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우리 사회의 의제들도 다양해집니다. 그에 발맞춰 공익활동 또한 새로운 영역에서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신생 공익단체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9년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선정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가 2022년도 3년차 마지막 활동 이야기를 전해주셨어요. ✨ |
차별과 낙인을 넘어,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가 필요한 모두의 곁에서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역사적인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결과를 듣고 환호하며 눈물을 흘렸던 날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셰어의 전신인 ‘성과 재생산 포럼’의 구성원들은 오랫동안 ‘낙태죄’ 폐지 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며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변화는 처벌법의 페지 이후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마음을 다져왔었지요. 하기에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각자의 마음속에 내심 품어왔던 생각들을 꺼내었을 때 큰 망설임 없이 의견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단체를 만들어보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었죠. 활동가, 연구자, 변호사, 산부인과 전문의로 각자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지만 단체를 만들기 위한 자원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구성원 중 한 명이 아름다운재단의 인큐베이팅 지원사업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단체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정말 열심히 5개월여의 시간 동안 활동계획을 세우며 토론했습니다.
셰어는 이런 활동을 하는 단체가 되어보기로 했습니다.
- ‘낙태죄’의 폐지를 넘어서 실질적인 권리의 내용을 만들고 그 권리가 구체적으로 현설화되는 과정을 만들자.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관한 내용을 권리로서 명시하고 차별과 낙인 없이 모두에게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해보자.
- 보건의료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보건의료인의 인식과 의료기관을 바꾸는 다양한 논의와 실천들을 제안해 보자.
- 모든 생애와 집단을 포괄하는 성교육, 사회적 소수자 집단의 필요에 맞는 성교육, 지식과 정보만이 아니라 삶의 관계와 자원을 포함하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성교육, 낙인과 차별이 아닌 근거에 기반한 정보와 실질적인 내용을 배우고 함께 토론하는 성교육을 현장에서 만들어보자.
-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집중해서 사회적 권리들을 연결하고, 그 활동들이 재생산정의로 연결되는 활동을 만들어보자.
-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관한 다양한 교육과 정보, 인프라에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들을 해보자.
- 가능하다면 우리가 직접 이런 활동들을 연결하고 실천할 수 있는 클리닉과 연구소를 설립해보자.
아름다운재단의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이 아니었다면, 무려 법·정책 제안, 연구 활동, 보건의료 연계, 포괄적 성교육을 모두 아우르면서 이후에는 연계 클리닉과 연구소까지 만들어보겠다는 이런 계획을 어떻게 시작해볼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재단은 이 방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해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고, 2019년 준비기간 3개월을 포함하여 지난 3년 3개월 동안 셰어 활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2023년을 맞이하는 지금, 셰어는 420여명의 정기후원 회원 ‘조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고, 2020년부터 차곡차곡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 검은시위에서 국회까지>, <상담자와 의료인을 위한 임신중지 가이드북 ‘곁에, 함께’>를 제작하여 여러 시민사회 단체와 관련 기관, 국회, 정당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그간 여러 단체들과 함께 논의하며 만든 이 자료들을 가지고 우리의 요구가 법과 정책에 반영되도록 많은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지요. 실제로 셰어가 제안한 내용들은 그 동안 여러 개정안과 정책에 반영되어 왔습니다.
2021년에는 소수자 집단을 중심으로 편견 없는 포괄적 성교육 프로그램 진행하는 에브리바디 플레져랩의 ‘찾아가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성교육 워크북 <에브리바디 플레져북>과 <섹스빙고>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는 텀블벅 펀딩을 통해 더 많은 성교육 기관과 단체, 성교육 강사, 교사, 모임과 관심있는 개인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포했습니다. 욕망을 탐험하고 즐거움을 찾아가는 편견없는 포괄적 성교육 활동을 통해 금지하고 위험만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니라 소통과 관계, 성적 경험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돌아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역량을 키우는 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셰어는 에브리바디 플레져랩의 활동을 통해 성적권리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고 확장시켜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 이 내용을 잘 정리하여 정책과 교육 방향에 대한 제안에도 반영하고자 합니다.
보건의료 현장에서 인식을 함께 바꾸고 접근성을 높여나가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어, 2022년 셰어의 친구들 팀에서는 세 차례의 오픈테이블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임신중지 이슈로 배우는 한국의 보건의료 제도와 의료공공성’, ‘미프진(유산유도제) 도입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장애여성 성·재생산 건강을 위한 보건의료 접근성’을 주제로 진행된 오픈테이블은 주제별로 시민건강연구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과 공동주최로 진행되었고, 각 회차마다 여러 보건의료인과 활동가, 관심있는 개인들이 함께해서 알찬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2022년에는 재생산 연구자 네트워크 ‘미라클 토요일 세미나’ 팀도 구성되어, 재생산권리, 재생산정의에 관한 다양한 담론과 의제, 연구 내용들을 함께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모인 구성원들은 앞으로 재생산권리를 확대하고 재생산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 활동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국내 최초의 성·재생산 건강 전문 의원인 <색다른의원>
그리고 드디어! 2022년 9월에는 셰어의 연계클리닉이자 국내 최초의 성·재생산 건강 전문 의원인 <색다른의원>이 장승배기역 6번 출구 인근에 문을 열었습니다. 색다른의원은 그동안 셰어의 활동에 함께하면서 고민을 함께해 온 산부인과 전문의 최예훈 기획운영위원이 개원한만큼, 준비 과정에서부터 의료진 모두가 차별과 낙인 없는 진료, 소수자의 접근성을 두루 고려한 병원 시설과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준비를 했답니다. 휠체어의 이동을 고려한 공간과 동선, 월경컵 세척까지 고려한 모두의 화장실, 성소수자도 불편함 없이 작성할 수 있는 문진표, 임신중지와 성매개 감염 진료를 차별과 낙인 없이 받을 수 있는 상담과 진료 환경 등 모든 것들이 셰어의 활동을 바탕으로 반영된 것이지요.
처음에는 그저 방대하게만 느껴졌던 계획들이 지난 3년 3개월 동안 하나하나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단체와 회원 여러분들이 셰어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성·재생산 권리의 내용이 현실이 되도록 함께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변화는 아직 많이 더딥니다.
정부와 국회, 관련 부처들은 여전히 성·재생산 권리에 대해 무지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를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더욱 후퇴시키려 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셰어는 결국 변화를 만들고 밀어나가는 힘은 우리의 요구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실천들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2022년을 마지막으로 아름다운재단의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은 졸업하지만 셰어는 지금까지 쌓아온 활동들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성적권리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이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 주거지를 가질 권리, 안전하고 위생적인 용품을 보장받을 권리, 탈시설하여 자신의 삶을 보장받고 살아갈 권리와 같은 모든 사회적 권리들과 함께 당연히 보장되는 권리가 될 수 있도록, 욕망을 탐색하고 정치경제적 관계 안에서 비평하며 평등하고 즐겁게, 대안적이고 급진적인 관계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안전한 임신중지가 모두에게 보장될 수 있도록, 성장과 생산성, 효율성에 맞춘 규범과 관계를 뒤집고 지구 위의 모든 삶이 함께 서로를 살피며 연대하는 재생산정의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이런 세상을 꿈꾸는 모두의 곁에서 함께 활동하겠습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는 국내 최초로 성별, 연령, 장애, 인종, 국적,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성 건강 전문 상담과 의료지원, 포괄적 성교육 접근성을 보장하고, 이를 위한 법과 정책을 연구하는 통합 센터를 지향합니다.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누리며 충분한 정보와 평등한 자원을 바탕으로 서로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셰어 홈페이지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