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의 어린 시절
나는 돌이 갓 지난 후 보육원에 들어왔다.
내 이름은 손자영이다.
보육원에서 나의 첫 기억은 4살 쯤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언니들을 따라
보육원의 규칙을 배우던 기억이 난다.
보육원에서 우리를 돌봐주던 양육자를 엄마라고 불렀다.
나의 엄마는 여러 명이었고
서서히 남과는 다른 엄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공동생활에서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공부였다.
그 결과, 보육원 밖에 있는 학원에 다닐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다름을 알게 되는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학원에는 같은 보육원 친구들이 있었고
우리끼리는 서로를 모른 척하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신발, 같은 옷, 같은 도시락,
심지어 똑같은 반찬까지..
보육원 아이들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너 언덕 위의 큰 집에 산다며?
거기는 엄마 아빠 없는 애들이 사는 곳인데.."
아이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놀렸다.
나는 보육원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생애 처음 차별과 편견을 경험했다.
Chapter 2.
보육원을 퇴소하는 날
2014년 8월 4일,
19년을 산 보육원을 나왔다.
"자영이가 먹고 싶은 거 마음껏 골라."
보육원을 나와 선생님과 들른 식당에서
처음으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킬 수 있었다.
앞으로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이제 정말 혼자라는 것이 실감나 목이 메어왔다.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보육원 밖의 세상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부모 없이 자란 애가 그렇지 뭐."
첫 회사 생활은 실수투성이었고,
내 실수에는 항상 '부모가 없어서'라는 이유가 붙었다.
그럴수록 나는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감춰야 했다.
Chapter 3.
열여덟 어른 자영의 꿈
TV 드라마 속 대사를 들을 때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심장이 털컥 내려 앉는다.
'근본도 없는 고아가 하는 일이 그렇지.'
잠깐 스쳐가는 장면의 짧은 대사일지라도
자립준비청년인 나에겐 모두 상처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미디어 속 자립준비청년은 동정과 편견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나는 미디어에 비친 자립준비청년의 모습이
실제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의 자립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매년 2,000여명의 열여덟 어른들이 세상에 나온다.
나는 이들의 자립이 움츠러들지 않길 바란다.
나는 열여덟 어른 손자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