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둥이와 부모의 심정으로
영남대학교병원 김재영 의료사회복지사
겨울인 듯 얼어붙은 삶의 계절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에게 절실한 단 하나는 누군가의 체온이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동행, 그것이라면 얼음 나라 같아도 그 사람은 살아갈 만할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여러 겹 밑줄 치며 그의 마음을 읽어 주고, 어찌할 바 몰라서 그와 같은 마음으로 한껏 속상해하다가, 파르라니 마음이 멍울져 그가 돼서 대신 토로하는 동행이라면…… 그의 겨울 같은 계절은 그래도 날 만할 듯하다.
어쩌면 나눔의 본질도 이처럼 마음부터 소통하는 공감일 것이다. 이러한 교감으로 영남대학교병원 사회사업팀의 김재영 의료사회복지사는 환자와 보호자의 서글픈 마음을 동행했다. 올해로 10년째 그녀는 환자의 생존을 넘어 환자의 삶, 즉 살아가는 여정을 절절하게 헤아리고 있었다.
밑줄 치며 마음 읽어 주고
오늘도 김재영 의료사회복지사는 의료 세팅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에게 복지제도를 안내하는 등 상담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루에 적게는 열 명, 많게는 스무 명이 예약 없이 그녀를 찾아온다. 병마가 약속 정해 놓고 찾아오지 않는 것처럼.
여기서 상담의 55% 정도는 소아청소년과 및 재활의학과로 이른둥이 관련이 제법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둥이 출산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데다 영남대학교병원에는 인큐베이터 등 신생아중환자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그녀는 의료사회복지사로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경제적, 심리적 도움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한다.
“특히 재활의학과와 관련된 경우, 단기간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관계 맺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아요. 그럴 때는 조금이라도 혜택을 더 드리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의료비 지원을 연계해 주는 역할이 높아지고, 치료 프로그램도 지원도 할 수 있는 만큼 해 드리려고 해요.”
영남대학교병원에서는 소아재활을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절반 이상은 이른둥이로서 미술치료 프로그램은 환아들의 심리에 안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김재영 의료사회복지사는 환아도 환아지만, 환아 엄마들의 마음 역시 헤아렸다. 실제로 환아의 엄마들은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다. 그래서 정신과 상담을 권해 줄 만큼 심신이 소진돼 있기도 하건만, 환아의 엄마들은 자녀도 아픈데 자신마저 정신과를 의지하긴 싫다면서 못내 고개를 젓는다.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는 소아재활 미술치료를 하는 동시간 보호자들을 위한 심리치료도 병행 중이에요.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그때만큼은 엄마들도 환아 양육에서 벗어나서 힐링의 시간을 가지게 되거든요. 실제로 자살의 충동을 이겨내는 사례도 있었고요. 이런 프로그램이 더 개발되면 좋겠지만, 솔직히 병원이다 보니 복지예산이 없는 실정이기도 해요.”
같은 마음으로 한껏 속상해하다가
그녀가 의료사회복지사가 된 지도 어느새 10년이다. 스물 남짓, 장애아를 위한 학습 자원봉사를 계기로 그녀는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사실 의료사회복지사가 된 먼저 5년은 힘겨운 분들에게 도움 주기 위한 직업정신으로 환자와 보호자를 상담했다. 하지만 그 후의 5년은 조금 달랐다. 결혼한 후 자녀를 양육하다 보니 부모의 마음을 갖게 됐다. 그래서 소아청소년 및 재활의학과에서 치료 중인 환아의 부모에게 감정이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비혼모가 이른둥이를 출산했던 케이스를 상담했던 적이 있어요. 그 비혼모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이라 관련 시설에 위탁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입양도 그렇고 관련 시설에서 출생시 몸무게가 2㎏이 안 된다는 기준으로 이른둥이를 안 받아주는 거예요. 물론 예산 지출이 크기 때문이겠지만 그리 되면 아이는 부모하고 사회에서 다 버림받는 거잖아요.”
그녀는 관련 시설에도 보내지 못하는 데다 엄마에게 키우라고도 못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사회적인 편견으로 이른둥이는 더욱 피해 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백방 수소문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는 관할 자치구에서 반강제로 시설을 지정해서 받아들이도록 조치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그녀는 환아의 엄마같은 마음으로 생존을 넘어 삶, 즉 살아가는 여정을 피력했다.
“질병만 낫는 것이 아니라 진료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인식해요. 치료와 복지는 병행돼야 하거든요. 그런데 사회복지사가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하더라도 의료진과 관련 단체에서 지원이 없으면 그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내 마음이 멍울져 대신 토로하는
지난 10년간 그녀가 추천한 환아 서른 여 명이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 선정됐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그녀와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10년째 동행하고 있다. 의료사회복지사가 되고 지역사회 지원에 집중하던 그녀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지나칠 수 없었다. 이른둥이를 지원하는 유일한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입원치료비는 보건소에서도 지원해 주지만 이른둥이를 위한 재활치료비는 이 곳에서만 지원하거든요. 다시 말해 생존을 넘어 환아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사각지대인 셈이죠. 그래서 말인데, 재활치료비 지원을 확대해 준다면 어떨까 싶어요. 재활치료비 지원을 1년에 2회 접수하는 대신 상시 접수로, 재활치료비를 줄이더라도 지원 횟수를 늘여 주고, 아, 지원 연령 제한도 풀어 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입학 후에 질병을 알게 되는 케이스도 있잖아요.”
그녀의 소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이른둥이와 부모의 심리치료의 지원을 아울러서 절절하게 토로했다. 가족캠프부터 진료비 지원까지 그녀는 이른둥이와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이 돼서 그들을 대변했다.
“꼭 들어주세요. 꼭 지켜 주세요. 꼭 이뤄 주세요. 그리고 금전적인 후원도 감사하지만, 미술치료 같은 심리치료처럼 시간과 재능도 기부해 주셔서 환자나 보호자와 함께해 준다면 더욱 감사할 것 같아요.”
도무지 타인의 것이 아닌 자신의 소원 같은 목소리. 그녀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복지에 대해서 거듭 언급했다. 아무래도 36.5℃의 그녀 같은 마음이라면,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그녀 같은 동행이라면, 아무리 얼어붙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환자와 보호자는 햇볕이 감싸안 듯 따스해져 힘을 내서 그들의 시절을 걸음걸음 관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글. 노현덕 ㅣ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