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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자할머니 이야기 “어려서 부모를 잃고 못 배운 탓에 삶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만 같았어. 조금이라도 더 배웠더라면 그렇게 힘들게 살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 가난하고 부모없는 아이들이 배울 기회만이라도 갖도록 돕고 싶어. 근데 너무 작은 돈이라 부끄럽고 미안해” 2000년 8월, 아름다운재단 첫 기금출연자 김군자할머니가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합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한을 가슴에 오롯이 간직하며 살아온 할머니는 5천만원을 장학기금으로 기탁합니다. 그리고 2006년 8월, 김군자할머니는 가회동 이층집 아름다운재단에 다시 오셨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숨을 몰아쉬면서도 의연하게 가파른 계단을 오르신 할머니. 의자에 앉자마자 가쁜 숨을 돌리기도 전에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십니다. 처음 기부했던 금액과 꼭 같은 금액 5천만원을 다시 가져오신 것입니다. “내가 아무래도 마지막인 거 같아서, 차근차근 정리하려고 왔어. 돈 많은 양반들에겐 별거 아니겠지만, 나한텐 쉽지 않았어요. 옷이야 몸에 냄새나지 않을 정도만 갖추면 되는 거고, 먹고 자는 거야 몸 누일 곳이 있으니 됐고. 내가 다 궁리를 해서 준비해온 거야. 홀가분하고 인생의 짐을 또 하나 던 거 같으니까 잔소리하지 말아.” 아름다운재단 역사를 함께 만들어주신 김군자할머니, 목숨처럼 아껴온 재산을 나누기 위해 할머니가 찾은 곳도, 그리고 아름다운재단이 할머니를 맞이한 곳도 수송동 네거리의 아름다운재단, 가회동 이층집의 아름다운재단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웃을 위해 쓰여지는 귀한 돈이 모이고, 우리사회와 이웃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이 품은 나눔의 마음이 모이는 곳이 바로 아름다운재단의 공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재단의 공간을 <아름다운집>이라 불렀습니다. 아름다운집 이야기 아름다운재단은 계속 성장했지만 ‘공간’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아침 노트북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바닥에 흥건한 물로 소중한 배분서류들이 모두 젖어 있었습니다. 천장에서 새는 물과 지하에 자리잡은 사무실에 장마비가 밤새 들어차 귀한 자료들을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눈이 많이 온 지난 겨울에는 천막으로 지은 간이 창고가 폭삭 주저앉아 모금함이 모두 못 쓰게 되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매년 방수공사를 하지만 이곳 저곳 새는 곳이 많아 비용만 계속 들어가고 어쩔 수 없이 여름철에는 이곳 저곳에 물받이 대야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름다운 기부문화센터’로 불러주세요. 창립후 11년, 아름다운재단은 그 만큼의 성장을 거듭했지만, ‘공간’은 성장을 멈추었습니다.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지하셋방도, 온통 새까만 낡은 살림살이, 벽마다 눈물자국 같은 눅눅한 곰팡이, 풀석거리는 먼지 가득한 보잘것 없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불편해도 고치고, 견디면 그럭저럭 지낼만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재단은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보았습니다.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보는 꿈을 꾸고자 합니다. 더 많은 기부자들과 함께 마주보며 편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 함께 꾸어도 조금은 넉넉한 나눔창고를 꿈꿉니다,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와 나눔에 관한 책을 읽고, 편히 차 한잔 마시고 돌아갈 수 있고, 일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아닌 나누는 사람들의 ‘열린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공간을 꿈처럼, 희망처럼 기부자님들과 함께 나누고 키워보고자 합니다. – 2000년 8월 안국동 임시사무소 사무실 책상 서너개에서 출발하여, 수송동 동일빌딩 3층 사무실을 거쳐 – 2002년 1월 가회동 이층집(16-3) 지금의 공간으로 옮기고, – 2003년 6월 16-14 별관을 마련하여 두 집 살림시작 – 2011년 11월 현재까지 가회동 공간에서 수많은 변화들을 만들어왔습니다

이전하는 곳 : (110-035)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13-1 “아름다운 기부문화센터” 이전 날짜 : 2011년 11월 19일(토) 전화번호 : 02-766-1004(기존) / 02- 6930-4500(신규) 약도 – 지하철 : 3호선 경복궁역 2번출구에서 도보 800미터 – 버스 : 효자동정류장 7212, 1020, 1711, 7016, 7018, 7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