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물꼬 지원사업은 시민들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를 스스로 탐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4 변화의물꼬 지원사업 1단계인 ‘물꼬트기’에서는 총 16개 프로젝트를 지원하였으며, 그 중 7개 프로젝트는 2단계인 ‘항해하기’에서 연속 지원을 받았습니다. 1년 동안 ‘물꼬트기’와 ‘항해하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7개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다양한 사람들의 편의를 배려하는 도시, 그럼 공공 벤치는?
오늘날 도시는 아무런 장애가 없는 건장한 성인을 기준으로 계획되고 이해됩니다. 그러나 도시 안에는 어린이, 거동이 어려운 노인, 신체적·정신적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의 편의를 배려하고 있나요? 도시 공간의 구조와 이를 보충하는 다양한 시설물은 도시를 사용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추구합니다.
공공 벤치도 같은 목적으로 설치되며 덕분에 우리는 길에서 머물거나 쉼이 필요할 때 벤치에 앉을 수 있습니다. 거리에 설치된 벤치는 익숙한 시설물이지만, 우리가 공공 벤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공공 벤치가 왜 설치되며, 누가 어디에 설치하는지, 또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당연히 도시 공간에 필요한 벤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논의되지 않은 채 벤치는 관행적으로 설치되고, 간혹 통행 장애물로 여겨 철수되기까지 합니다.
저 역시 도시 공간을 주제로 작업하면서도 이러한 질문에 천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마주친 할머니 한 분을 통해 <우리동네 우리벤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공공 벤치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접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공공 벤치는 왜 필요할까?
제가 발견한 공공 벤치의 존재 이유는 보행 약자들의 이동과 주민 간 교류에 있습니다. 전자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 필요에 대한 문제이고, 후자는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사회적 필요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공 벤치는 현재 도시 계획 내에서 받는 처우에 비해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사람 중심의 도시를 위해 벤치에 대한 논의와 시도가 더욱 다양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동네 우리벤치> 프로젝트는 산업디자인의 시각으로 형태와 소재 등 외형에 주목한 공공 벤치 프로젝트와 달리 주민들의 필요에 적합한 벤치를 만들기 위해 벤치가 설치되는 장소에 주목했습니다. 동네에 이미 설치된 벤치를 조사하고, 동네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또 그들과 직접 소통하며 어디에 어떤 벤치를 놓으면 좋을지 탐색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결과,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진 ‘어르신 의자’는 형태보다는 그것이 설치되는 장소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언덕길 전봇대에 설치된 ‘어르신 의자’가 다른 곳에 놓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같은 의자가 아닐 것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설치 중인 어르신 의자

벤치 설치가 필요한 위치에 지역민들이 직접 표시하는 ‘벤치마킹지도’
공공이 설치한 벤치가 아닌, 공공을 ‘위한’ 벤치
이와 함께 프로젝트를 통해 도출된 또 다른 결과물은 ‘벤치마킹지도’입니다. 공공 벤치 설치가 필요한 위치에 지역민들이 직접 표시하는 지도를 제작한 건데요. 동네에 놓인 벤치에 주목한 것은 공공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민간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벤치들에 공공성을 부여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공공이 설치한 벤치가 아닌 공공을 위한 벤치로 공공 벤치의 개념을 확장하기 위함입니다. 동네의 모든 벤치 정보를 정리한 ‘벤치마킹지도’를 통해 주민들이 무심코 지나치던 벤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나아가 지도가 지역 내에 널리 배포되어 보행 약자가 길을 나설 때 앉아 쉬어갈 수 있는 경로를 선택하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처음 공공 벤치에 의문을 가졌을 때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론에 이르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난 사람들 덕분에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순항하며 스스로 나아갔습니다. 프로젝트를 이끈 것은 제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돌이켜보면 사람을 위한 프로젝트이기에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을 빼놓고 사람을 위한 결과를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요.
개인에서부터 거리로, 또 거리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도시로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를 만드는 과정을 돌아보면 커다란 단위에서 시작해 점차 작은 단위로 나아가는 방향성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도 결국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합인데, 우리의 도시는 그 사람들을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획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 개인에서부터 거리로, 또 거리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도시로 나아가는 접근법을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작은 곳에서 만드는 도시는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도시 곳곳의 작은 곳에서 작은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생겨나 서로를 지지하고 확장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 추민아
사진 / 추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