 간 적도 여러 번이에요. 조금만 불안한 기미가 보여도 인터넷이나 책으로 정보를 찾고, 병원으로 뛰어갔죠. 보통 둘째는 첫 애 때 보다 쉽다고들 하는데, 이른둥이는 발달상황이 다르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공부해야 했어요.”   이른둥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사이트 (http://www.babydasom.org/)는 정보와 소통이 절실했던 은선 씨에게 유용한 창구가 됐다. 재민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신생아중환자실 앞에 비치돼있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책자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의 이른둥이 지원사업을 알게 됐다는 은선 씨는 이후, 다솜이 사이트를 즐겨 찾으며 매년 연말에 진행하는 이른둥이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이벤트와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고 한다.  

  “이제 두 돌 되면서 재민이는 재활도, 이른둥이도 졸업한 셈이에요. 한시름 놓으니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저와 재민이가 지나온 길, 그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엄마와 아기들을 응원할 때란 생각이 들었어요. 해서 재민이 생일에 맞춰 재민이 이름으로 기부를 시작했죠.”   첫 아이를 낳고부터 최은선 씨는 저소득국가의 기아 아동을 후원하는 등, 아이들을 위한 기부활동에 관심을 가져왔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세상 모든 아이들이 애틋해지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이에 하나 더 보태어진 것이 이른둥이와 그 가족에 대한 관심이다. 은선 씨는 이른둥이 엄마들의 커뮤니티를 통해 소중한 경험담을 나누는 것은 물론, 얼마 전엔 재민이를 위해 밑줄쳐가며 읽던 책도 이를 필요로 하는 엄마들에게 전달했다.   건강하게 자란 재민이를 보며 최은선 씨는 가족은 물론이요, 재민이로 인해 새삼 눈뜬 세상 모든 인연과 삼라만상에 감사한다. 그리고 그녀의 감사 인사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더욱 확장되는 중이다. 재희와 재민이, 두 아들을 꼭 끌어안고도 남은 엄마의 너른 품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다.  

글. 고우정 사진. 정김신호

 

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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