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비건이 아니어도 괜찮아, 츄라이-비건!

Q. ‘비건먼지’팀이 만들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궁금해요. 어떤 채널인지, 또 어떤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도 알려주세요.

비건 및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채식과 동물권, 환경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채널이에요. 대표 시리즈인 ‘츄라이-비건’ 시리즈의 경우 비거니즘을 알리고 비거니즘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두어 이를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팁과 정확한 생활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건박사’는 채식뿐 아니라, (축산업과 마찬가지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일회용품 사용에 반대하고 제로 웨이스트, 에코라이프를 제안하며 이를 위한 쉽고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요. ‘비건먼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동물해방이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 채널과 콘텐츠가 할 수 있는 ‘비건 가시화’와 ‘비거니즘 논의 가시화’를 해나가는 것이 비건먼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츄라이-비건’ 영상에서도 나오는 말처럼, ‘한 명의 백 걸음보다 백 명의 한 걸음’을 위해 영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완벽한 비건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비거니즘을 이해하고 비건 지향을 시작할 수 있도록 계속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려 하고요.

https://youtu.be/v4z3Bps3cmE

Q. 비건을 알리는 여러 채널 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활동을 시작하게 배경도 궁금합니다.

‘비건먼지’ 팀은 지금은 해체한 ‘비건페미니스트 네트워크’에서 만난 친구들이 모여있어요. 2019년 말 취미나 활동을 함께 할 소모임 제도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첫 소모임 관련 회의에서 다양한 모임 아이디어와 함께 ‘영상 모임’ 이야기가 나왔어요. 당시 모두가 동의한 게 ‘다큐멘터리 형식’의 유튜브 채널이었어요. 대중을 상대로 비거니즘을 알리고, 궁극적으로는 비건의 대중화와 보편화를 위한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죠. 현재는 7명이 상시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영상 모임에서 나이와 직업과 상관없이 모두 수평어를 쓰고, 활동명(본명 또는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로의 나이와 직업을 몰랐어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직업과 직무에 대해 알게 되었죠. 알고 보니, 모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비거니즘이나 페미니즘 활동가 뿐만 아니라, 직장인, 학생, 연구원, 예술가 등 여러 분야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 영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비건먼지’ 유튜브 촬영 현장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운동의 층위가 필요하다’

Q. 운영진들이 직접 유튜브에 출연하기도 하잖아요. 아무래도 얼굴을 드러내다보니 여러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비거니즘에 대해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데, 그 얼굴이 다양하고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엄청 멋진 예술가, 연예인들만 하는 게 아니라, 당신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 직장인, 저 학생, 길을 걷는 익명의 사람도 비건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누구나 비건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해요. 화려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주 평범하고 수수하게 다니는 사람이든, 활동가든 직장인이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비거니즘을 이야기하자, 이런 맥락 안에서 모두 용기냈던 것 같습니다.

보틀팩토리에 방문한 ‘비건먼지’ 팀원들

Q. 현재 영상에 참여하는 분들이 대부분 20대에 활동을 시작하셨을 것 같습니다. 활동을 결심하게 된 경로도 기존의 활동가들과 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비건먼지’ 팀의 초기 멤버들은 대체로 저와 같은 90년대 중후반 출생 팀원들이 많은데요. 후기 청소년이거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의 조합입니다. 활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운동의 층위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 것 같아요. 직접 행동부터 일상 속 비건맛집 추천까지 다양한 활동이 있겠지만 ‘비거니즘 미디어 활동’을 통해 운동의 종류를 다변화시키고 싶었어요.

Q. 비건을 시작한 이전과 이후의 먹고, 만나고,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주요한 변화들을 알려주신다면요?

제 본업은 마케터였고 전에는 옷가게 알바도 오래 하고 의류 쇼핑몰도 잠깐 했었어요. 새로운 물건을 소비하는 즐거움을 누리던 사람이었죠. 근데 비건이 되고 나서 1년이 안 되어 ‘새 물건 안 사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먹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비건, 크루얼티 프리, 빈티지로 사용하고자 노력하게 되었고요. 먹고 마시던 것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 역시 어디에서 왔고 버려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일상 속에서 폭력과 착취에 훨씬 민감해진 것도 있어요. 언어와 문화, 길을 지나가면 보이는 수많은 가게들을 보면서 동물착취가 일상이 된 세상을 보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서요. 비건을 하고 나서 초반기에는 이런 기분에 휩싸여 길을 걷다가 우울해지거나 화가 나는 날들도 많았어요. 지금은 마음이 많이 단단해져서 그때만큼 감정소모가 크지 않지만, 이 구조가 폭력과 착취의 구조임은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어요. 모든 동물의 해방을 꿈꾼다는 건, 비인간 동물 뿐 아니라,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 등 인간동물의 해방을 함께 꿈꾼다는 뜻이기도 해서, 스스로 비건이라고 정체화한 순간부터 감수성의 기준이 더 깊어지고 예민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비건먼지’ 팀 장은나 활동가

‘가능주의자’들의 활동 반경만큼 다른 세상이 열린다.

Q.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을 통해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하시게 되었어요. 후기청소년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전한다고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비건먼지’ 팀은 비건이라는 말을 대중들의 인식으로 끌어올린 주체가 당시에 활동했던 후기 청소년이라고 보고 있어요. 다른 활동 지형과 달리 비건 운동은 20대 초반 후기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라는 특징에 주목하여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죠. ‘젠더, 장애, 성소수자, 환경 등 다양한 의제에 연대하고 있으면서도 왜 비거니즘을 제일 선두에 세워 활동을 하고 있을까?’, ‘왜 비건이 되는 게 그 모든 사회 문제들 중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질문해 보려 합니다. 현재 사전 인터뷰를 통해 약 5년 사이에 일어난 비건운동, 동물권 관련 활동가들을 만나 비거니즘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어요. 활발히 진행 중인 운동이라 과정과 흐름을 한번 정리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후기청소년: ‘청소년 기본법’에 따르면 만 9~24세 이하를 청소년으로 분류, 19~24세의 청소년을 후기청소년으로 분류

Q. 영상 가제가 ‘가능주의자’인데 어떤 의미가 담긴 말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가능주의자> 나희덕 시인의 시에서 빌려온 말인데요. 산업체계와 자본에 가리고 감춰져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곡해하는 상황에서도 비건이 먼저 본 동물권, 제로웨이스트 등을 실천하고 알리면서 ‘가능’하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름 붙인 말이에요. ‘가능주의자’들은 기존 국내 동물권 운동에 동참하지 않아요. 한국의 운동 지형에 의문을 품고 해외의 비거니즘 운동을 차용하기도 합니다. 후원자의 부재와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우선은 운동을 하고, 대학에서 동물권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고, 단체를 만들었다 헤치기를 반복하다 돼지를 구출하기도 합니다. 당장 돼지를 먹여살릴 정기적인 수입이 없으면 포기하거나 와해될만도 한데,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 냅니다. 닭들의 삶을 1초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콘크리트에 결박해 바닥에 13시간을 누워있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요.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기후위기 시대에 동물과의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동물과 지구를 위해 독자적으로 한국의 비건 운동 지형을 만들어낸 ‘가능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해요. 비거니즘을 바탕으로 실행해온 운동과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변화,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앞으로 동물과 함께하는 미래에 대해 그려보고자 합니다.

“다정하고 무해해지려는 노력이 나아갈 힘을 주니까요.”

Q. 비건먼지 유튜브 하단에 보면 채널 후원에 여러 분들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더라고요. 어떤 분들이 주로 후원을 하고 있는지, 또 후원자를 더 모을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작비 곳간이 텅 비어갈 때마다, 운영진의 생일 때마다 후원자와 후원금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제작 주기가 안정화되면, 멤버십 제도 도입도 고려하고 있어요. 후원금 뿐만 아니라, 제작비 충당 및 안정적인 제작 환경 구축을 위한 수익화 프로젝트도 계속 준비 중입니다. 이런 제작 지원 사업에 활발히 지원하고, 또 비건 친화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제작 지원금을 받는 방법도 계속 시도 중입니다.

Q. ‘비건먼지’ 팀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시민들의 힘 이외에도 필요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요. 지금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커뮤니티예요. 지구,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삶을 생각한다면 모두가 비건이 되는 방향만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파이는 점점 커지고, 확장될텐데 그 사이에는 갈등과 부침도 존재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건먼지 크루들과 같이 의견을 내고 대화하면서 아이디어를 쌓아가고,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힘을 얻어요. 크루 한 명 한 명이 에너지와 영향력을 가지고 비건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비건먼지는 점점 더 뭉치고 더 커질 수 있을 거예요. 먼지만큼 작아보이지만 또 먼지만큼 잘 뭉치고 더 커질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요.

Q. 비건의 삶은 ‘사랑’과 ‘평등’이라는 가치와 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랑’과 ‘평등’이란 가치에서 점점 멀어지는 한국에서 비건으로 산다는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부침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이겨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혼자 한다면,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 함께 하기 때문에 해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부침이 있을 때면, 다른 비건 친구들과 만나고 연결되면서 힘을 받는 것 같습니다. 관계와 공동체 안에서 안전함과 평화로움을 느껴요. 그 안에서 사랑과 평등이라는 가치를 되새기며, 서로에게 더 다정하고 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비건먼지를 통해 연결되는 모든 분들과의 인연을 생각하다보면, 힘든 일을 이겨낼 힘이 생기곤 합니다.

사진제공: 비건먼지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