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의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2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참여한 제주환경운동연합의 제주 용천수 보전 활동을 전해드립니다. |
제주사람들의 모든 것이었던 용천수
1961년, 제주도는 첫 지하수 관정을 뚫은 지 10년이 지날 때까지도 물 이용 여건이 매우 열악한 상황으로 물이 매우 귀한 섬이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해안가의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해 생활하였고, 용천수는 유일한 식수원으로 관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물허벅, 물구덕, 물팡 등 제주만의 독특한 물이용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마을 공동의 책임 하에 용천수를 관리 및 보호하여 물을 절약하고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들이 적용되었지만, 현재의 상수도 시스템이 개발된 후 용천수 이용이 줄어들면서 관리가 소홀해지고, 각종 난개발로 인해 훼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1999년 1,025곳에 이르던 용천수는 2020년 646곳으로 급감했습니다. 이중에 270개는 도로건설 등 각종 개발로 사라졌고,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용천수도 94곳에 달합니다. 남아 있는 용천수도 환경변화에 따라 수량이 크게 줄거나 물이 흐르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오염원과 오염원 관리 미흡에 따라 수질 또한 악화되고 있습니다.
용천수와 나와의 상관관계?!
과거 제주 사람들은 용천수를 ‘산물’이라 불렀습니다. 산에서 나오는 물이 아닌 ‘살아 있는 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 하나에서 제주인들이 용천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제주사람들에게 용천수는 병을 고치는 약수였고 곤란한 일이 닥칠 때 마음을 시대는 성소이기도 했습니다. ‘할망물’이란 이름이 붙은 용천수들은 마을에서 제사 때만 쓰던 신성한 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성시한 물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용천수들은 식수와 피곤에 지친 몸을 풀어주는 냉수욕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용천수를 가보면 물팡 등 그 시절 물 유적 문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용천수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용천수와 사람이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 마시는 물이 바로 지하수이기 때문입니다. 용천수는 지하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 속에 있는 지하수의 모습을 용천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천수가 말라가고 있다는 것은 땅 속의 지하수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용천수가 오염되었다면 어떤 요인으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주에서 생산되는 먹는 샘물을 포함하여 제주의 지하수 의존율은 99.9%에 달합니다. 수자원의 관리측면에서도 용천수는 꼭 보전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입니다.
지하수의 거울, 용천수의 가치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도록
용천수를 식수로 이용하던 80세 이상 어르신들은 용천수의 가치와 물 이용의 지혜를 알고 있는데 반해 현재의 상수도 시스템의 혜택을 본 세대들은 용천수를 이해할 시간을 갖지 못해 용천수는 더욱 잊혀지고 있습니다. 하여 2022년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용천수의 가치를 알리고 이를 보전하려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습니다. 어린이, 가족, 성인 등 참여 주체별 용천수 기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용천수 줍깅’으로 방치된 용천수를 찾아가 정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추억의 용천수 사진 공모전’은 용천수를 주제로 추억이 담긴 사진을 접수 받아, 용천수를 이용하던 과거 어르신 세대와 현 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참여의 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여러 창구를 통한 용천수 활동으로 지역방송 매체에서 용천수 다큐멘터리 촬영이 요청이 오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용천수가 생태환경을 유지하는데 크게 이바지한다는 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제주도에서는 용천수의 생태환경적 가치에 대한 조사·연구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또한 용천수 이용과 개발 사업에 관련된 기록 및 자료의 소실과 식수원으로 이용하였던 용천수에 대한 기록도 정리되어 있지 않아 제주도민들은 용천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2018년부터 시민 누구나 용천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용천수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총 646개소 용천수 중에서 200개의 용천수를 조사하여 용천수 가이드북 1~4권을 발간하였습니다. 2022년에는 ‘용천수 가이드북 5’을 발간하였고, 이번에는 애월읍과 한림읍 일대의 용천수 111개소를 마을별로 코스로 구성하여, 도보로 찾아가는 용천수와 마을 이야기를 함께 넣어 구성하였습니다. 이 용천수 가이드북이 용천수의 가치를 공유하고 용천수가 역사·문화·생태 공공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차세대까지 지속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2022년 시작된 작은 변화
용천수는 지하수의 거울입니다. 땅 속에 있는 지하수의 모습을 용천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천수가 말라가고 있다면 땅 속의 지하수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용천수가 오염되었다면 어떤 요인으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지하수의 관리 측면에서도 용천수 보전·관리도 동등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재 용천수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매우 미흡합니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제주특별자치도의회와 공동주최로 하여 행정당국, 마을, 단체 등 전문가를 초대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논의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한 ‘용천수 전문가 포럼’을 진행하였습니다. 용천수 전문가 포럼에서는 주민, 마을이 요구하는 용천수 관리·보전 정책, 단체가 제안하는 정책, 행정당국에서 가능한 대안, 도의회 차원에서 가능한 역량을 모으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가장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제도적 변화였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활용 및 보전에 관한 조례」가 2014년 개정되어 있지만, 상위법령인 제주특별법에 근거하지 않고 제정되어 실제로 집행하기 어려운 문제로 유명무실한 조례로 남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관리 대상 용천수 선정 및 고시(조례 제6조), 용천수 개발 이용 및 제한(조례 제7조, 8조) 규정 등 법률적 근거가 없어 행정당국에서도 집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용천수 전문가 포럼을 준비하면서 행정당국에서는 제주특별법 제392조 2항 용천수 보전·관리 조항을 신설하는 8단계 제도개선안을 제출하였습니다. 이로써 상위법령이 존재하지 않아 실행력을 담보할 수 없었던 용천수 관리·보전의 문제를 해결하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제주특별법상 용천수 보전·관리 조항이 신설되지만 상위법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조례로 실행할 수 있는 최대치를 이끌어 내는 조례 개정 역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2023년 상반기 중으로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와 함께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또한 행정당국-연구기관-시민단체가 용천수 관리·보전을 위해 연대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2022년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사업은 끝났지만 활동의 힘으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글, 사진 : 제주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