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이 2022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발달장애와 마을포럼을 진행했습니다. 이 글은 사부작에서 보내온 사업후기입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공익컨텐츠의 생성과 확산을 위해 5인 이하의 소규모 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활동을 노동으로! _ 2022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스케치
“발달장애인은 정말 일을 못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발달장애인도 일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이 느리고 일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에 초대한 강사님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소형민 활동가의 말씀입니다. 발달장애인이 모두 자신에 맞는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차분하면서도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역시 포럼 기획을 잘했다 자화자찬했답니다.
해마다 사부작에서는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을 여는데요, 올해 주제는 ‘노동’이었어요. 노동, 하면 직장에서, 가게에서, 현장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이 그려지시죠? 그런 곳에서 발달장애인을 얼마나 만나보셨나요? 왜 일터에서 발달장애인을 만나기가 어려운지, 발달장애인이 더 많은 훈련과 교육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지, 그게 맞는지, 과연 노동이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두둥! 다섯 세션의 포럼을 열어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었지요.
예술로 노동하는, 더 많은 은혜 씨를 꿈꾸며
첫 포럼은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 씨를 다룬 다큐멘터리 <니얼굴> 공동체상영. 러닝 타임 86분 동안 여기저기서 웃음이 팡팡 터졌어요. 문호리 리버마켓 구경을 하던 사람이 “뭐 그리시는 거예요?” 하니까 은혜 씨가 그림을 그리다 말고 쳐다보며 “니 얼굴!” 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폭소했지요. 솔직하고 꾸준한 은혜 씨 특유의 매력이 영화에 잘 담겨 있었고 은혜 씨와 연결되어있는 주변 사람들이 돋보였어요.
영화 보고 감독님, 작가님과 함께 이야기자리를 가졌는데요, “언니는 언제부터 그림을 그렇게 잘 그렸어요?”라는 어린이의 질문부터 은혜 씨의 일상과 노동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어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잖아요. 잘 만든 콘텐츠가 그 시간을 줄여주기도 하는데, 은혜 씨가 출연한 ‘우리들의 블루스’, 자폐성 장애인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가 그 예지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니얼굴’은 진짜 발달장애인의 일상과 노동을 보여줍니다. 은혜 씨는 여전히 동료들과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얼마 전 그림 그리는 발달장애 노동자를 위한 공간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해요. 혼자만 우뚝 서기보다 여럿이 함께 걸어가는 길을 즐기는 은혜 씨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어요. 더 많은 은혜 씨를 꿈꿔보는 시간이었어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노동
두 번째 포럼에서는 장판(장애운동판)의 철학자이자 이론가, 활동가이자 연구가 김도현 선생님 모시고 ‘노동, 다시 말하다’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노동도 교육처럼 의무이자 권리이며,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온 사람들의 노동을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감을 잡는 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이 제시하신 ‘공공시민노동’ 개념을 바탕으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가 생겨났는데요, 일자리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시작점이 되고 있어요.
사부작은, ‘발달장애인은 싸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기여한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이제는 공공시민노동이라는 언어로 표현하면 되겠구나 싶어요. 다니지 못하는 사람도 생존활동 자체가 주변에 정신적, 정서적 삶에 기여한다면 그 또한 노동이 될 수 있는 세상, 누구나 자신에 맞는 노동을 하는 세상을 함께 상상하고 외치고 만들어가야겠어요!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이어진 세 번째, 네 번째 포럼에서는 발달장애인의 다양한 노동 사례를 공유했어요. 처음에 소개한 피플퍼스트이 발달장애 당사자 활동가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셨어요. 자신과 동료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 문화예술활동을 노동으로 인정받아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었어요.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고 실제로 해보고 수정하고 다시 실행해본 경험을 들려주셔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포럼4 ‘우린 마을에서 일한다’에서는 마을 중심의 노동 사례를 나눠보았어요. 중증발달장애인들의 고용을 마을이 나서서 고민하고 급기야 사회적협동조합 사람이야기를 만든 대구 안심마을 이야기와 성미산마을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사협 활동 이야기가 그것이었죠. 사부작 이야기는 대표 소피아에 이어 사부작청년들(마카롱, 냐옹이, 차니)이 나와 직접 해주셨어요. 어찌나 다들 무대 체질인지 참여자들이 연신 웃으며 들으셨고 청년들이 마을을 누비며 하는 여러 활동을 청년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마을에서 관계 맺고 노는 활동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지요. 자기 일상을 보내는 마을에서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삶과 일이 분리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한 번 더 상상해보는 자리였답니다.
누구나 즐겁게 노동하는 세상
3년 만에 다시 열린 댄스파티 버블버블텍. ‘2022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마지막을 버블버블텍으로 기획한 것은, 중단되었던 댄스파티를 열고 싶기도 했지만 놀며 일하는 진수를 보여줄 쿵쿵차카차카 팀을 초대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이자 노동자들인 이 팀은, 야학 수업시간에 악기를 익히고 연습해서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지요. 배움과 놀이와 노동을 하나로 엮어 신나면서도 울림까지 주는 공연이었어요. 포럼 안내도, 진행도, 벽에 띄운 영상 제작도 모두 발달장애 청년들이 해서 더 의미 있었어요. 번쩍번쩍 조명이 들어오니 공연장이 순식간에 클럽으로 바뀝니다. 모두 중앙으로 몰려나와 몸을 흔듭니다. 이분들, 3년을 참았다는 듯 아주 무아지경으로 노셨어요. 벽과 바닥을 쓸기도 하고 떼춤을 추기도 했고요, 어떤 분은 그냥 걷거나 뛰기만 하기도 했어요. 음악에 맞추어 걸으니 그것도 멋들어진 춤이 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노동은,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한 토대이기도 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 관계를 만드는 계기이기도 해요. 어릴 때는 교육이 그 역할을 하지요. 노동도 교육처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여야 한다는 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기본이 되기 때문이겠지요. 누구나 노동을 하며 살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노동의 사례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버블버블텍 마지막 순서로 ‘2022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폐막식을 간단하게 하고 구호를 함께 외쳤어요. 구호가 일상이 되는 날을 꿈꾸며!
“우리는 마을에서 놀며 일하고 싶다.”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