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메아리치듯이 울려 퍼진 상윤이의 해맑은 목소리. 김경택 씨는 아들의 저 한마디가 여전히 뭉클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불가능을 극복한 상징적인 단어인 까닭이다. 병원에선 이른둥이로 병약한 상윤이가 말을 하지 못하리라 진단했다. 서지도 걷지도 못하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재활치료에 매진하던 상윤이는 지금 ‘아빠’를 부르며 뛰어가고 있다.
“상윤이는 왼편 마비증세를 비롯해서 아직 재활치료가 필요한 상태인데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저 정도까지 발달해서 보답하니 아빠로서 더욱 정성을 기울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낮 병동에서 5개월 동안 치료받았는가 하면, 요즘은 전문재활병원과 사설재활기관에서 작업치료랑 물리치료에 집중하는 중이에요. 1주일에 36시간 정도 진료받고 있어요.”
엄마아빠는 험난한 고비도 기꺼이 감당한다
그해 여름, 임신한 지 28주 무렵이었다. 간호사로서 업무하던 중 김나리 씨(가명)에게 갑작스러운 진통이 찾아왔다. 다급히 산부인과로 방문했으나 아무런 이상소견은 없었다. 실제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별다른 무리는 없었다. 그래서 안심했건만 사흘이 지나지 않아서 양수가 흘러내렸다. 다시금 산부인과로 달려갔더니 분만이 시급한 위중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김경택 씨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앞이 새하얘졌다.
“조산의 원인이 불명해서 황당하고 당황했죠. 그나마 다행히도 무사히 출생했지만 상윤이는 1,210g으로 가냘팠어요. 인큐베이터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주삿바늘 12개를 꽂고 있더라고요. 급기야 몸무게가 900g으로 줄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의사가 상세불명의 백질연화증이라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대서 상심했죠.”
하지만 상윤이가 연약했던 만큼 엄마아빠는 각고의 노력을 결단했다. 엄마는 일터를 그만두고 재활치료의 전반을 공부했다. 그래서 상윤이가 또 다른 탈 없이 백일 후 퇴원하자마자 이곳저곳 전문재활병원을 수소문하고 찾아다녔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상윤이의 병세가 심각하다고 재활치료를 거부하기가 수차례였다. 실로 눈물겨운 순간은 그뿐만이 아니다.
“상윤이가 호흡곤란으로 위중한 경우가 종종 발생해서 산소호흡기를 집에 구비하고 간병해야 했죠. 또한 황달 때문에 위험했던 적도 있고요. 심한 폐렴 때문에 고생했던 경험도 많아요. 1년에 3번은 입원했던 것 같아요.”
설상가상으로 치료비 역시나 어마어마했다. 사실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던 김경택 씨의 수입으로 치료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날이 빚은 늘어갔다. 그렇다고 재활치료를 그만할 순 없었다. 훗날 상윤이가 장애를 갖더라도 ‘한 마디라도 더’ 움직이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정산해보니까 1년 만에 1억을 사용했더라고요. 결국에 파산을 신청했죠. 그쯤 사회복지사라는 업무에 자괴감이 들었어요. 경제적으로도 그랬지만, 아들이 아프니까 이웃을 생각할 여력이 없더라고요. 게다가 아내도 지쳐서 우울증이 왔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아내가 다시 간호사로 근무하고, 제가 사직하고 상윤이를 간병하고 있죠.”
이른둥이는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으로 보답한다
오직 상윤이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엄마아빠는 매일매일을 전심전력으로 살아냈다. 바야흐로 만 4년 여, 그야말로 절망 같은 시간을 뚫고 상윤이가 점점 희망의 몸짓을 선보였다. 키나 몸무게가 또래의 평균에 모자라지만, 좌측의 편마비로 아직은 거동이 불편하지만, 상윤이는 예상을 깨뜨리고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상윤이가 홀로 일상생활하리라곤 짐작하지 못했었다.
“요즘 상윤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요. 물론, 16㎏에 1m로 폐가 70%만 성장했고, 사시도 감지돼서 연약하죠. 하지만 저렇게나 성장해주니까 더욱 지원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조금만 균형감이 생기면 보조기 없이도 곧잘 걷겠다 싶어요. 그래서 초등학생 때까지는 재활치료를 계속하고, 추후에 틀어진 부분도 수술로 바로잡아주려 해요.”
전반적으로 상윤이네 일상은 슬며시 회복세로 돌아섰다. 무엇보다 상윤이가 고무적으로 건강을 찾아가고 있고, 아울러 엄마아빠도 경제적으로 개인회생을 진행하고 있다. 돌이키면 고마운 얼굴이 적잖이 스쳐갔다. 김경택 씨는 그중에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가 대단히 감사했다.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큰 도움이 되었어요.”
혹시 지원이 좀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김경택 씨는 이른둥이 부모로서 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니 늘 부담이 있어요. 그래서 사설재활기관의 치료도 지원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또한 진료 시 부모님 대신 조부모님이 함께 하는 경우도 많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경우도 많아서 활동보조인이 지원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이른둥이 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른둥이 관련 세미나가 실행되면 크나큰 도움이 되겠죠.”
그는 그간 일상을 버텨왔던 비결도 조심스레 공유한다. 그러니까 ‘그저 이른둥이를 존재 자체로 사랑했고, 조금조금 성장하는 모습에 감동했다’라고. 실제로 그는 상윤이에게 소망하는 것이 거의 없다. 단지 부모로서 역할에 집중하고, 내내 상윤이를 응원할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상윤이에게 전달하는 김경택 씨의 진심 어린 메시지는 무척이나 인상 깊다.
“상윤아, 지금처럼 밝고 맑게 자라나길 바랄게. 앞으로 삶 속에서 속상한 경험도 많겠지만 우리 아들은 지혜롭게 이겨내리라 믿어. 엄마아빠도 항상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
글 노현덕 | 사진 조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