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는 생명!
25주만에 세상에 나온 시우의 몸무게는 890g.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아이를 아예 보지 않았다. 이전에 다니던 개인병원에서 “이 정도면 태어나도 사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만에 하나 살아난다고 해도 99.9퍼센트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라고 말한 까닭이었다. 살 수 없는 아이라는 걸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면서 장애를 지닌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다고 되뇄다. 그리고 얼마 후 시우를 부정했던 그 말은 잘 벼린 칼이 되어 최희진 씨를 후벼 팠다.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울더라고요. 그 소리에 그간 내가 뱉었던 잔인한 말들이 귓가에 생생하게 울렸어요. 그리고 퇴원하는 날 처음 시우를 봤죠. 정말 텔레비전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런 상태였어요. 그때 교수님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뭔지 물어봤죠. 모유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피가 날 정도로 손으로 막 젖을 짰어요.”
최희진 씨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돼지족을 우려낸 국물을 4개월간 마셨다. 산후조리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오전과 오후 하루 2번뿐인 면회시간을 한 번도 거르지 않으려고 찬바람도 시린지 모르고 다녔다. 아무도 없는 인큐베이터에서 혼자 싸우는 시우를 위해 그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사무칠 뿐이었다.
하루 200번의 석션으로 살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자 기관절개술이 불가피했어요. 작은 몸에 구멍을 내고 기관절개튜브를 삽입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래도 그 과정을 지나니 캥거루 케어를 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또 나아지나보다 기대했죠. 그렇게 6개월이 지나도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해서 또 걱정이었고요.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것밖엔 없었어요.”
차일피일 퇴원이 미뤄지다 호흡기를 뗐고 운 좋게 콧줄도 했다. 2011년 5월 3일, 드디어 시우가 퇴원했다. 이제는 곁에서 마음껏 돌봐줄 수 있어서 좋구나 생각한 것도 잠시. 최희진 씨는 하루 2시간도 잠들지 못했다. 시우는 200번의 석션(suction)을 하지 않으면 가래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녀는 절망도 슬픔도 느낄 시간이 없었다. 때가 되면 석션을 하고 짬이 나면 조각 잠을 잤다.
“매일 쉴 틈 없었죠. 한데 그날따라 시우가 얌전했어요. 남편과 통화하며 어버이날이라고 효도하나보다 우스갯소릴 나눴죠. 그 전화 끊고 바로 시우가 호흡곤란과 심정지를 일으켰어요. 목숨만 붙어 있기를 바라며 119가 올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계속했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3~4분 안에 심장을 소생시켰지만 병원까지 15분 정도 걸린 상태라 이미 뇌손상이 상당했어요. 다들 뇌병변을 걱정했지만 저는 괜찮았어요. 살아있으니까, 눈을 맞출 수 있으니까요.”
한 달이 지나서 시우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입원 전엔 석션과의 전쟁이 기다렸는데 퇴원 후엔 재활치료까지 얹힌 상황이었다. 하나를 수용하면 또 하나가 버티고 서 있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시우가 태어나기도 전에 경험한 ‘포기’의 절망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인큐베이터에 누워있는 시우를 보며 다시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녀였다.
“그 다짐하고 벌써 6년이 지났네요. 그 사이 기도협착 수술만 15번 했어요. 2년 전엔 다시 심정지 직전까지 갔죠. 자잘한 위기는 언제나 있어요. 매번 폭풍우를 잘 지나죠. 요즘 시우 보면 가끔 생각해요. 정말 기적 같다고.”
5년의 재활치료, 시우를 뛰게 하다!
6년 동안 시우 또한 변했다. 씹는 것과 삼키는 것 때문에 여전히 젖병 수유를 하고 침도 흘리고 배변활동도 어렵지만 이제는 뛸 수 있다. 살아있기만 하면 좋겠다고 바라던 아이가 뛰어다니는 걸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늘 죽음이 넘실거리는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었는데 이젠 삶에 훨씬 가까워졌다. 폐동맥 고혈압, 기관지폐이형성증, 호흡곤란, 무호흡, 뇌손상. 시우는 이 모든 걸 거치면서 삶에 안착했다. 퇴원할 때 들고 온 12가지 약을 3개월 만에 중단할 만큼 강인한 회복력이 기적 같은 시우를 탄생시켰다. 문제는 되돌릴 수 없는 뇌손상이었다. 방법은 하나, 재활치료였다. 산소 줄과 호흡이 안 돼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는데 길병원 소개로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인천미추홀재활전문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없던 초창기엔 유모차에 산소통을 달고 10번의 석션을 하면서 걸어 다녔다.
“12개월째부터 지금까지 기본적인 물리치료, 작업치료는 기본이고 언어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어요. 주말 빼곤 매일 재활치료를 다니죠. 그런데도 음성 자체가 안 돼요. 성대에 이상은 없는데 워낙 인큐베이터에서 오래 지내서인지, 튜브를 꽂고 자기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어선지 음성 내는 기술을 몰라요. 그래도 요즘은 약간의 의성어를 쓰긴 해요. 울 때 ‘어, 어’ 소리를 내거든요. 제가 가장 기대하고 듣고 싶은 건 ‘엄마’예요. 엄마 소리 한 번 들어보고 싶어요.”
아이를 살리는 일!
한시도 쉬지 않아야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그게 최희진 씨가 알고 있는 뇌병변 환아의 재활치료였다. 하지만 재활치료는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이 비급여이고 그나마 서비스 기관도 많지 않다. 질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부족하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문제가 돈 하나로 해결될 수 있기에 서글프다.
“시우가 아프기 전엔 장애 아동에게 국가가 엄청난 혜택을 주는 줄 알았어요. 한데 그게 다 개인부담이었어요. 비싼 서비스를 스스로 알아내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거예요. 하긴 이전엔 인천에 장애아동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요.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은 굉장한 의미가 있어요. 사회가 나를, 이렇게 힘든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거든요.”
1년에 적어도 천만 원이 넘게 들어가는 재활치료비가 무려 5년이었다. 고스란히 시우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이 상황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당장 재활치료가 급해서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다. 그때 아름다운재단에서 손을 내민 것이다. 이른둥이를 잊지 않고 있다고, 혼자 뛰는 외로운 레이스가 아니니 힘을 내라고, 이른둥이의 건강한 삶을 지지한다고.
“저는 여러 지원이 우리 시우를 살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터뷰든 뭐든 다 하고 싶어요. 이른둥이 재활치료의 열악한 상황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요. 여러분이 관심을 가진 덕분에 누군가 ‘살 수 있다’는 걸요. 막막한 길 위에서 만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기부자 분들은 시우가 살아갈 세상의 희망입니다. 꼭 살려주세요, 우리 이른둥이 아이들을!”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나아질 거라는 말이 거짓인 시절, 최희진 씨는 이른둥이 재활치료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시간을 놓쳐서 하루하루 낙담하는 그 많은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제대로 된 치료만으로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기부자를 향해 ‘살려줘서 고맙다’고도 덧붙인다. 아이의 목숨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살려줬다고, 나눔이 가진 생기로운 에너지에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한다. 그녀의 진심 어린 인사는 앞으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가 담아낼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 우승연 ㅣ 사진 임다윤
박경미
기적을 일으킨 시우와 엄마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엄마라는 위대함과 잘버텨준 시우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는 모든이들의
희망도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