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 vol.34 사육곰편 인터뷰 전문입니다.
vol.34 “42년만의 자유… 근데 어디로 가지?”🐻
동물권행동 카라 최인수 활동가가 이야기하는 곰들의 변화
최인수 활동가는 ‘미련곰탱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아요. 직접 곰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돌보면서 곰들은 예민하고 섬세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아픈 곰들에게 약을 먹이려고 마시멜로우에 숨겨서 주곤 했는데 쓴 맛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앞발로 약을 긁어내고 먹더래요.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인 곰들이 4평 남짓 철창 안에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합니다. 법 개정은 이제 시작일뿐, 더 나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 최인수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동물권행동 카라 최인수 활동가
수천 수만의 곰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산업, 법 통과가 기쁘기는 한데…
Q. 2023년 12월 20일, 사육곰 사육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어떤 활동을 이어오셨나요?
A. 처음에는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아니라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이었어요. 당시 줄기차게 국회를 드나들며 법안을 심사할 의원들을 설득했었죠. 기자회견을 열어 통과 필요성을 호소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국회 내에서 여러 법리적인 판단과 의견에 따라 특별법을 새롭게 만들지 않고 야생생물법 조항으로 녹여내야 한다는 안건이 대두되었어요.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의원과의 면담, 동반 기자회견 등을 통해 필요성을 호소하고, 국회를 드나들며 설득을 하고 캠페인을 이어나갔습니다. 동물 보호 법안들이 통과를 목전에 두고도 난관에 봉착하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차일피일 논의가 미뤄지거나 결국은 통과가 되지 못한 경험을 여러 차례 해왔기에 조바심을 내며 많은 주의와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특별법이 발의된지 1년 7개월, 야생생물법 개정안으로 다시 발의가 된 지 7개월 만에 마침내 국회에서 법이 통과가 되었습니다. 사육곰 종식의 첫 단추가 비로소 꿰어진 셈이죠.
Q. 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노력을 기울여오셨던만큼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A. 수천수만의 곰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산업이 공식적으로 끝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생각에 걱정도 많은 요즘입니다. 산업의 끝이 선언되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유예기간이 주어졌고, 그 유예기간 동안에는 여전히 웅담을 위해 곰을 도축할 수 있습니다. 곰들이 도축되기 전에 최대한 많이 구해내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 예상돼요.
Q. 안타깝게도 개정안 통과 이틀전 충남에서 사육곰이 사살됐습니다. 실제 곰 농장의 사육환경은 어떤가요?
A. 방문했던 농장들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들어오는 햇빛이라고는 노후된 슬레이트 지붕 틈새로 들어오는 것이 유일했고, 밤보다 낮이 더 어두워보였어요. 바닥을 공중으로 띄워놓은 비좁은 뜬장이 줄지어 서 있었고요. 거의 모든 곰들이 그 안에서 머리를 양 옆으로 쉬지 않고 흔들거나 제자리를 왔다갔다 맴돌기만 하는 등 단체로 극심한 정형행동을 하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는 끔찍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나마 햇빛이 들고 콘크리트 바닥인 농장은 양반인 수준이었죠. 곰들의 탈출 역시 대부분 농장의 부주의 혹은 노후된 시설로 잠금장치 등이 고장나서 벌어진 일입니다. 사람에게 끼칠 잠재적 위협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사살되는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천에서 구조한 곰 15마리의 곁에 시민들이 모여들다
Q. 실제로 화천 사육곰 농장에서 곰들을 구조하셨는데요. 구조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A. 2년 전 카라와 사육곰 구조단체인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힘을 합쳐 화천의 곰 농장에 있던 15마리를 구조했는데요. 화천 곰 농장주께서 건강도 안좋아지고 있고, 사육곰들을 도축하는 것이 싫어서 먼저 구조 요청을 해오시면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여건이 되는대로 기존의 농장 시설을 임대해 보호하다가 이후 곰들이 거닐 수 있는 방사장을 추가로 조성했습니다. 화천에 상주하며 곰들을 돌보는 상근 활동가분들이 생기게 되었고, 매일 곰들을 돌보며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조정과 개선을 거듭하며 경험을 쌓아온 것 같습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 야생동물 수의사님도 계셨기에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끊임 없이 토론하고 시도해보며 실질적인 곰들의 복지를 개선해나갔어요.
Q. 시민들과 함께 곰들을 위한 ‘다똑같곰’ 프로젝트도 진행하셨는데요. 프로젝트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사육곰 종식을 위한 민관협의체에 들어가 있는 4개 단체에서 법 통과 이후 남은 사육곰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단체들의 활동과 연계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똑같곰’(사육곰도 다 똑같은 곰이다)으로 준비해 순차적으로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카라와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함께 준비한건 사육곰 보호시설 견학 프로그램이었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였음에도 사육곰 문제와 야생동물 보호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께서 자발적으로 화천까지 걸음해주셨습니다. 곰 보호시설과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 국내 사육곰 산업의 경과와 문제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고, 곰들에게 제공할 행동풍부화 물품들을 함께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곰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진심을 다해 열심히 만들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감동받았습니다. 저희같은 활동가 이외에도 사육곰과 야생동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진심인 분들이 계셔서 너무나도 든든했고요.
Q. 곰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보니 처음 곰을 마주하셨을 때와 지금의 생각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A. 직접 곰을 구조하고 돌봄에 참여하면서 미디어에 의해 완전히 왜곡된 이미지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곰이라는 동물이 덩치는 크고, 동작은 느릿하다는 이미지가 보편적인 것 같아요. 아둔하고 미련한 이들에게 ‘미련 곰탱이’라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곰들은 충분히 빠르고요. 굉장히 예민한 동물입니다. 오랜 시간 갇혀 살아온 늙은 곰들을 많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약을 먹이기도 했는데, 쓴맛이 나는 알약을 먹으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마시멜로나 사과 같은 달콤한 음식에 잘 숨겨 넣고 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 있는 알약을 긁어낸 뒤 마시멜로만 먹더라고요. 곰들마다 모두 성격이 다르고, 다른 곰들과의 사이도 저마다 다르며 좋아하는 음식도 모두 다릅니다.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동물인만큼 지금 전국의 사육곰 농장에 갇혀 사는 곰들도 그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기도 합니다.
곰숲 조성 그 이후, 털이 듬성듬성 빠진 야윈 곰들에게 생긴 변화
Q. 화천에 곰숲을 조성해서 곰들이 더 넓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데요. 곰들에게 일어난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곰숲 조성 배경과 곰들에게는 일어난 변화를 들려주세요.
A. 우리가 목표하는 완전한 생츄어리의 형태가 갖춰지기까지는 현실의 벽이 높았던 상황에서 곰들이 거닐 수 있는 방사장 ‘곰숲’을 먼저 짓기로 의견을 모았어요. 곰숲에서 산책하는 시간에도 익숙해진 곰들은 곰숲을 거닐며 활동가들이 곳곳에 숨겨둔 맛있는 먹이도 찾아 먹고, 때로는 고개들어 주변의 냄새와 소리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처음 구조했을 때 잘 못 먹어서 마르고, 피부병으로 털이 듬성듬성 빠져있는 등 사실상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삶을 연명하고 있었던 곰들은 어느새 살이 오르고 털이 풍성해졌습니다. 먹이를 접해보며 좋아하고 싫어하는게 생기는 등 놀라운 변화를 보여줬고요. 곰숲에서 곰다운 행동들을 하며 점점 안정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Q. 구조해서 보호하고 있던 곰들이 나이가 들면서 아프거나 죽다보니 심적으로 힘드셨을 것 같아요. 곰들은 주로 어떤 질환을 겪게 되는지, 또 어떻게 돌보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A. 사육곰과 같이 인위적인 사육 환경에서의 곰은 야생에서의 평균 수명보다 대체로 긴 세월을 살게되지만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곰들을 돌보며 느끼고 있습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곰이라면 쉽게 관찰되지 않았을 노령에 따른 근골격계 질환은 긴 세월 철장 속에서 삶을 연명한 사육곰들에게는 비교적 흔하게 발생하는 노환입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경과가 좋을 확률이 적고, 수술을 하지 않고 계속 먹이를 챙겨주며 삶을 이어나도록 도와도 척추 디스크와 같은 질환이 악화돼 하반신을 완전히 못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정해진 수순이고요. 야생에서보다 이미 오랜 시간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저희 곰들 역시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Q. 야생성을 잃은 사육곰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기 어려운만큼 생츄어리를 건립해 보호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생츄어리의 필요성과 건립계획에 대해 전해주세요.
A. 동물원, 야생동물을 이용한 다양한 산업, 무분별한 개인 사육 등으로 인간에 의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생츄어리는 동물을 단순히 보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의 습성, 개체별 특성을 고려해 동물이 왜 여기에 와있는가를 다같이 마음에 새기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시설입니다. 화천에 조성한 사육곰 보호시설은 완전한 형태가 아닙니다. 시설과 인프라를 갖춰 더 많은 곰들을 보호하고,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계속 마련해야하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저희는 계속 곰들을 잘 돌볼 궁리를 하며 열심히 활동하려 해요.
가늠할수 없는 감금이란 고통, 남은 여생은 ‘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Q. 동물권 활동을 결심하신 배경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활동가의 삶에서 기쁨과 슬픔은 무엇일지도 궁금합니다.
A. 저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그 이후로는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디자인에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고,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동안 동물과 교감하고 감정을 나눈다는게 무엇인지 깨달은 후부터 동물이라는 존재가 달리 보이더라고요. 사회에서 인간에 의해 고통을 겪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들도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강제로 사회에 편입되어 착취당하고 있는 동물들 역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겨지더라고요. 가장 약자인 동물을 보호하는 가장 직관적인 일을 선택한 것이 동물권 활동입니다. 활동가의 삶로서의 기쁨은 법, 정책이 제·개정되어 현실이 바뀌었을 때, 참혹한 현장에서 단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고통 속에서 구해냈을 때입니다. 슬플 때는 그 반대인 것 같아요. 법, 정책의 제·개정이 기약 없이 늘어지거나 아예 무산되었을 때와 구하지 못한 동물이 있을 떄죠. ‘~할 수 있다.’로 끝나는 법률 조항이 ‘~해야 한다.’로 바뀌기만 해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그만큼 많은 동물들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입법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하며 절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Q. 사육곰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은 시민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또 이 활동이 활동가들과 곰에게 어떤 힘이 될까요?
A.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관심 끝에 보양 산업을 위한 곰 사육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법이 개정되었고, 이제 유예 기간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곰 사육은 사라질지언정, 여전히 고통받던 곰들은 남아있습니다. 현재 전국의 사육곰 농장에는 4평 남짓 철장에 갇혀 10~20여년 가량을 살아온 곰들이 많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한 번 돌아봤습니다. 10년, 20년간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추억이 생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득합니다. 제가 수많은 추억을 쌓는 동안 곰들은 줄곧 철장에 앉아 벽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10분만 앉아 있어봐도 무료함이 밀려오는데…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온 곰들의 여생을 ‘사육곰’이 아닌 ‘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하고, 마침내 행동으로 옮길 때가 왔습니다. 사육곰의 고통은 아직 현재 진행 중입니다. 많은 분들이 남은 곰들에게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주시는 것이야말로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사진 : 동물권행동 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