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는 27주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 전정희 씨는 현이를 처음 봤을 때 눈물부터 났다. 1,000g 남짓한 작은 아이가 안타까웠고, 그래도 버텨주는 게 장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태어나자마자 겪었던 호흡곤란 증상 말고는 아픈 곳도 없었다. 그런 현이를 보며 그녀는 늘 고마움을 배운다.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 현이의 면회 순서가 늘 늦더라고요. 제가 수간호사님한테 불평을 하니까 ‘어머니, 다른 아이들은 더 많이 아픈데, 현이는 건강한 편이잖아요. 그런 걸로 불평하시면 안 되죠.’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아, 내가 나만 알고 살았구나. 그리고 내 아이가 이렇게 다 가지고 태어나줬는데, 감사한 줄도 모르고 살았구나.”
재활을 위해, 수원에서 대구로
두 돌 이후에는 “또래보다 크다”라는 말을 들을 만큼 현이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옷을 갈아입힐 때마다 실감할 정도였다. 그런데 걱정이 한 가지 있었다. 아이의 말소리가 두 돌이 지나도 정확해지지 않았다.
“보통 아이들은 돌전에 옹알이를 하잖아요. ‘어므아, 아쁘아’ 이런 식으로 옹알이를 하다가 점차 발음이 정확해지는데, 현이는 그러질 않더라고요. 병원에 가봤더니 재활치료를 하자는 소견이 나왔어요.”
“대구로 이사를 가셔도 괜찮으신가요?”라며 의사가 처음 물었을 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살고 있는 수원에서 연고도 없는 대구까지 이사라니. 의사는 대구가 ‘재활 도시’이고, 지금 현이에게는 치료받기 가장 좋은 지역이라며 적당한 병원도 일러주었다. 딱 일주일 고민했다. 당장 어떻게 돈을 벌며 살아야 할지 대책이 서진 않았지만, 현이를 위하는 길이 거기에 있다니 서둘러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정희 씨는 “이른둥이 아이의 재활 치료는 종결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당연히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현이가 모든 치료를 거부하던 시기였다.
“재활한 지 1년 정도 되니까 현이가 모든 치료를 거부하더라고요. 병원에, 사설 센터에, 어린이집까지 계속 치료만 하니까 힘들었나 봐요. 그 방향으로 가기만 해도 난리가 놨어요. 말도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거부를 할까 마음이 아팠죠.”
어린이집에 가자고만 해도 아이가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악을 쓰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찢어졌다. 센터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오라 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울면서 치료를 해봐야 상처만 될 뿐이었다. 그녀는 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날부터 매일 놀이공원, 동물원, 공원 등을 현이와 함께 놀았다. 나가는 시간을 매일 어린이집에 가던 시간에 맞췄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즈음 어린이집에 가는 또래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현이를 보고 알았다. 현이가 어린이집이 아닌 치료를 거부한다는 걸.
그날부터 그녀는 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놀러’ 갔다. 가서 밥만 먹고 돌아오기도 하고, 종일 놀다 돌아오기도 했다. 어린이집과 치료센터와 논의해 모든 치료를 ‘놀이’ 방식으로도 바꿨다. 덕분에 현이는 다시 재활 치료를 시작했고, 재작년에는 한글도 뗐다. 요즘에는 “아빠 힘내세요” 노래에 빠져 아빠가 퇴근할 때마다 ‘짜잔’하고 나타나 불러주고는 한다.
경제적 지원만큼 소중한 마음의 지지
“제가 처음 현이의 긴 말을 들은 게 4년 전이었어요. 병원에서 나오는데 현이가 힘든지 ‘엄마 나 업어주세요.’하는 거예요. 기쁘고도 아픈 말이었어요. 제가 그때 몸이 너무 아파서 안아주질 못하고 미안해서 주저앉아 울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세 돌도 안 된 애가 저를 토닥토닥하면서 ‘괜찮아’라고 하는 거예요.”
그녀는 매번 이 작은 아이 안에 심어진 가능성에 놀란다. 하지만 세상이 이 아이를 그만큼 알아볼까? 가끔 길거리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현이가 대답을 안 한다고 “너 벙어리야?”하며 혼을 낼 때면 가슴이 철렁하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아직 말하는 게 어렵다”라고 설명하고, “말 못해도 아이는 다 느끼니 그런 말씀하지 마시라”라고 꼭 말하고 온다.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겪을 일이 마음에 걸려서이다. 내년에 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 그녀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진다.
“학교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주변에서는 현이 정도는 충분히 ‘일반 학교’에 갈 수 있으니까 보내라고 해요. 특수학교에 한 번 간 아이는 재활 치료가 끝나도 절대 ‘일반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요. 내 아이가 이런 차별을 겪고 나서야 알았어요. 세상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있는지.”
그래서일까. 그녀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떠올리면 자신과 현이를 향한 세상의 응원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경제적 지원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도 현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엄마한테는 큰 힘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른둥이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경제적 도움을 받은 게 가장 직접적 지원이었지만, 현이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무엇보다 큰 힘이 돼요. 지원 후에도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작은 선물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하거나 학교에 들어갔을 때 장학 지원을 해주면 좋겠어요. 작은 지원이라도 꾸준히 이어지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현이한테도 힘이 될 거 같아요.”
글 우민정ㅣ사진 조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