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 끝에 봄을 만나

강서영 이른둥이의 발을 엄마 정희은 씨가 어루만지고 있다.

봄꽃 흐드러진 5월, 부산 사하구의 아파트를 찾았다. 서영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2017년 12월 14일 쌍둥이로 태어난 서영이의 몸무게는 1,030g. 초극소저체증으로 남들보다 이른 31주 5일째 세상으로 나온 서영이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수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상황이 나아진 후에도 환경에 익숙해지느라 꼬박 석 달을 병원에서 지냈다.

“첫째 하영이는 좀 나아요. 호흡기를 한 달 정도 달고 있어서 호흡곤란증후군 진단을 받긴 했지만 이젠 괜찮거든요. 소화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금식이라든지 장 관련 치료만 받았고요. 한데 서영이는 달랐어요. 1주일 만에 동맥관개존증 수술하고 한두 달 지나고 카테터 때문인지 알레르기 반응이 확 올라와서 중심혈관을 잡아서 영양제를 맞았죠. 만성폐질환이라 앞으로도 그 부분을 신경 써 줘야 하고요. 쌍둥이인데도 2kg 차이가 나서 요즘은 살찌우려고 인파트리니(Infatrini)라는 고칼로리 분유를 먹이고 있어요.”

지난 1년여, 돌아보면 꿈만 같다. 임신 11주째야 쌍둥이라는 걸 알게 되고 이후부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단일융모막 이양막 일란성 쌍둥이가 100g이나 차이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격차가 발생하다가 26주에 조기진통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안정하며 5주를 버텼으나 태내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결국 둘의 격차가 600g까지 벌어지고 쌍태아 수혈증후군이 의심돼 조기 출산을 결정했다.

“낳고 보니 800g이나 차이 나더라고요. 서영이와 하영이가 생긴 건 닮았는데 크기가 달라 쌍둥이인 줄 몰라요. 병원에서도 하영이는 한 달 먼저 퇴원했고 이후에도 건강한 편이에요. 한데 서영이는 한 달을 더 머물렀다 퇴원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변을 계속 봤어요. 할 수 없이 나흘 후 외래를 가서 위장염과 결장염을 진단 받고 재입원했죠. 그때가 44주 2일이었는데 신생아중환자실은 44주 이후엔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소아병동에서 2주 동안 치료받았어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정희은 씨의 모습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봄이 시작되는 3월을 그렇게 보냈다. 다행히 재입원 치료 후 건강에 큰 이상은 없다. 아직 체력이 부족하긴 해도 문제될 건 없다. 여전히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걱정이지만 엄마 정희은 씨는 불안을 접었다. 노심초사 전전긍긍해봤자 서영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 대신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이를 테면 서영이의 재입원 치료로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와 인연을 맺게 됐음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다.

“지난주에 아이들 백일 상을 차리고 사진을 찍었어요. 의미가 크더라고요. 진짜 고마웠어요. 예상했던 건 아니지만 두 아이를 보고 있으면 웃게 돼요. 물론 지금은 하루 영양제 먹이는 것만도 정신이 없지만(웃음). 아침에 일어나면 수유하고 트림 시키고 또 수유하고 트림 시키고 2시간 정도 놀고 낮잠 2~3번 자고 계속 노는 거죠. 둘을 봐야 하는데 남편은 일 때문에 늦고 어머님들도 힘에 부쳐서 걱정했는데 요즘은 아이돌보미가 오세요.”

아침 9시에서 12시, 오후 4시부터 저녁 9시까진 아이돌보미가 쌍둥이를 함께 돌본다. 덕분에 정희은 씨는 첫째아이인 혜린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제 고작 어린이집에 다니는 네 살 혜린이는 생각할수록 아픈 손가락이다. 한창 엄마 품이 그리울 때 조기진통으로 입원하고 면회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되짚으면 먹먹해진다. 이른둥이 쌍둥이를 낳고 돌보느라 우선수위에서 미뤄둔 게 미안하다. 곁에서 찬찬히 살피지 못해 속상하다. 순하고 착한 게 마음에 걸리는 이유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결혼 전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로 일했어요. 첫째 낳고 엄마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36개월까지는 제가 직접 키울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예상외의 상황으로 잘 안 됐죠. 첫째는 할머니랑 같이 지내면서도 잘 안 울었대요, 많이 참고. 퇴원하고 오니까 혜린이가 엄청 기뻐하며 이것저것 보여주고 설명하고. 그새 많이 컸더라고요. 아이돌보미가 오셔서 쌍둥이를 돌봐주시면 저는 큰애에게 신경을 쓰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지난번 서영이가 2주간 입원했을 때도 엄마가 또 어디 가면 어떡하나 걱정하더라고요. 제가 더 많이 안아줘야죠.”

엄마 정희은씨의 품에 안겨 있는 하영이와 바운서에 누워있는 서영이의 모습

당신의 지지로 긍정의 에너지를 품다

정희은 씨는 이론으로 배운 발달 과정에서 자유로워졌다. 어떻게든 잘 자라겠지 믿어주고 따라준다. 서영이와 하영이를 키우면서 특히 마인드 컨트롤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출산 후 이른둥이 엄마를 대상으로 한 부산대 간호학과 박사의 산후우울증 방지 긍정심리 강화 프로그램에 6회기 동안 참여하면서 스스로 짊어진 죄책감을 돌아봤다. 그리고 유연해졌다. 이러지 말 걸, 저렇지 않았으면 됐을까, 자책하기보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자기들이 빨리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거다’ 생각하고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한다. 혹여 우울할 땐 우울할 수도 있지, 라고 자기감정을 수용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 그래야 아이들도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여길 수 있다. 정희은 씨는 그런 긍정의 에너지가 아이들을 치유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이른둥이라는 단어도 몰랐고 지원체계도 몰랐어요. 경험자이신 시댁 형님이 카페를 알려주셨고 거기서 정보를 많이 취했죠.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게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사실 이전까진 보건소 지원으로 괜찮았어요. 6주간 입원하고 출산하느라 든 비용, 인큐베이터용 특수 의료품 비용, 영양제 비용은 적금 깬 걸로 해결했으니까요. 그런데 재입원은 달랐어요. 보험 적용되는 중환자실이 아니라 소아병동, 그것도 감염문제 때문에 무조건 2인실로 들어가야 되니 막막했어요. 하루 병실 값만 27만 원인데 어떡하나 싶더라고요. 그때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의 재입원비 지원을 알게 돼서 얼마나 안도했는지. 정말 고마웠어요.”

경제적인 지원은 정신건강과도 연동된다. “당신, 정말 힘들었죠. 그래도 잘 이겨내고 있어요. 그러니 불안해 말아요”와 같은 위로를 건넨다. 농익은 봄 햇살처럼 스며들어 움츠린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인다. 누군가 자신과 아이들을 응원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렌다. 지친 육아, 알 수 없는 미래가 덜 두렵다. 혼자가 아니라서, 기꺼이 함께 곁에 서준 기부자 때문이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이 화수분처럼 솟는다.

“남편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것보다 정신과 몸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을 하건 자기가 행복하면 그걸로 만족해요. 하나 더 희망한다면, 받은 만큼 누군가와 나눌 수 있기를요. 이렇게 지원 받은 걸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행복하기를 바라요. 베풀며 빛나게 자라라는 서영이의 이름처럼 되기를 꿈꿉니다.”

바운서에 누워 엄마의 손을 응시하고 있는 강서영 이른둥이  

글 우승연 | 사진 임다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