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2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청각장애인들의 공감과 소통’은 청각장애인들이 직접 취재기자가 되어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고자 탐사보도 뉴스 사이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
온전히 제 몫을 하는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단체가 존재하는 큰 이유에요. 올해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을 통해서는 청각장애인 기자, 칼럼리스트 등 활동가를 양성해서 이 영역의 이슈를 당사자들이 직접 알리고 퍼뜨리고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고, 직접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 취재도 하고, 취재를 통해 실제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 나만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다른 청각장애 구성원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당사자 인식개선으로 이어질 것에 대한 기대가 있어요. 당사자 활동가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 청각장애인들의 공감과 소통, 조성연 활동가
Q. ‘청각장애인들의 공감과 소통’이 바라는 인식개선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보청기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게 자리 잡았어요. 그러다 보니 ‘인공달팽이관 삽입술(인공와우)’은 훨씬 진보한 기술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부터 긍정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과거 인공와우가 한국에 처음 도입되어 정보나 자원의 부족으로 초기에 수술을 받은 성인 또는 부모의 의지로 수술받은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의지와 반하는 수술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초창기 사용자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세대에 걸쳐서 남다보니까 벌써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인공와우에 대한 시선이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선천성 난청은 신생아 1000명 중 5명이 앓는 질환인데, 조기에 발견하여 3개월경부터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6개월 경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는 사례들이 늘고 있고, 청각장애인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후천적 난청의 경우 역시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인공와우 수술을 받는 사례들이 늘고 있어요. 언제 난청진단을 받았고, 언제부터 청각보조기기를 사용했고, 어떤 재활을 어느 정도 지속성을 갖고 했는지에 따라 수술 예후도 모두 다르거든요. 사실근거에 기반한 다양한 객관적인 사례가 전달되면 좋겠는데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카더라’ 정보가 퍼지는 게 안타깝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한 청각장애 영역의 기사들이 지속적으로 발행된다면 당사자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여러 면의 장애인식이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Q. 청각장애영역에서의, 또는 ‘청각장애인의 공감과 소통’에서 생각하는 현안이라고 생각되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이른 아침 출근길부터 잠들기 전까지 이어폰을 오랜 시간 착용하고, 이제 이어폰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어폰 착용이 청력 손실의 원인이라고 경고하고 있어요. 이어폰은 귀에 닿는 음파를 만들어 고막을 진동시키는데, 이 진동은 ‘내이’까지 퍼져 청각세포가 소리를 전기신호로 변환해 뇌에 전달하고, 청각 세포를 자극해 강한 진동, 압력의 자극을 통해 난청을 유발해요. 청각 세포는 손상 시 정상적으로 회복하지 못하며, 손상의 정도에 따라 난청을 일으킬 수 있어요. WHO는 이어폰의 적정 사용 시간을 하루 60분, 60% 이하 음량으로 듣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으신 분들도 이어폰의 위험성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경각심을 갖기를 바래요.
더불어 과거에 비해 난청 진단 기술의 발전과 후천적 발병 요인 증가로 청각장애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반면 복지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균형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죠. 일례로 실시간 문자통역과 관련한 것인데요,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문자통역 지원을 해 주는 곳은 서울시가 유일하고, 거의 대부분 당사자들이 자비를 들여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에요.
요즘 많은 행사가 배리어프리 환경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도, 아직까지도 청각장애인에 대해서는 ‘수화통역’ 제공에 국한된 경우가 많아요. 201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수화언어를 할 수 있다고 답한 경우는 전체의 7% 정도이고, 청각장애인의 80% 이상 수화통역 서비스가 제공되더라도 수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사회 안에서 뭘 하나 하려고 해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듣고 싶은 강의, 일반적인 행사참여.. 취업을 목적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취업성공 패키지에 참여해도, 모든 과정에 통역이 없으면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시작부터 난항인데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건 쉬운 일일까요? 자연스럽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거나 차상위계층이 되거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듣기의 어려움으로 다른 부분에서까지 저절로 제 몫을 할 수 없게끔 되어가는 거죠.
Q. 해결을 위해서 일상에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최근에 면접 상황에서 통역을 제공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고, 면접 공고를 낸 주최측에서 통역을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작은 기업의 경우에는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당장 문자통역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여의치 않다면, 활용할 수 있는 도구도 있어요. 구글에서 청각장애인 개발자가 당사자의 어려움을 반영해 만든 어플리케이션이 대표적인데, 속기사에 비해 정확도는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급한 대로 활용하기 좋고, 사전에 키워드를 미리 입력해두면 정확도가 높아져요.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원을 위한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적으로는 당사자가 본인의 필요를 이야기 해야겠지만,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상대의 몫이고, 미처 당사자가 말하지 못했다면 먼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
어쩌다 운이 좋게 면접까지 가게 되고, 또 운이 좋게 통역사가 배치되어서 통역을 해 준다고 해도 질문부터 이런 식인 경우도 있어요.
’안 들리는데 입사 후에 어떻게 일하시려고요?’, ‘회의도 통화도 많은데 업무는 어떻게 처리하실거에요?’
어떻게 이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아니라 장애로 인해서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생각하는거죠. 대신 이렇게 물어볼 수는 없을까요?
‘입사해서 함께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요’ 혹은 ‘스스로 어떤 걸 준비할 수 있나요’ 라고요.
Q. 청각장애 영역이나 활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영화나 도서를 추천받고 싶어요.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은 후천적으로 청력저하를 경험하는 드러머 이야기에요.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처지였기에 일상의 여러 면에서 더욱 크게 절망을 느끼거든요. 당사자 입장에서 느끼는 심리적 흐름은 물론, 의사소통 방식, 더 나은 듣기 환경을 위해 의료기기 수술을 선택하는 과정 같은, 후천적으로 청력을 잃어가는 경우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이 현실을 잘 반영했어요.
이 작품은 음향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청각장애는 소리가 아예 안 들리는 것 뿐만 아니라 웅얼거림이나 왜곡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인공와우 수술을 하더라도 청력을 잃기 이전과 같은 소리를 듣지는 못한다는 것을 음향으로도 잘 표현해냈거든요.
<내 귀는 반짝반짝>이라는 그림책도 소개하고 싶어요. 직접 제작한 청각장애인 인식개선 동화이고, 동화책 내 QR코드 스캔을 통해서 수어구연동화 영상으로도 볼 수 있어요.
동화책 장면 중에 인공와우를 착용하는 토순이가 친구들의 부당한 차별, 부당한 대우에 대해 크게 화를 내는 장면이 있어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토순이의 분노가 잘 느껴지도록 배경을 불이 난 것처럼 엄청 빨갛게 해 달라고 요청 드렸어요. 모든 부당함에 대해 화를 내는 게 정답은 아니지만,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서요.
엄마 토끼가 토순이를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해요. 그저 듣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요. 당사자는 물론, 청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요즘의 젊은 부모 세대는 좀 다르지만, 이전엔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혼자 찾아 헤메면서 끙끙 앓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동시에 사회도 청각장애인들을 편견이 아닌 그저 다른 방식으로 듣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