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3km를 걸어서 배달 7건을 해내고 나니 20,500원의 수입이 생겼네요. 5월 한 달 간 모은 돈도 단체를 정해 기부할 거예요.”
2021년 3월 도보 배달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이재찬 님, 매월 배달로 번 수입 전액을기부하고 있습니다. 2023년 5월 12일 기준 747.7km을 걸어 570만 원을 벌었고, 25개 단체에 모두 기부했죠. 재찬 님이 운영 중인 ‘뚜벅기부’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어보면 실제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아요. 매월 배달한 거리와 수입, 기부 내역과 이유까지 상세히 적어두었거든요. 최근에는 안전한 배달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도보 배달이 기부의 통로가 되기까지, 또 공익활동의 동기가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후후레터가 세상의 변화에 진심인 재찬 님을 만나 들어봤습니다.
다음 기부를 생각하며 내디딘 걸음,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처음 도보 배달을 시작한 이유와 첫 배달 순간, 그리고 첫 기부의 순간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보고 다이어트를 위해 도보 배달을 시작했어요. 첫 배달이 2021년 3월 12일이었는데 그 날 배달을 딱 1건만 한 거예요. ‘콜이 별로 없네’, ‘목표액으로 잡은 10~15만 원을 채울 수 있으려나’ 생각했죠. 지금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서 시간대별로 어느 지역으로 이동해야겠다는 판단이 서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전혀 못 할 때였으니까요.
첫 기부를 하면서도 쾌감, 성취감, 뿌듯함 이런 건 전혀 없었어요. 그런 걸 느끼려고 시작했던 프로젝트도 아니고, 몇 개월 하고 그만 둘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첫 번째 기부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거 같아요. 첫 기부를 했으니 오히려 두 번째 기부를 생각했어요. ‘이번 주는 몇 건, 다음 주는 몇 건을 배달해야지 목표액을 채울 수 있겠다’고요. 다만, 약간 그런 건 있었죠. 짝사랑을 고백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뚜벅기부를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첫 기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재단이었으니깐요.
아름다운재단에 첫 기부를 하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재단에서 인상깊은 프로젝트가 있었나요?
비영리단체의 탕비실을 채우고, 응원을 전하는 프로젝트 <탕비실을 부탁해> 캠페인이 인상적이었어요. ‘좋은 비영리단체 없이는 좋은 아름다운재단도 없습니다’라는 문구에 현장을 바라보는 아름다운재단의 시선이 담겨 있어 좋았거든요. 비영리단체를 위한 1차원적인 지원, 예를 들면 인건비나 사무실 임대료, IT기기, 차량 구입비 등은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거든요. 그러나 1차원적인 지원이 늘어나야지 비영리활동가와 단체들의 지치지 않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활동에 대한 응원임과 동시에 그들이 말하는 가치에 대한 존중, 방향성에 대한 지지인거죠. 아름다운재단이 비영리단체들에게 전한 탕비실 간식에는 그게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뚜벅기부에 담아내고자 했던 거랑 같아요.
258일 간의 도보 배달, 747km를 걸어 만든 변화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걸으신건가요? 최근 기부한 곳도 궁금해요.
1,860건의 배달 업무를 수행하면서 747.7km를 걸었어요. 정확하게는 픽업지(음식점, B마트 등)에서 전달지(배달 장소)까지 걸은 거리를 의미하는데요. 제가 콜을 잡아서 픽업지까지 가는 거리는 포함이 안 되어있습니다. 인스타그램 게시글 아래 #이동거리보다훨씬더걸어요 라고 쓰는 이유예요. (배달 라이더가 배달 플랫폼에 픽업수당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3년 3월 배달비는 강원도 강릉 산불대피소에서 ‘방과 후 어린이쉼터’를 운영했던 더프라미스에 기부했어요. 그 금액까지 합치면 5,701,835원이고요. 2023년 4월에는 총 81건을 배달했고, 237,695원을 모았는데요. 기부 단체는 아직 고민 중이에요.
뚜벅기부 인스타그램 계정을 활발히 운영하고 계신데요. 받은 메시지 혹은 활동 중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얼마전 저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신 분이 메시지를 보내셨더라고요. ‘비영리단체에 대한 불신을 핑계로 기부를 미루고 있었는데 자극이 되었다’면서 뚜벅기부의 선정 기준과 방법이 궁금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고민의 흔적을 찾는 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홈페이지에 올라온 정보를 생각보다 꼼꼼하게 살펴보거든요. 개인정보처리방침까지도 눌러봐요. 사업 범위, 운영 방식, 뉴스레터, 연례보고서 인사말, 새해 인사, 행사 공지 게시글, 구성원 인사말에서 심지어 이모티콘 하나에도 고민의 흔적들을 느끼면서 어떤 곳인지 파악합니다.
647㎞ 걸어서 배달, 538만원 벌어…남한테 다 쓴 사람[인류애 충전소] – 머니투데이
기사 댓글을 보면 좋은 비영리단체를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말씀들도 하시고, ‘뚜벅기부 리스트’를 저장했다는 분도 계시거든요. 그렇게까지 표현해주시는 것들이 감사하죠. 한편으로는 걱정도 돼요. 흔히 메이저라고 불리는 대형 비영리단체를 선택하지 않은 건 좋지 않아서가 아니거든요. 우선순위가 향하는 방향이 달랐던 거죠. 기부단체를 선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다른 게 당연한 거고요. 제가 소개했던 단체들 말고도 좋은 비영리단체들은 정말 많이 있어요. 그래서 관심 있는 분야의 비영리단체들을 살펴보시면서 고민의 흔적들을 찾아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인스타그램에서 단체나 활동을 소개해주신 장문의 글을 읽다보면 비영리단체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으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단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접하면서 왜 해결이 안 되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어떨지, 저렇게 하면 어떨지 생각하고 상상도 해보고, 기사나 논문도 찾아봤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제 생각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것저것 찾다 보면 참 신기해요. 사회문제를 먼저 주목하고 앞장서서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리고 단체들이 정말 많아요.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이요. 이런 분들을 고민을 엿보면서 시선을 배우고, 단체들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방법을 알아가는 거에요. 공부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먼저 고민했던 시간과 움직였던 모습을 통해 저는 편하게 배우고 있는 거에요. 하나둘 배우면서 시선이 넓혀지고 사고가 깊어짐을 느껴요. 이런 시선과 사고가 쌓이고 쌓이면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
뚜벅기부를 시작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장애 관련 모금, 배분 기관에서 비영리활동가로 일했어요. 비영리단체는 예산이든, 인력이든 자원은 언제나 부족한 것을 경험했죠. 그런데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신기할 정도로 부족한 자원을 채워주기 위해 마음을 내어주시는 좋은 사람들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좋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있지만요. 그런 분들이 계셔서 만들어내고자 했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사람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더 많은지, 나쁜 사람이 더 많은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변화를 만들고자 하면 함께 해주시는 좋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만은 확실히 갖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을 믿고 삶 속에서도, 일 속에서도 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후후레터를 만들면서 저도 재찬 님처럼 소중한 돈 혹은 시간, 재능을 타인과 나누는 좋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활동가로 일하며 기부의 가치를 느낀 순간이 있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꺾일 일도 생기지 않잖아요. 꺾이는 마음은 무엇이든 해보려는 사람들의 것이죠. 기꺼이 꺾이고도 계속하겠다는 마음이 모여 세상이 변하는 것 아닐까요?’
지난 4월에 발행된 후후레터 내용이잖아요. 모든 직장인들이 다 똑같겠지만, 비영리섹터에서는 보내는 시간 역시 언제나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지치고 힘들어서 마음이 꺾이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고요. 그런데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기부자 님들께서 보내주시는 응원들이 어떤 때는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또 어떤 때는 꺾여도 계속 하겠다는 마음을 주시는 거죠. 기부자님들 덕분에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부에서 다시 활동가로, 안전을 위해 뛰어봤습니다!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안전한 배달 문화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배달플랫폼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안전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배달라이더들의 아찔한 질주는 계속 이어지고 있고, 혐오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데요. 직접 플랫폼 노동을 경험해보니 배달라이더를 손가락질하고 욕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배달 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안전 배달을 돕는 사소한 포인트들을 살리면 어떨까 싶었어요. 인사, 물 한 잔, 간식 하나부터 안전운전 당부 메시지, 엘리베이터 앞까지 직접 나오셔서 받아주는 배려까지 다양한 형태의 응원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라이더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만드는 행동이었거든요. 라이더들이 자주 이용하시는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실제로 그랬고요. 배달도 결국 사람이 하는 거니까요. 작든 크든, 어떤 형태로든 마음이 오가는 것을 확인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눈 여겨 보던 아름다운재단 인스타그램에서 마침 시민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변화의물꼬’ 지원사업을 발견했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변화의물꼬’ 지원사업으로 어떤 활동을 진행하셨는지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요?
음료, 간식, 미니 랜턴 등이 담긴 온라인 설문조사 키트 100개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응원과 배려가 안전운전에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라이더들은 어떤 행동 변화를 보이는지 확인하고자 했어요. 실제로 20년 경력의 배달 라이더, 간식을 마련해 놓는 자영업자, 안전 배달을 요청 사항으로 남긴 고객을 만나면서 변화가 물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죠. 변화의물꼬 지원사업이 아니었으면 어디서도 지원받을 수 없었던, 할 수 없었던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변화의물꼬는 아름다운재단이었기에 가능했고요. 그래서 (저도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자이지만) 기부자님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기부자님들의 마음이 모여 이렇게 작지만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뚜벅기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나요?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활동도 함께 알려주세요.
네! 뚜벅기부는 계속 이어집니다. 뚜벅기부 활동과 연계해 비영리단체를 더 알릴 방법은 없는지, 비영리활동가들을 더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방법을 계속 고민 중이긴 해요. 떠오르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이 날 때마다 차근차근 하나씩 볼 생각이에요. 건강한 비영리 생태계를 위해 뚜벅기부가 함께 할 수 있는 혹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변화의물꼬 2단계도 준비하고 있어요. 변화의물꼬 1단계에 확인하고 검증했던 결과를 가지고 배달라이더, 자영업자, 고객을 연결하면서 ‘안전하고 건강한 배달문화’를 즐겁고 재밌게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변화는 서로 연결될 때 찾아 오니까요.
뚜벅기부 이재찬님이 기부한 25개 기부단체들✨
1) 아름다운재단 : 눈앞의 성과보다는 가치와 방향성을 지키는, 기부금보다는 기부자를 생각하는 아름다운재단스러움.
2) 에이팟코리아 : 잘 알려져 있지 않아도 고민의 깊이는 흔히 말하는 메이저 NGO단체들보다 깊음.
3) 곧장기부 : 1원도 빠짐없이 100%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경험을 기부자들에게 투명하게 제공.
4) 열린옷장 :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취업에 필요한 정장 등을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청년들에게 대여.
5) 어르신의안부를묻는우유배달 : 고독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작점이 ‘관심’이란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든 단체.
6)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수임료를 받지 않고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개선을 위한 공익법 활동 단체.
7) 동물자유연대 : 고양이 돌봄에 최적화된 고양이 전문 보호소인 동물자유연대의 제2온센터 건립 프로젝트.
8)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 수용자 자녀가 심리·사회적으로 건강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
9) 인권재단 사람 :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연대를 만들어나가는 곳, 그러한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를 지원하는 곳.
10) 한국심장재단 : 심장병 수술에 큰돈이 들어가도 포기할 부모는 없고, 37년간 이런 소중한 마음을 지켜주고 있다고.
11) 김용균재단 :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죽음. 자신과 같은 아픔 막고 싶어 용균이 어머니께서 아들 이름으로 출범시킨 재단.
12) 오늘은 : 문화예술을 통해 청년 문제 해결에 기여 하고자 하는, 온전히 20대를 위한 비영리기관.
13) 선한영향력가게 : 아동급식카드를 가진 아동에게 무료로 음식이나 서비스 등을 주는 자영업자들의 모임.
14) 푸르메재단 : 발달장애청년 38명이 방울토마토와 버섯을 재배하거나 포장하는 일을 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 받아.
15) 비투비 : 베이비박스에 버린 30%의 부모가 다시 아이를 찾아가는 모습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어 지원.
16) 아디 : 미얀마 등 아시아 분쟁지역에서 혐오와 차별, 폭력 등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
17) 꿀잠 : 상경투쟁을 올라온 비정규직 노동자나 해고노동자가 언제든지 편하게 와서 밥도 먹고, 잠도 자는 보금자리를 마련.
18)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 열악하고 잔혹한 방송 제작환경을 고발하고 숨진 이한빛 PD의 뜻을 이어가기 위하여.
19) 유스보이스 : 청소년들이 ‘나다움’을 찾고, 다양한 미디어로 나답게 표현하도록 지원.
20 온기 :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을 곳도, 걱정거리 들어줄 사람도 많지 않은 우리 사회. 편지로 공감 담아 연결.
21) 오늘의행동 : 특정한 사회문제보단, 그 문제 속에 있는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 집중.
22) 지리산이음 : 지리산권 곳곳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공익 활동과 주민 커뮤니티 활동을 다양하게 지원.
23) 라이더유니온 : 대한민국 최초의 배달라이더 노동조합. 사고를 당한 배달라이더의 수리비를 지원.
24) 띵동 :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할 곳조차 부재해 ‘없는 존재’처럼 사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국내 유일의 단체.
25) 더프라미스: 긴급구호도 최소 생활 지원을 넘어 일상의 복지로 나아가야 함을 전달. 강릉 산불 현장 임시 대피소에서는 ‘방과 후 어린이 쉼터’를 운영.
김충태
노고에 감사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생활을 위한 일도 걱정과 두려움으로 도전을 주저하는데, 타인을 위한 행동을 칭찬합니다. 무한 감동과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