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으로 자란 의수 씨는 총각시절부터 다둥이 아빠를 꿈꿨다. 기왕이면 ‘딸-아들-딸’의 구성이면 좋겠다고, 꽤나 구체적으로 생각했단다. 의수 씨의 꿈은 이루어졌다. 다만 셋째가 두 배의 축복, 딸 쌍둥이로 찾아오는 바람에 ‘딸-아들-딸-딸’로 스케일이 확장되었을 뿐이다. 둘째를 낳은 지 두 달 여 지났을까. 산후검사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성희 씨는 임신 10주차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예상치 못한 회임도 놀라운 판에, 의사선생님은 초음파 화면을 잘 들여다보라 했다. 쌍둥이라고.
자궁내막출혈증에 자궁무력증, 자궁선근종까지 진단받은 성희 씨에게 임신과 출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째와 둘째를 힘겹게 출산한 이후 자궁적출 내지는 나팔관 수술을 고려하던 상황이라, 쌍둥이 잉태 소식이 마냥 축복일 순 없었다. ‘현실적으로-’란 단서를 달고 시작되기 마련인 주변의 조심스런 권유와 충고에, 뱃속의 아기들에겐 미안하지만 부부 역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는 그들을 찾아와준 생명을 택했다. 씩씩한 엄마 성희 씨, 다감한 아빠 의수 씨 다운 선택이었다.
아람이가 아프면 보람이도 아프다
둘째 때도 조산기로 고생했지만, 쌍둥이들은 더했다. 임신 20주차에 벌써 조기 진통이 시작됐다. 라보파(자궁수축억제제)로 조절한 지 한 달 만에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해 트랙토실로 약제를 바꾸고 두 세트 째 들어가던 찰나, 다시 진통이 시작됐다. 산전검사를 다니던 여성병원에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지 두 시간 만에 수술을 받았다. 그때가 임신 33주 5일 차. 성희 씨는 조금만 더 버티게 해달라고 의사선생님께 애원했다. 두 시간, 아니 딱 한 시간만이라도 더 아이를 뱃속에 품고 싶었다. 이미 자궁파열 직전의 위급상황이었기에, 급기야 담당의는 서슬 퍼런 최후통첩을 내렸다. 더 미뤘다간 산모가 먼저 죽을 거라고.
“애기아빠랑 친정엄마가 막 울면서, 빨리 수술 받으러 가자고, 그게 니도 살고 아이들도 살길이라고…. 제 딴엔 더 늦춰 보려고 용을 썼는데, 더 이상 안됐어요.”
2.1kg 남짓한 아람이와 2.6kg의 보람이는 나란히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크게 태어나 다소 안심했다지만, 엄마 뱃속에서 보람이를 받치고 들어앉아 고생이 많았던 아람이는 작디작았다. 처음엔 자가호흡이 안됐고, 황달도 심하게 앓았다. 쌍둥이는 항상 나란히 아팠다. 아람이보단 보람이 상황이 조금 나았다지만, 아람이가 아프면 대번에 언니 따라 보람이도 아픈 식이었다.
한 달 열흘 만에 신생아중환자실을 졸업한 쌍둥이는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집으로 왔다. 다섯 살배기 큰딸, 쌍둥이와는 고작 10개월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그 역시 한참 ‘아기’인 둘째아들, 배냇향 폴폴 나는 쌍둥이까지, 여섯식구가 복닥복닥 지낸지 2주 쯤 됐을까. 사남매가 한꺼번에 아팠다. 큰애는 장염에 걸리고, 쌍둥이는 전해질 이상으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열이 문제였다. 급기야 쌍둥이에게 폐렴이 왔고, 이에 둘째까지 전염되어 네 아이가 일제히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치달았다.
장염으로, 고열로, 폐렴으로, 쌍둥이는 한 달 평균 보름씩은 병원 신세를 진다. 2, 3일 짧게 입원할 때도 있지만, 2주 넘게, 길게는 한 달 넘게 장기 입원을 할 적도 있었다. 처음 신생아중환자실 입원 당시, 인큐베이터 비용만 2천만 원이 넘게 들었다. 보건소에서 지원받고, 긴급생활자금을 신청해 겨우 아기들을 데려올 수 있었거늘, 일상이 되어버린 잦은 입․퇴원 속에 병원비를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름다운재단의 다솜이작은생명살리기를 알게 된 건, 이른둥이 엄마들과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였다. 엄마들의 정보력은 언제나 가장 쏠쏠했다. 어디에 무슨 지원이 있다더라, 어디를 찾아가봐라, 내 일처럼 일러주고 조언해주는 이른둥이 엄마들 덕분에, 앞이 캄캄한 와중에도 길을 찾곤 했다. 퇴원 이틀 전,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아람이 신청서를 접수했고, 2016년 6월,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어린이집 차량을 사남매 전용차 삼아
쌍둥이부터 살리고 보잔 생각에 의수 씨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성희 씨와 함께 육아에 매진한다. 처음엔 성희 씨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도왔지만, 내내 장모님께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휴일이면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집안청소를 도맡아 했던 의수 씨는 전담육아를 시작하고부터 육아계의 멀티플레이어가 다 됐다. 쌍둥이를 유모차에 태우고나가 장도 봐 오고, 간혹 아이 넷을 한꺼번에 봐야 하는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여름이면 하루에도 서너 번은 샤워를 하고, 그때마다 옷을 갈아입던 깔끔쟁이 의수 씨는 사라졌다. 쌍둥이들이 흘린 침이며 우유 묻은 티셔츠를 며칠씩 입고, 감지 못해 떡 진 머리가 바닥에 닿기만 하면 코를 고는, 고단한 현실의 슈퍼맨이 남았을 뿐이다.
오로지 쌍둥이에게 맞춰진 시계로 돌아가는 집안에선, 아이들에게도 어른들 못지않은 희생이 따른다. ‘쌍둥이 자야 하니까 조용히 해!’, “쌍둥이 감기 드니까 얼른 문 닫아!’, ‘안돼!’, ‘하지마!’…. 첫째 가람이와 둘째 하람이가 집안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고작 여섯 살이며, 21개월인 어린 자식들이 나눠져야 할 삶의 무게에, 엄마 아빠는 문득문득 가슴이 아프다. 콧바람을 쐬고픈 가람이와 엄마를 독점하고픈 하람이는 종종 떼쟁이가 되곤 하지만, 자연스레 언니, 오빠의 자세를 익혀 간다. 아침이면 의젓하게 스스로 유치원 가방을 메고나와, “하람이도 얼른 가방 갖고 나와야지!” 소리치며 남동생의 어린이집 등원을 야무지게 챙기는 가람이, 쌍둥이 여동생들이 울음을 터뜨리면 젖병부터 찾아오는 기저귀 찬 오빠 하람이 덕분에, 성희 씨와 의수 씨는 잠시나마 모든 시름을 잊고 환히 웃기도 하는 것이다.
부부는 내내 살얼음판을 딛는 듯한 심정에도 익숙해졌다. 여느 아기들 같으면 감기로 끝날 일이 폐렴으로, 설사로 그칠 일이 장염으로 발전하는 건, 면역력이 약한 이른둥이에겐 흔한 일이다. 아직 심장의 구멍도 덜 닫혔다. 아람이는 구멍이 하난데, 보람이는 두 개다. 자라면서 저절로 닫힌다고는 하지만, 돌 즈음 다시 검사를 해봐야 안다. 더러 닫히지 않는 경우도 있어,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자연스레 성장을 통해, 흐르는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지나온 날들이 증명하듯, 끝없이 굴을 파고 고이는 듯 했던 암울한 시간도 결국은 흘러갔다. 흐르며 나아질 것을 엄마, 아빠는 믿는다.
누구보다 씩씩한 엄마지만, 성희 씨에겐 미안한 마음이 만든 그늘이 언뜻언뜻 드리운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친정식구와 시댁식구들에게 두루 미안할 뿐이다. 성희 씨만 그런 건 아니다. 친정어머니도, 시어른들도 더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남편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안함’을 뒤집으면 또한 ‘고마움’인 즉. 그 고마운 사람들은, 성희 씨와 의수 씨를 지탱하는 든든한 뒷심이기도 하다.
오는 3월, 쌍둥이는 돌을 맞이한다. 곧 어린이집에도 다닐 계획이다. 가람이, 하람이 남매에 아람&보람 쌍둥이까지 더해지면, 가뜩이나 ‘가람이네 전용차’로 불리는 어린이집 차량을 사남매가 완전히 장악하게 될 전망이다.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다면, 아빠도 다시 직장을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부부는 아직 젊고, 한 번도 희망을 놓은 적이 없다. 아니 놓을 수 없다. 둘도 셋도 아닌 넷, 사남매를 키워야 하는 엄마, 아빠인 까닭이다.
글 고우정 | 사진 현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