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고 있는 김예림이른둥이

활짝 웃고 있는 김예림 이른둥이

 

700g의 생명과 만나다!

김정희 씨는 서른다섯에 결혼해서 이듬해인 서른여섯에 임신했다. 결혼하자마자 들어선 아이였으나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첫 아이인데다 노산에 입덧까지 심해서 출산 때까지 노심초사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양수검사 스트레스로 인해 양수가 줄어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하루 2~3리터의 물을 마시고 수액 맞기를 반복했다. 그 즈음 가족 행사로 녹초가 된 어느 밤, 복통이 일었다. 출산일을 한참 남겨뒀기에 별일 없으리라고 생각한 김정희 씨는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 끙끙 앓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겨우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양수조기파열이라며 그녀를 큰 병원으로 이동시켰다. 그렇게 긴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고 그 끝에 태어난 아이가 예림이었다.

“울음소리도 못 들었어요. 이틀인가 사흘 후 면회를 갔는데 정말 작은 아이가 있는 거예요. 700g의 예림이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을 하곤 정말 무서웠죠. 예림이와 같은 이른둥이의 예후가 어떤지 주욱 찾아봤는데 장애가 생긴다, 죽는다… 그런 비관적인 말들이 많았거든요. 내내 글을 읽다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불안해하고 슬퍼하지 말자 싶어 그냥 기도했어요, 정말 열심히!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엔 없더라고요.”

김정희 씨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25주 만에 태어난 예림이는 인큐베이터에서 4개월을 지낸 후 산소 호흡기를 달고 퇴원했다. 그만큼 나아졌다는 건 다행이었으나 작고 연약한 아이를 홀로 감당하는 일은 고행이었다. 산소 포화도가 80 이하로 떨어지면 센서 경고음이 마구 울렸고 김정희 씨의 심박도 따라 뛰었다. 24시간 내내 예림이 곁을 지키면서 혹시라도 맞닥뜨리게 될 위험을 대비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어렵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나중엔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있는 힘껏 노력했으나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예림이는 호흡정지를 일으켰다.

“급히 119를 불러 다시 인큐베이터에 들여놓으니까 ‘이제 죽지는 않겠구나’ 안심되더라고요. 그렇게 1주일씩 두 번 입원했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4월에 산소 호흡기를 뗐죠. 얼마나 기쁘던지요. 기념하는 의미로 남편과 함께 예림이를 데리고 벚꽃구경을 갔던 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복지관과 병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인 낮 병동 생활이 시작됐죠.”

 

김예림이른둥이의 어머니 김정희님

김예림이른둥이의 어머니 김정희님

 

지속가능한 재활치료를 꿈꾸며

예림이의 재활치료는 30개월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됐다. 남편이 산업재해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신골절을 치료하기 위해 남편이 입원한 미추홀재활전문병원에선 소아재활병동을 다녔다. 대기자가 많다기에 대타도 가능하니 자리가 생기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7월부터 2달 동안은 대타로 들어갔다가 9월부터 낮 병동을 다녔다. 남편은 5층에서 아이는 7층에서 치료를 받았다. 낮 병동이 끝나면 복지관과 국제성모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김정희 씨에겐 지금 이 순간의 재활치료가 중요했다.

“나중에 ‘그때 했더라면 달랐을 텐데…’라고 후회하기 싫었어요. 특히 언어치료가 중요했죠. 그래서 집중했어요. 미추홀병원에서 언어치료 2타임, 국제성모병원에서 2타임, 복지관에서 2타임 거기다 펑크 난 수업 대타로 들어갔어요. 많이 할 때는 주 10회씩 했는데 그렇게 1년 이상 하니까 엄마! 물! 이 두 단어가 나오더라고요. 요즘엔 ‘엄마 어디 가는 거야?’라고 말해요. 신기하죠?”

김정희 씨는 ‘천 번을 들려주면 말할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인큐베이터 시절부터 도 닦는 마음으로 하루 20번씩 읽어줬던 성경 시편 구절을 어느 순간 예림이가 암송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에게도 언어치료를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따라다니는 게 힘들어도 틈날 때마다 책을 읽어주라고 당부한다. 언어치료 30분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고, 매일 꾸준히 들려주라고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올 7월부터 SRC재활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언어치료 주 5회, 음악치료 주 4회, 미술치료 주 2회, 인지치료 주 1회, 그 외 모든 치료 펑크났을 때(웃음). 예림이 비는 시간표를 엑셀로 짜서 선생님들한테 다 드렸죠. 재활치료비만 2백만 원 넘게 나와도 고민하지 않았어요. 물리치료 같은 경우도 하루에 두 번씩 할 때랑 안 할 때랑 2주일만 지나도 벌써 다르거든요. 집중하고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매번 느껴요. 그러니 쉴 수가 없죠, 어떤 이유로라도.”

 

활짝 웃고 있는 김예림이른둥이와 어머니 김정희님

활짝 웃고 있는 김예림이른둥이와 어머니 김정희님

 

이른둥이의 지지자로 사는 것

재활치료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은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마나 실손보험으로 숨통은 틔웠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장애진단을 받지 않아 장애수당이나 장애아동바우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태. 그 와중에 3개월의 면책기간이 다가오면 치료비를 걱정하며 자연스레 몇몇 치료를 줄여야 하나 고민한다. 남편 혼자 경제 활동을 하는 예림이네 형편으론 보릿고개와도 같은 시기다.

“재활이 단거리로 하는 게 아니라 장거리로 하는 거라 집안 형편과 같이 가요. 서로 연계돼 있는 치료를 중단 없이 진행하고 싶어도 가능하지 않죠. 그런 순간 지원받을 곳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다른 것도 아닌 이른둥이를 위한 재활치료비라서 더 의미 있어요. 저는 치료를 언제 받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삶의 질이 너무나 달라지고, 조금 더 많이 받으면 다른 삶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데 저처럼 생각하고 기부하는 분들이 우리 예림이를 응원해 주는 거잖아요. 그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죽고 사는 문제를 넘어선 삶의 질. 그것은 김정희 씨가 예림이와 함께 성장하며 거머쥔 가치다. 온정적인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저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지하는 게 그녀다. 지난 36개월을 온전히 예림이에 맞춰 살아온 헌신적인 엄마이면서도 과자봉투나 나무젓가락 봉투를 뜯어주거나 밥을 먹여주지 않는 건 그 맥락에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더디 가더라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숟가락질을 못하면 손으로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귀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느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모가 언제까지 다 해줄 순 없기에 좀 더 단호해져야 한다고 덧붙인다. 다른 여러 치료보다 언어치료에 집중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자신은 물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언어인 까닭.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는 그런 김정희 씨와 닮은 지원이다.

“예림이 재활치료를 지켜보면서 언어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뒤늦게 대학원 공부도 마쳤어요. 학교에서 배운 것, 예림이와 함께 하면서 경험한 것을 다른 이른둥이 부모와 나누면 좋겠어요. 전문가 의견도 필요하지만 현실에서 부딪치는 작지만 중요한 것들을 책으로 쓰고 싶어요. 어디를 가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인터넷엔 무서운 이야기만 있으니까요. 역통합이죠(웃음). 제가 그랬듯 예림이도 애들을 돌볼 줄 아는 따뜻한 아이로 자랐으면 하고요. 이른둥이라서 선택할 수밖에 없던 길 위에서 다른 이들을 보듬고 사랑하며 함께 걷고 싶습니다.”

 

글 우승연 │ 사진 이동훈

댓글 6

  1.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계속해서 같이갑시다.^^

  2. 예림이의 지속적인 성장에는 엄마의 헌신과 노력,기도가 있었네요.항상 응원할게요.힘내세요♡♡♡

  3. 한글자 한글자 모두 눈에 담아 글을 읽었습니다.
    부모라는 무게가 한 없이 무거워 질 때는
    내새끼 아플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시간 믿음과 사랑으로 잘 밟아온 길에
    존경을 표합니다.

    더불어 대한민국 아동재활이 활성화 되길바랍니다.

  4. 항상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5. 그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을텐데 너무 잘이겨내셨네요~^^
    앞으로도 좋은일만 있으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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