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얼마나 안전할까요? 환경호르몬 기준치를 초과한 사인펜과 지우개, 발암물질인 납이 검출된 샤프와 실로폰. 잊을만하면 언론을 통해 아이들이 사용하는 물건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그러나 심각성을 알아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학교 현장에서는 막막하기 마련입니다. 또, 이런 심각성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
유자학교 이후 평택 이충중학교에는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먼저 점심시간에 고체 치약과 대나무 칫솔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화장품을 살 때도 유해 성분이 있는지 성분을 확인하거나 천연 화장품을 구매한다. 플라스틱과 유해 물질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유자학교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한희정 선생님(이충중학교)은 유자학교 이후 학생들이 환경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은 환경오염이 문제라든가 플라스틱이 지구 환경에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기후 위기에 관한 이야기나 수업을 많이 듣거든요. 그런데 정작 그게 나의 문제라고 생각할 만한 계기는 없었던 거 같아요. 유자학교가 다른 수업과 달랐던 건, 환경오염이 나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내 문제라는 것을 알려준 거예요.
이제 학생들은 플라스틱이 좋으냐 나쁘냐를 넘어서 이미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나의 일상에서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식으로 나의 일상에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거죠. 예를 들어 학교에서 음료를 마시는 학생들이 많은데, 그때 나오는 플라스틱 컵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이 의논하기 시작한 거예요.”
학생들이 힘을 모아서 진행하는 환경 프로젝트
혁신학교인 이충중학교는 이전에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았다. 유자학교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는 활동에 “환경”에 관한 이슈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프로젝트는 온전히 학생 주도로 진행된다.
“예전에는 교사 중심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해요. 학생들도 자기가 직접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다 보니까 주도성과 참여도가 높아져요. 9월에는 환경 부스 프로젝트를 했는데, 학생들이 ‘해양 생태계 보호, 육지 생태계 보호, 깨끗한 물, 기후변화, 깨끗한 에너지’ 5가지 주제를 선택해서 각 조의 주제에 맞는 활동을 진행했어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한 만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할지 계획하는 시간을 오래 갖는 편이에요”
환경 부스 프로젝트에서 이충중 학생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주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체험을 준비했다. ‘육지 생태계 보호’팀은 기후 위기와 육지 생태계와 관련한 퀴즈를 만들어 관심을 끌었고, ‘깨끗한 에너지’팀은 깨끗한 에너지를 홍보하는 그립톡을 제작해 판매했다. 그립톡에 들어가는 이미지를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직접 디자인했고, 판매 수익은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해양 생태계 보호’팀은 유자학교에서 배웠던 ‘천연 비누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친구들하고 협동하며 일을 완성해 가는 느낌을 받았을 때 가장 좋았다’라고 말해요. 프로젝트 계획부터 필요한 준비물까지, 사소한 것 하나도 모두 학생들이 준비하고 힘을 모아서 진행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학생들이 보람을 느끼는 거 같아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부스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 가장 좋았다.” “부스를 운영하며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직접 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나도 성장하고, 환경 문제를 더 알아가려는 마음도 성장한 거 같다.” “환경 부스 체험을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학생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활동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퀴즈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어 홍보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어떻게 실천해 갈지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 이충중 학생들 프로젝트 후기 |
프로젝트를 먼저 해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학생이 늘어나
다회용 컵을 들고 오면 레몬에이드 등 음료를 나눠주는 ‘용기내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학교 안에서 일회용 컵이 아닌 다회용 컵을 사용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이었다. 음료가 모자라서 다 나누지 못할 만큼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프로젝트를 마친 후, 한 학생은 “친구들이 호응해 주어 좋았다”면서도 “텀블러를 너무 많이 사는 것도 안 좋은 거 같다.”며 고민을 이야기했다. 프로젝트를 하나씩 마칠 때마다 이충중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고민과 질문이 생겼고, 이러한 질문들이 프로젝트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사실 요즘 학생들은 환경이 큰 위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듣던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유자학교 이후에 이론만이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실천하고, 행동해 보니까 학생들에게 환경 문제가 새롭게 와닿는 거 같아요.”
이제 학교에서 ‘종이컵’을 찾는 학생을 보기 힘들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일회용품은 당연하게 배제된다. 행사 음식을 준비할 때도 채식 식단을 떠올리거나 사용하는 물건의 유해 물질을 살피는 일이 일상이 됐다. 학교 안에 안 쓰는 물건들을 나누는 나눔마켓인 ‘지구샵’도 생겼다. ‘지구샵’ 안에는 학생들이 기부한 텀블러, 책, 형광펜, 손소독제, 옷, 인형 등 다양한 물건이 있다. 판매 물품 목록과 이용 수칙이 적힌 넓은 칠판, 물건들을 비춰주는 조명까지 학생들의 손길로 탄생한 공간이다.
“유자학교 이후로는 환경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이거 한번 해보자’라고 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요즘은 학생들이 먼저 ‘이거 해보고 싶다’라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충중학교 학생들은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중이다. 로컬푸드로 간식을 만들거나 친환경 포장법 워크숍을 여는 등 대부분 그간 배우기만 했던 것들을 직접 실천하려는 움직임들이다. 한희정 선생님은 멀기만 했던 환경 문제가 결국 나와 내 곁의 친구들 문제라는 걸 배운 결과라고 말했다.
“유자학교의 가장 큰 의미는 환경에 대한 시선을 바꿨다는 거예요. 환경을 지킨다는 게 나와 먼 무언가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결국에는 나와 연결된 일이라는 것을 학생들도 저도 유자학교를 통해 배웠어요.”
글: 우민정 작가
사진: 평택 이충중학교 교사 한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