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려놨다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 이른둥이 양육가이드북 공동저자 신손문 교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이른둥이 양육가이드북> 공동저자 신손문 교수(제일병원 소아청소년과 신생아학 교수)

    그야말로 핏덩이와 같은 작은 아기를 물끄러미 보며, 아기의 조부모들은 의사에게 물었다.  “이래 갖고 사람 되겠소?” “끝까지 치료해야죠”라고 답하면 으레 “책임질 수 있느냐”는 채근이 뒤따랐다. 살지 죽을지도 모를 아기에게, 살아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지 의문인 아기에게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 병원비를 댈 수 있겠느냐고 다그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기의 엄마, 아빠에겐 ‘아직 젊으니 자식은 또 낳으면 된다’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과 30년 전의 이야기다.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양육가이드북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신손문 교수는 국내 이른둥이 치료의 역사를 꿰는 초창기 멤버 중 하나다. 그가 신생아과 전임의를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서울대병원에 신생아집중치료실이 신설됐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른둥이 치료에 중요한 약제가 상용화됐다.   1kg이 넘는 아기들을 속수무책으로 잃어야 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신손문 교수는 400g의 초극소저체중아도 건강하게 살려내는 작금의 의료 현장이 감개무량하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도 뒤따른다. ‘지금 같으면 충분히 살렸을 텐데…’ 싶은 아기들 생각은 세월이 흘렀어도 오롯하다. 아깝게 잃었으되, 잊지는 않았다. 이른둥이 치료에 관한 변화와 발전을 견인한 것은 의료기술의 발달과 제도적 뒷받침이겠지만, 그 이전에 생명을 대하는 의사들의 그와 같은 사명감이 큰 동력이 됐을 것이다.       재입원 및 재활치료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시급하다  

“생명을 살려놨다면 이후로도 책임을 져야죠. 신생아집중치료실은 물론, 퇴원 이후에도 지속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이른둥이 가정의 경제적 짐을 덜어주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체계를 갖춰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이른둥이 출산 시 의료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겠다는 부모와의 실랑이는 옛 이야기가 됐다. 신생아집중치료실이 있는 병원을 찾아 신속하게 입원절차를 밟는 것이 관건일 뿐. 초기 입원비에 대한 정부 지원금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른둥이를 낳더라도 아기를 포기하는 경우는 없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작은 생명의 모습이 눈물겹지만, 의료기술과 ‘시간’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아직 충분히 여물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약제와 기기의 도움을 받아야했던 신체 각 기관이 자연스레 성장을 통해 완성되다보면, 열 달을 채워 나온 아기들과 다를 바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경우가 숱하다.  다만 그렇지 못한 경우, 신생아중환자실을 퇴원한 이후부터가 문제다. 대한신생아학회 조사결과, 이른둥이 가정의 60.2%는 신생아집중치료실 퇴원 후 재입원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으로, 가족이나 지인에게 경제적인 지원 요청을 하거나 적금해지 및 대출과 같은 금융권 방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입원비만 지원해준다고 끝이 아니죠. 아기들 모두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존재하니까요. 가령, 후유장애를 갖고 퇴원한 아기를 예로 들어봅시다. 빠듯한 살림에 재활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재입원을 할 경우의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생명을 살려놨다면 이후로도 책임을 져야죠. 신생아집중치료실은 물론, 퇴원 이후에도 지속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이른둥이 가정의 경제적 짐을 덜어주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체계를 갖춰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이른둥이 100명의 초기 입원비를 지원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 100명 중 장애가 나타날 빈도는 몇 %인지, 또 장애를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인지 조사해봐야겠죠. 관련 재활치료시설의 현황을 파악하여 미비한 시설과 인력도 충원해야 할 테고요.”     또한 신 교수는 산부인과와 신생아중환자실이 하나의 묶음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기는 시간이 단축될수록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신손문 교수는 이른둥이 출산이 어느 가정에든 더 이상 청천벽력이 아니길 꿈꾼다 

    숱한 이른둥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접해온 신손문 교수는 아기 다음으로 살뜰히 보살펴줘야 할 존재는 ‘엄마’라 이른다. 이른둥이 출산 후,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엄마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분만 당시의 두려움에 이어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아기를 만나는 순간, 죄책감을 떠안게 되는 까닭이다.     “신생아중환자실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가며 대부분의 엄마들이 패닉 상태가 됩니다. 쉴새없이 삑삑대는 기계음 속에,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는 너무 작고, 그 작은 몸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장치와 줄을 주렁주렁 달고 있죠. ‘내가 일찍 낳지 않았더라면 뱃속에서 편안하게 있었을 아기인데, 엄마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죄이죠. 그런 엄마들에게 거듭 말해줘야 해요.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엄마의 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고요.”     아기를 위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더욱 절망하는 엄마들에게 신 교수는 딱 두 가지를 당부한다. 엄마가 아기를 위해 해줄 것이 있으니, 하나는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는 간절한 기도요, 또 하나는 모유 수유라는 것. 사실, 출산 시 심신의 스트레스가 극심한 산모는 젖이 잘 돌지 않게 마련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면회시간을 지켜 아기를 만나고 아기 생각이 날 때마다 열심히 모유를 유축하다 보면 처음엔 쉽지 않더라도 조금씩 양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모유가 아기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물론이거니와, 아기를 위해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엄마의 마음을 위로하니 일석이조다.     이른둥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신 교수가 느끼는 아쉬움은 많다. 이를테면 유방암을 극복한 이가 유방암 환자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처럼, 이른둥이 가정이 또 다른 이른둥이 가정에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힘차고 지속적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예전부터 이를 위한 이벤트 아이템도 생각해둔 게 있다. 이른바 ‘이른둥이 운동회’다. 7개월에 태어난 아기들 중 세 돌 된 아기들, 이런 식으로 또래집단 그룹을 지어 연령대에 맞는 신체활동으로 실내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진행하는 것.   이른둥이 가정의 스토리는 대개 비슷하다.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터지고, 엄마와 아빠는 당황한다. 두려워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끝이 보이지 않아 절망한다. 하지만 끝을 본 선배가 용기를 준다면 두려움도 걱정도, 조금은 덜어질 것이다. 씩씩하게 뛰고 구르는 이른둥이들을 보면 웃음도 나고 기운도 솟구칠 것이다. 신손문 교수는 이른둥이 출산이 어느 가정에든 더 이상 청천벽력이 아니길 꿈꾼다. 가족이 한마음이 될 수 있는 연대의 계기로, 서로 의지하며 강건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한 시절로 여겨주길 바란다.    

글. 고우정 ㅣ 사진. 이현경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이른둥이 양육가이드북>이란? 이른둥이 출생에서부터 입원, 재활치료에 이르는 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정보가 들어있는 가이드북입니다. 이른둥이 입원과 퇴원, 수술, 재활치료, 이른둥이 부모 Q&A 등, 이른둥이 양육자라면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정보에서 우리 아이에게 해당되는 치료까지 이른둥이 양육 전반에 대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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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은 교보생명과 함께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기금을 토대로 ‘2.5kg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를 위해 입원치료비 및 재활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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