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의 다양한 기금 중 지난 편에 이어 ‘가족기금’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아름다운재단에는 지난 20년 간, 부부의 특별한 기념일을 기념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만든 10여 개의 가족기금이 있습니다. 그중 8개의 가족기금은 현재진행형이죠. 오늘은 2008년 6월, 가족기금을 조성한 발리네집기금 최은경 기부자님을 만났습니다. 올해는 발리네집기금 조성 15주년이기도 합니다. 이에 15주년을 맞이하는 소감과 그동안의 기부와 지원을 통해 가족들이 느낀 변화는 무엇인지, 가족기금의 장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연락할 때면 언제든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대해주시는 기부자님과의 인터뷰라 기부자님의 화사한 기운을 닮은 노오란 꽃다발을 준비해 인터뷰 장소로 향하는 길이 무척 설렜습니다.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로 많은 분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최은경 기부자님의 똑 부러지는 인터뷰, 지금 시작합니다! |
가족기금이 그저 아주 작은 우리 집의 전통이 되었으면
Q1. 기부자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기부자님과 <발리네집기금>의 간략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발리네집기금의 발리 엄마, 아나운서 최은경입니다. 2008년에 아들의 태명을 따서 가족기금을 조성했어요.
Q2. ‘발리네집기금’은 가족기금으로 올해 15주년을 맞은 아름다운재단의 오랜 기금 중 하나입니다. 재단에는 다양한 목적의 기금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그동안 기부자님이 직접 느낀 ‘가족기금’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개인기금이면 ‘내가 좀 더 상황이 나아지면 나중에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가족기금이기 때문에 더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게 있어요. 혼자가 아니라서. 훌륭한 단어로 하면 되게 유명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레거시 같은 건데, 저는 우리 가족기금이 그저 아주 작은 우리 집의 전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죠. 이걸 하나 만들어 놓으면 우리 아들에게도 직접적인 말로 나눔은 이런 거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는 느낌이 있어서 가족기금이 좋은 거 같아요.
사실 아이가 크고 난 요즘, 가족이 같이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어요. 다 같이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그런데 이런 거(기금) 하나를 만들어놓으면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우리가 하나로 묶여 있는 게 있다는 느낌이 있는 거죠. 아마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했다면 이렇게까지 오랜 기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계속 함께 갈 가족이니까 그만큼 단단하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 같아요.
Q3. 가족기금인 만큼 가족의 생일이나 부부의 결혼기념일, 유튜브 채널(최은경의 관리사무소) 1주년 등 가족에게 의미 있는 날이면 잊지 않고 기부를 하시는 게 참 멋있고 존경스러웠어요. 혹시 평소에 가족/부부가 ‘우리 언제 기부를 하자’라고 계획을 하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계획을 대단하게 하지는 않지만 저희가 이야기했던 것은 가족의 기념일, 우리가 축하할 일이나 기쁜 일이 있을 때, 되게 열심히 한 일이 있을 때 등 좋은 일 좋은 날에 우리 기부를 하자. 했어요. 결혼기념일에 우리 둘이 선물 사고 받아서 뭐 하나, 비싼 밥 먹음 뭐하나 하는 생각도 해요. 저는 결혼기념일에 선물이나 외식하는 거보다 둘이 오붓하게 집에서 먹는 떡볶이가 제일 좋아요(하하). 그런 것 대신 그저 둘이 기부를 하는 게 정신적 포만감이 너무 큰 거죠.
예전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는 좋은 점 중 하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무탈한 상태’가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것이란 걸 느낀다는 거예요. 사소한 거라도 걱정거리가 생기면 밸런스가 무너지잖아요. 일상을 고마워할 줄 알게 된 거죠.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마냥 기쁜 일을 바라는 것도 힘든 세상인데,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게 우리에게는 너무 큰 선물이고 너무 기쁜 일이라고 남편과 자주 이야기해요. 또 조금씩 야금야금 모아서 우리만의 기념일에 나눔을 하게 될 땐, 마치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처럼 ‘이번에는 언제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들로 그전부터 너무 마음이 설레요.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걱정거리를 덜어줄 수 있다면 그게 저한테 더 큰 기쁨으로 돌아와요.
Q4. 보통 기부자님이 주도적으로 나눔을 계획하시는 편인가요? 때로는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이번에는 기부 대신 우리가 갖고 싶은 걸 사자, 다른 걸 하자라고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경제권이 저한테 있으니까 제가 주도적으로 의견을 냈을 때 무조건 따라줘요(웃음). 남편이 언제나 동의해 줘서 참 고맙게 생각해요.
내 아이가 늘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꾸준히 지원하고파
Q5. 이번엔 지원사업 이야기를 해볼게요. 발리네집기금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른둥이 치료비 지원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른둥이 말고 또 다른 지원을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부모는 아이가 크는 과정에 따라 눈이 확장되더라고요. 처음엔 이른둥이에 대한 인식도 없었는데,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이른둥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입원/재활치료비가 필요하고, 장기적인 치료로 치료비 부담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기금이 아주 크면 이래저래 많은 일을 하겠지만 그럴순 없다보니 우리 아들이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데 마음이 가요. 몸이 크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어린이들은 뭘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지원해야 할 분야가 너무 많이 있겠지만 저는 계속 어린이를 대상으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꼭 치료비 지원이 아니더라도요.
Q6. 15년 간 기부자님의 꾸준한 나눔과 지원 덕분에 이른둥이를 지원하는 정부 지원 제도들도 많이 개선되는 변화가 있었어요. 이런 변화를 함께 만들기까지 꾸준한 나눔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기부자님은 운동도, 방송도 하나를 시작하면 꾸준히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제가 여러 개를 못해서 하나 해서 이게 괜찮다 싶으면 쭉 가는 편이기도 하고, 제 성향도 있겠지만 가족기금이기 때문에 꾸준한 것도 분명히 있어요. 그리고 특별한 원동력이라기보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생활하는 게 어떤 원동력을 가지고 의식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것처럼 나눔은 이미 제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습관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냥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자동이체가 답이기도 해요(웃음). 저는 각자 자리에서 각자가 열심히 하면 잘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막 변화를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거고, 뭘 한 번 하면 열심히 하는 게 제 성격이라 저한텐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Q7. 아름다운재단 외에 또 기부하는 곳이 있으세요?
여러 기관에 자동이체로 정기기부를 한 적도 있는데, 어느 순간 여러 곳을 동시에 하는 건 저 스스로 정신이 없더라고요. 아들 이름으로는 다른 기관에 어릴 때부터 용돈으로 기부할 수 있게 결연 기부로 자동이체를 걸어둬서 지금까지 끊지 않고 있어요. 남자아이가 스스로 하기 쉽지 않은데 하다 보면, 이건 내가 그냥 하는 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고 싶은 맘이 있었거든요. 암튼 현재는 재단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어요.
Q8. 재단에 선택과 집중을 하시는 건, 그만큼 재단의 기금 운영이나 지원에 대한 만족과 신뢰가 있어서일 것 같은데요. 기부자님이 생각하시는 아름다운재단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전문성과 투명성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은 이른둥이 외에도 다른 아픈 사람들을 도울까도 생각해서 병원도 알아보고 그랬었는데, 저희가 직접 뭘 찾고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재단이 좋은 점은 제가 열심히 드리기만 하면, 알아서 관리해 주시는 전문가가 있는게 너무 좋아요.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너무 제한적이니까 재단이 지원이 필요한 곳을 찾고, 그 현장의 전방에 있는 전문가들이 제안을 주시고 그걸 바탕으로 사업까지 잘 해주시니까 그렇게 기부 결정을 하는 게 결국 기부금이 더 잘 쓰일 거 같다는 생각으로 귀결되더라고요.
Q9. 그동안 기부 외에도 아름다운재단의 주요 행사 사회나 내레이션 재능기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한 캠페인 홍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를 해주셨는데요. 재단과 함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게 있다면요?
기부자 행사가 참 좋았어요. 발리네집기금을 조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 행사에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랑 갔었는데 아들과 함께 발리네집기금 이름을 쓰고 트리에 달고 했던 그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평소에 새로운 누군가를 다양하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기부자들이 참여하고 같이 모이는 그런 행사들이 준비하는 재단 입장에서는 힘들 수 있지만, 기부자들을 더 독려하고 열심히 하게 하는 계기도 될 수 있고, 기부 문화 저변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10. 다음에 또 기부자 행사를 한다면, 그때도 사회를 꼭 부탁드립니다(하하). 앞으로도 발리네집기금은 15년이상 꾸준히 유지가 될 거 같은데요. 혹시 앞으로 기금에 바라는 점이 있으실까요?
남편이랑 언젠가 이야기하길, 이걸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줘서 아들이 이 기금을 유지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진짜 성공한 삶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적으로도 기부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거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된 거라는 의미일 테니까요. 그리고, 가족기금을 만들게 된 계기를 돌이켜보면 ‘제가 기금을 만들 수 있어요? 막 대기업이나 엄청난 자산가만 해야 할 거 같고, 내가?’ 막 그랬었는데 막상 만들어보니 이렇게 좋은 걸 싶고, 이런 기금들이 더 활성화되면 좋겠는 거죠. 제 기금이 대단하게 파워풀하진 않지만, 우리 발리네집기금이 하나의 사례가 돼서 가족기금이 재단에 꾸준하게 많이 생겨나면 좋겠어요.
Q11. 가족기금을 생각 중이거나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엄청 매력적이에요. 나만의 기금이라는 게 굉장한 책임감이에요. 내 가족으로 내 이름으로 어떤 뜻을 만들어서 기금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한 책임감을 들게 만들어요. 이걸 잘 유지하고 싶으니까 더 열심히 살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어찌 되었건 내가 포기하면 없어지는 거니까. 자동이체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사실 책임감이 중요한 것 같고, 책임감만큼 보람도 있어요. 특별한 무언가를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면 가족기금, 너무 좋을 거 같아요. 한 번에 몇 억을 기부해야 하는 거라고 너무 크게 생각하는데, 조금씩 조금씩 모아서 시작하는 것도 소중하고 중요한 거잖아요. 결국엔 실천을 하는 게 중요한데 그 시작점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젠가 나도 여유가 되면?’이 아니라, 일단 질러야 습관이 돼요(웃음). 일단 셋업이 되면 그다음은 습관처럼 이어지게 되니까요.
Q12. 기부자님 말씀처럼, 가족기금을 포함한 모든 나눔이 시작점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공식 질문이죠. 나에게 기금이란?
‘(발리)네 거다.(웃음)’ 사실 거창한 게 없어요. 음… ‘내가 가장 잘 들인 습관’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운동이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안 하면 몸이 더 힘들더라고요. 운동을 하는 게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하는 생각으로 행복해하면서 하거든요. 기금에 꾸준히 기부를 더해가는 것도 제게는 그런 습관이 된 거죠.
남편에게도 참 고마워요. 재단에 먼저 기부를 한 남편이 길을 먼저 터준 거니까요. 그전에는 저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해야지’ 하는 그런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게 언젠지 모르는 거고 그런 여유가 내 마음에 생길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기부를 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나눌 수 있어서 스스로도 내가 잘 살고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면이 있어요. 결국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축복인 게 저한테는 나눔(기금)이에요.
바쁜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 1시간 남짓의 여유 시간에도 재단의 요청에 기꺼이 인터뷰를 할 수 있게 시간을 내준 최은경 기부자님, 충분한 시간이 아니어서 미안해하시며 준비한 인터뷰를 다 끝마칠 수 있도록 대신 말을 엄청 빨리하셨다는 센스 넘치는 기부자님 덕분에 인터뷰라는 사실은 잠시 잊은 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이와 유쾌하고 즐거운 수다를 한 것 같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봐온 기부자님은 항상 그런 분이셨어요. 주위를 밝게 만드는 긍정 에너지와 무엇이든 열심히,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죠. 재단을 포함해 매사에 함께하는 많은 것들에 애정이 가득한 그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운 발리 엄마, 최은경 기부자님. 인터뷰 내내 쉴 새 없이 생동감 넘치게 바뀌는 기부자님의 표정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로 전해주신 기금의 이야기들이 글에도 최대한 생생하게 담겨 많은 분들에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오늘 인터뷰를 통해 한번 마음먹은 일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우직하게 한 길을 가는 발리네집기금 그리고 발리네 가족에게서 온화하지만 단단한, ‘외유내강 실천가’의 모습을 엿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 유산, 가족기금
아이들은 부모의 말투 하나, 행동 하나까지 무서울 만큼 정확하게 캐치해서 따라 하곤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책임감이 더 생기는지 모릅니다. 내 아이에게 좋은 모습과 닮기를 바라는 점을 물려주고 싶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다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불러주던 사랑하는 아이의 이름을 딴 기금을 만들고, 우리 가족에게 행복한 날, 의미 있는 날에 엄마 아빠가 그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을 오랜 기간 지켜본 아이라면, 말을 하지 않아도 분명 느끼는 게 있을 거예요. 그러고는 훗날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정신적 유산이 되어, 이제는 자기만의 나눔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지 않을까요? 자식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비단 물질적인 유산만이 아닐 거예요.
발리네집기금이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길 바라며 이른둥이의 치료비 지원을 시작했듯 우리 가족의 관심사와 소중한 가치를 가족기금에 오롯이 담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나눔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덜 아프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가족의 선한 영향력이 우리 집을 넘어 이웃으로 사회로 더 넓게 확장될 수 있다는 걸 가족기금을 통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따스한 봄날, 발리네집기금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품은 새로운 가족기금이 탄생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사진 | 임다윤
김권배
아름다운 기부자이네요.
삶을 살아가는데는 한사람이 할 일이있고 한사람 이상 있어야 할일이있는데 그것이 기부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