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손자영 열여덟 어른>은 그간 미디어에서 전형적으로 그려져온 ‘고아’ 캐릭터에 대한 당사자와 대중의 메시지를 담아, 미디어 생산자에게 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책입니다. 그간 ‘고아’ 캐릭터는 악인 혹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캔디 등으로 그려져왔는데요.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인 손자영 캠페이너는 ‘고아’ 캐릭터에 담긴 편견을 알리며 지난 4년 간 ‘미디어 인식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습니다. 이번에 펴낸 책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최종 목적지는 ‘미디어 관계자’에게 닿는 것이었습니다. 책은 단지 프로젝트의 여정을 담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와 대중의 목소리를 모으고, 변화를 일으키고, 또 다시 목소리를 모으는 반복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책이 나온 순간, 다시 대중과 만났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많은 분들이 미디어 프로젝트 메시지에 공감했고, 미디어 관계자에게 전할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드디어, 미디어 제작사에게 책을 전달할 때가 되었습니다. ‘미디어 인식개선 프로젝트’의 마지막 종착지, 미디어 관계자들을 만나러 갑니다. |
영화, 드라마 제작사에 책 <나 손자영 열여덟 어른> 책을 보내다
8월, 150여 곳의 영화/드라마 제작사와 엔터테인먼트사에 책 <나 손자영 열여덟 어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드라마 제작사를 직접 만났습니다. 단지 ‘고아의 공식을 멈춰주세요’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 찾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디어 생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그럼에도 ‘고아의 공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국내 오랜 역사를 지닌, 다수의 작품을 배출해 낸 드라마 제작사 JS픽쳐스를 직접 방문해, 드라마 제작자에게 책을 전달하며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는 드라마 기획 이사님과 드라마 작가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손자영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 드라마 제작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Q. 손자영 프로젝트 : ‘고아의 공식’은 왜 계속해서 사용되는 걸까요?
A. 드라마 제작자 : 음, 아무래도 이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결핍’이라는 명분을 빠르게 만들기 위해, ‘고아의 공식’이라는 쉬운 장치를 사용하는 거죠. 결핍을 이야기 하려면 복잡다단한 설명이 필요한데, 기존에 고착화된 ‘고아’의 이미지가 있으니 이러한 설정을 붙이면 인물의 결핍이 쉽게 이해되거든요. 어떤 인물이나, 캐릭터에는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걸 설명하는 절차를 축약하는 셈이죠. 특히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에 ‘고아’ 설정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Q. 손자영 프로젝트 : 최근에는 시청자도 ‘고아 캐릭터’ 설정에 불편함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A. 드라마 제작자 : 시청자의 감수성과 예민함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만드는 저희 역시, 더 예민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민함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문제의식을 더욱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청자의 감수성이 높아지고 다양한 의견이 요구됨에 따라, 제작자의 의견을 표명해야 하는 순간들이 더욱 많아질 테니까요. 드라마를 쓰고 제작하는 저희 역시 더욱 신중해져야 하는 것 같아요.
Q. 손자영 프로젝트 : 왜 그동안 ‘자립준비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A. 드라마 제작자 : 아무래도 제작사 입장에서는 편성을 받는 숙제가 있어요. 대중성 즉, 시청률까지 고려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재미나 자극적인 소재가 좀 더 주목을 받는 편인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때로는 의미있는 드라마를 만들 때도 있어요. 이런 것이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를 만드는 이들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Q. 손자영 프로젝트 : 향후 자립준비청년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어떻게 만들고 싶으세요?
A. 드라마 제작자: 살아온 삶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보고 싶어요. 요즘은 예전만큼 물질적인 부족만이 결핍의 전부는 아닐 것 같아요. 또래와 비슷한 삶을 살면서도, 시설보호아동이나 자립준비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이 보여지는 순간이 어떤 부분인지,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 이들이 살아가는 ‘청춘’의 모습 그대로를 그려내고 싶어요. 이들을 ‘고아 캐릭터’가 아니라 ‘청춘’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시작하고 싶어요. 이들의 삶 자체가 매력적으로 보이고, 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면 어떨까요.(웃음)
Q. 손자영 프로젝트 : <나 손자영 열여덟 어른>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A. 드라마 제작자: ‘나에게도 편견이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저희 드라마 제작사는 기본적으로 ‘사람 이야기’에 집중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의 근본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데, 다양한 PD/작가 등 창작자 개별의 색깔이 모인 곳이다 보니, 다양한 색깔의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때때로 착하거나 좋은 작품이 나올 때도, 다소 아쉬운 작품이 나올 때도 있어요. 결국 창작을 하는 분들의 생각과 시선이 달라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사를 쓰고, 상황을 연출하는 등에서 미디어의 선입견이 드러날 테니까요. 저희도 앞으로 미디어 밖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자립준비청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드라마를 더욱 섬세한 시선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열여덟 어른 손자영 캠페이너가, 미디어 생산자에게 전하는 편지
길고 긴 4년 간의 <미디어 인식개선 프로젝트>의 마지막 종착지에 닿았습니다. 바로, 미디어 관계자 분들입니다. 미디어를 생산하는 이들이 ‘미디어 밖 살아가는 자립준비청년’이 존재함을 기억하고, 더 이상 ‘고아 캐릭터’가 아닌 오늘도 보통의 청춘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자립준비청년’의 캐릭터를 만들어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