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이 없어진 삶에 관하여
– 신세계건설 기금 이공계 전공 장학생 인터뷰
아름다운재단의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안정적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학업유지 및 자기계발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자립준비를 위한 역량강화 및 지지체계가 만들어지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2022년에도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이하 리커버리센터)와 협력사업으로 40명의 장학생을 지원하였습니다. 신세계건설 기금을 통해 교육비를 지원받은 이공계 장학생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어떤 작은변화가 생겼을까요? |
어느 맑고 화창한 9월, 2022년도 장학생으로 선발된 서인석(가명) 장학생을 만났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난 9월 말, 한창 캠퍼스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던 차에 만나서일까? 서인석 씨는 활기차게 대학 생활을 즐기며 바쁘게 젊음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오늘의 대학생 그 자체였다. 장학생으로 사는 삶과 서인석 씨의 일상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들어보기 위해, 이 인터뷰는 ‘키워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했다.
Z세대인 인터뷰이에게 익숙할 ‘키워드 인터뷰’는 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로 존댓말을 쓰지 않고 친구처럼 질문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조금 더 편하고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택한 형식이니, 인터뷰를 읽을 때 너무 놀라지 마시길.
# Who are you?
혜은 : 준비됐지?
인석 : 응, 됐어.
혜은 :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질문할 거야. 일단은 자기소개 영역으로 질문을 구성해봤어. 먼저, 유년 시절이 좀 궁금하더라고.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유년 시절이 중요하잖아.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드는지 들려줄래?
인석 : 내가 질문지를 보고 유년 시절을 검색해봤더니 그냥 ‘어린 시절’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의 가장 최초의 기억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얘기하면, 꿀밤을 맞은 게 내 기억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 나쁜 기억은 아니었고 무척 좋은 기억이었어. 뭔가 부족함 없고 모자람을 모르고 살던 시절의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어.
혜은 : 꿀밤을 맞았는데도 그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
인석 : 맛있는 걸 먹다가 그랬거든. 내가 욕심을 부려서 입에 먹을 걸 넣고서도 계속 달라고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이 녀석~!”하고 꿀밤을 맞았는데 그게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어. 그때는 아팠지만.
혜은 : 유년 시절을 어떤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인석 : 노란색. 봄이 좋기도 했고, 그때 내가 살던 그 건물색이 노란색이었거든. 지금은 ‘노란 꿈터’라고 부르는 곳이야.
혜은 : 그 시절에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뭐였어?
인석 : 그때는 좋아하는 TV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애니메이션을 아주 좋아했던 것 같아.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그 생각을 많이 했어.
혜은 :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하네. (웃음) 그리고, 동기들 사이가 아주 끈끈하다고 들었어. 동기들 소개 좀 해줄 수 있어?
인석 : 우리 동기는 ‘부산 40기’라고 해. 우리는 끈끈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였어.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같이 보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부산으로 내려가서 다 같이 지내는 그런 시스템이었거든. 그러면서 우리끼리 서로 챙기게 되지 않았나 싶어. 또 사회 나와서도 만나고 있고.
혜은 : 네게 무척 중요한 의미겠네.
인석 : 그렇지. 우리는 어떻게 보면 가족과 같지. 엄청 편한 관계야.
혜은 : 그중에서 제일 친한 친구 있어?
인석 : 응. 고등학교 때는 내가 좀 걱정했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40기 친구 중에서 제일 잘 된 것 같아. 성실하고, 가장 열심히 사는 친구야.
혜은 : 그리고 이것도 궁금했어.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
인석 : 나를 6년간 키워주셨던 수녀님. 그분은 정말 어른스러운 분이셨던 것 같아. 나는 그때 그 어른스러움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가 성인이 되니까 그렇지 않더라고. 나조차도 성인이지만 성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그런데 그때 당시에 엄마라고 불렀던 그 수녀님이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생각한 어른의 모습 그 자체였던 것 같아.
혜은 : 어떤 면에서 그랬는지 궁금해.
인석 : 말 그대로 엄마였지. 항상 엄한 모습만 보이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여린 모습도 많이 가지고 있으셨던 것 같아. 그런데 한 번도 표현을 안 하신 거지. 6년 동안 우리를 엄마처럼 키워주셨는데 우리가 부산에 내려가게 됐잖아. 내려가면 1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들거든. 그때 난 그냥 천진난만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때 수녀님은 전날 밤에 잠도 못 주무셨을 것 같아. 떠나는 우리를 보지 못하시더라고. 그냥 “빨리 가.” 이렇게 말씀만 하시고. 그때는 섭섭했는데 오히려 수녀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너무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
혜은 : 그랬구나. 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인석 : 내가 방금 말한 수녀님 같은 어른. 누가 봐도 어른스러운 어른. 그리고 화목한 가정을 이끄는 어른스러운 가장이 되고 싶어. 그게 내 꿈의 첫 번째 목표야.
# Campus Life
혜은 : 자세히 얘기해줘서 고마워. 이제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대학에 가기까지의 여정이 좀 남달랐다고 들었어. 원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는데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입도 하고 이런 과정들이 있었다고 들었거든. 어떤 고민 속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인석 : 나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그냥 주어진 일에만 열중하는 학생이었던 것 같아. 우리는 공고여서 취업을 우선순위로 했거든. 대학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그냥 좋은 기업 가면 똑같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해 봤지만 근무 환경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더라고. 이를테면, 교대 근무를 하면 내가 이거를 평생 해야 할 텐데 그러면 가정생활은 잘 해낼 수 있을까, 일과 삶의 균형은 지킬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15년 경력의 선배가 나랑 같은 일을 하고 계신 것을 보고 학력의 필요성을 깨달았어. 그 당시에 내가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는데, 그만큼 일이 나한테 안 맞았던 것 같아. 그래서 고민하다가 어떤 전공을 할지 준비해서 대학에 가게 됐어.
혜은 : 그렇구나. 그렇게 들어간 대학 생활은 어때? 학교에서 활발하게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 요즘 열심히 하는 일은 뭐야?
인석 : 요즘 체육대회 준비한다고 아주 바빠. 지금 내가 족구랑 축구에 다 출전했거든. 약간 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우리 학과가 원래 체육대회에서 항상 바로 탈락하는 팀이었는데 내가 와서 좀 바뀌었어. (웃음)
내가 구기 종목에 강한 것 같아. 그리고 취업과 별개로 탁구 동아리도 하고 있어. 탁구, 당구, 축구, 족구, 테니스, 배드민턴 다 좋아해.
혜은 : 대단한데? 이건 좀 가벼운 질문. 혹시 게임파야? 운동파야? 아니면 둘 다 하거나 둘 다 안 하거나.
인석 : 둘 다 해. 게임을 하면 축구 게임을 하거든. 아무래도 더 좋아하는 건 운동인 것 같아. 운동을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게임은 내가 잘하지 못하더라고.
혜은 : 결론은 운동을 잘하는 것으로. 그리고 전공이 화학공학이라고 들었는데, 이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뭐야?
인석 : 원래 편입 전에는 이 전공이 아니었어. 전기와 기계를 합친 학과였는데 프로그램 위주로 수업이 있더라고. 그런데 나는 프로그램이랑 좀 안 맞았던 것 같아. 편입 전공 정할 때는 비전을 봤어. 아무래도 화학공학이 발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했어. 그런데 아직은 시장이 그렇게 좋지 않대.
혜은 : 지금까지 얘기하면서 가장 얼굴이 어두워진 것 같아.
인석 : 현실적인 부분이니까.
혜은 : 그런데도 지금 하는 공부의 매력을 좀 알려줄 수 있어?
인석 : 화학공학은 무척 어려워. 그런데 오히려 어려우니까 좋은 성적을 내면 성취감이 더 큰 것 같아. 다루는 분야가 넓은 게 매력적이기도 하고.
혜은 : 긍정적이네. 그리고 이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 취업 준비로 하고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야?
인석 : 지금은 전공 관련 기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 일단 전공 쪽에 관심을 가져볼 계획이야. 그리고 어학 자격증 점수를 더 높여야 해. 남들과 비슷한 준비를 하고 있어.
혜은 :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뭐야? 그리고 필요한 게 뭔지도 궁금해.
인석 : 시간 배분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 여러 가지 준비를 한꺼번에 하고 있어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잘 배분하는 게 가장 중요해. 원래는 금전적인 것도 많이 신경 써야 했는데, 이건 재단 장학금에 도움을 받고 있어. 이제는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망설일 핑계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혜은 : 핑계 하나가 사라져서 더 치열해진 거야?
인석 : 나는 치열하기보다는 넓게 보고 준비하는 편이야. 빡빡하게 시간을 쓰기보다 집중해서 공부하는 게 더 도움이 되더라고. 각자 공부법이 있는 것 같아.
혜은 : 그런 것 같아. 삶을 누리고 즐기는 게 보이고, 또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취업 준비도 그런 식으로 하는 것 같고. 혹시 장학생이 되고 나서 달라진 점 있어?
인석 : 아까 말했다시피 뭔가 하는 데 망설임이 없어진 것 같아. 예를 들면, 나는 운전면허 시험을 계속 미루고 있었거든. 지금 당장 쓸 것도 아니고, 운전할 일도 없어서 그랬는데, 사실 금전적인 부분이 컸던 것 같아. 그런데 이제는 바로 하게 돼. 운전면허도 어떻게 보면 자기 역량 개발이기 때문에 지원이 되거든. 그래서 필요성을 느끼고 한 2주 만에 바로 시작했어. 망설이는 일에 핑계 하나가 줄어들었다는 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야.
혜은 : 망설임이 없어졌다는 표현이 추상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마음에 와닿기도 해. 혹시 기부해 주시는 기부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인석 : 기부금은 그 취지에 맞게 남기지 않고 잘 쓰는 게 가장 잘 쓰는 것으로 생각해서 받은 장학금을 남김없이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 그 기부금을 잘 써서 부끄럽지 않은 장학생이 되려고 한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어.
혜은 : 장학금을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혹시 있을까?
인석 : 태블릿. 수업 듣는 데, 큰 도움이 돼. 공부하기 정말 편하고 정리가 잘 돼서 진짜 도움을 많이 받았어.
# Day Life
혜은 : 이제 마지막으로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관심사를 들어보고 싶어. 지금 가장 관심 있는 게 뭐야?
인석 : 고양이. 반려동물이라는 의미가 말 그대로 가족이잖아. 나는 앞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꿈이 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미 첫 가족이 생긴 거더라고. 원래는 나를 구속할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약간 책임이 생겼다고나 할까. 일주일에 두 번 가지던 저녁 약속도 한 번 가질까 말까 하고 있어. 집에 있는 고양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
혜은 : 이름이 뭐야?
인석 : 먼지야. 우리 고양이가 결혼한 상대방 고양이 이름은 미세.
혜은 : 나는 먼지라고만 들었을 때 무척 철학적이라고 생각했거든. (웃음) 현재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이모지 하나 골라봤어?
인석 :
혜은 : 반전이다. 앞의 활기찬 운동 이야기들과 너무 다른 거 아니야?
인석 : 이제 관심사 얘기해서 말하는 건데 내 취미가 낮잠 자는 거야. 내가 잠이 되게 많은 편이거든.
혜은 : 이런 반전 너무 좋다. 요즘 보고 있거나 예전에 본 것 중에 좋아하는 영화나 책이나 웹툰 같은 콘텐츠 추천해줄 수 있어?
인석 : 나는 웹소설을 즐겨 보고 넷플릭스는 가끔 보는데 이번에 가장 재미있게 봤던 게 <샌드맨>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야. 좋은 대사도 많고, 너무 재밌게 봤어. 사실 난 지루하면 잘 안 보거든. 그런데 모든 내용이 다 마음에 와닿았어. 꼭 한 번 보면 좋겠어.
혜은 :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몇 개만 소개해줄 수 있어?
인석 : 일단은 축구 채널이랑 <지식 한 입>, <지식 해적단> 그리고 <슈카월드>.
혜은 : 가장 많이 들어간 애플리케이션은?
인석 : 일단 유튜브랑 인스타그램에 제일 많이 들어가긴 해. 앱 중에는 <코스모스>라는 학교 프로그램에 많이 들어가. 요즘은 온라인 강의를 많이 해서 과제나 공지 같은 걸 다 인터넷으로 한단 말이야. 그래서 <코스모스> 앱에 알람 뜨게 해서 과제 등을 놓치지 않아.
혜은 : 아하. 그런 앱이 있구나. 그리고 취미도 궁금해. 없으면 괜찮고.
인석 : 취미는 운동. 축구도 하고, 풋살도 많이 하고 있어. 아까 말했듯이 잠도 자고. 참, 지원금으로 수영도 시작했어.
혜은 : 아까 고양이 이야기하면서 책임감이 생긴다고 했는데 고양이가 나에게 정서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조금 더 얘기해 줄 수 있어?
인석 : 고양이랑 같이 사니까, 집 청소를 더 하게 되더라고. 털이 좀 날리니까. 전체적인 변화라고 하면, 사실 나는 집에 혼자 있는 게 편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내가 침대의 3분의 1을 쓰고, 고양이가 3분의 2를 사용할 정도야. 잠을 자는 게 조금 불편하긴 한데 그래도 좋아. 혼자 자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편해진 것 같아. 고양이만의 울음소리가 있어. 내가 만져주면 골골골 대는 소리. 그 소리가 너무 좋아.
혜은 : 그렇구나. 행복한 소리지. 오늘 재미있는 얘기 잘 들었어. 너무 고생했고, 고마워.
글 : 박혜은 (글작가)
사진 : 리커버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