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16년 동안 지속해 온 아름다운재단의 ‘길 위의 희망찾기’(이하 ‘길희망’)는 아동청소년에게 국내외 여행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청소년의 자발적 활동을 지향하는 길희망은 ‘청소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행’이다. 청소년들이 주어진 틀에 맞춰 소비하는 관광객이 아니라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하는 주체적인 여행자이기를 소망한다. 공정여행 사회적기업 트래블러스맵(www.travelersmap.co.kr)과 사업을 진행하며 참여 청소년에게 전문적인 여행 기술을 제공하는 것도 그 맥락에서다.
6월 4일과 5일 공주한옥마을에서 진행된 열기캠프는 길희망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한 여행의 기술을 담고 있었다. ‘여행’이 어떻게 사진과 요리, 음악으로 만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간이다. ‘여행’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며 시연하고, 동료와의 유대를 쌓는 자유시간도 주어졌다. 자신의 욕구를 들여다보고 동료와 협의하며 만든 자신만의 여행을 더 생생하게 경험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만나는 자리. 열기캠프는 지난 3월부터 서류와 면접심사를 거쳐 ‘여행자’로 자리매김한 청소년들을 위한 작은 축제이자 본격적인 여행에 앞선 사전 여행이었다.
다른 시선으로 여행하기
열기캠프의 첫날, 전국 각지의 길희망 15개 단체는 공주한옥마을에 도착했다. 참여 청소년들은 고마아트센터 컨벤션홀에 모여 미(米행)청소년, 독도국, 내나라강원도, 평화의소녀상, 미운오리새끼 등 자신이 소속된 단체명 대신 개성 만점의 팀명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열기캠프의 하이라이트. 여행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여행의 기술’ 워크숍에 참여해서 사진과 음악, 요리를 배우는 시간을 보냈다.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라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글을 인용해 시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사진의 기술’ 워크숍 에선 평범한 휴대폰으로 어떻게 추억을 담아내는가에 집중했다. 사진 워크숍의 진행을 맡은 ‘기억발전소’는 새로운 시선으로 여행을 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청소년들과 나눴다.
사진으로 표현하고 단어로 기록하는 과정을 배운 60여명의 참여 청소년들은 나, 우리, 여행, 사진, 기록, 기억, 단어, 낱말, 시선이라는 단어를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냈다.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 원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국내 기획 부문의 ‘독도국’ 박재성 청소년은 “카메라를 통해 보면 일상이 달라진다. 액자 구성으로 들여다보면 깊이가 생기고 점프샷으로 찍으면 생동감이 생긴다. 가장 재밌는 건 원근감을 활용해 찍은 사진”이라고 이야기했다. 기술을 습득하니 감정을 더 생생하게 담을 수 있더라는 게 참여 청소년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공주한옥마을 인근과 무령왕릉, 공산성을 돌며 짧게나마 실전도 가졌다. 시선의 재발견이란 제목 아래서 참여 청소년들은 열기캠프를 다양하게 그려냈다. 오랫동안 함께했지만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친구와 낮은 시선의 풍경과 인사하느라 바빴다. 뷰파인더로 바라본 세상은 신기하게도 그들의 마음과 닮아있었다. 사진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여행자의 마음을 기록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요리하고 노래하라
비전력 요리(로푸드) 생존기를 강의한 ‘요리의 기술’ 워크숍 에선 45명의 참여 청소년이 스프링롤과 오레오컵케이크를 만들었다. 파프리카와 적양배추를 썰고 게맛살을 찢어 라이스페이퍼 속을 채운 해외 기획 부문 ‘YOLO’의 여솔이 청소년은 “향신료에 취약해서 해외여행이 걱정이었는데 오늘 요리 수업을 듣고 난 후 걱정이 덜어졌다. 현지 시장에서 식자재를 사와서 만들어먹으면 될 것 같다. 특별한 장비 없이도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 좋다”고 안심했다.
강의를 진행한 지구별 여행자 ‘파릇’은 재료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요리하는 게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생존의 방식 중 하나인 음식이 문화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음식은 그 자체로 여행의 이유일 수 있으며, 그 나라, 그 지역의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고 섭취할 때 비로소 그 사람마저 이해하게 되더라는 여행담도 들려줬다.
국내 비기획 부문 ‘동갑내기’ 박수연 청소년은 “요리하면서 ‘지금 여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내게 맞는 음식을 찾아내고 그 맛을 음미하며 표현하는 게 생각보다 소중한 일처럼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비상식량 레시피를 아는 것만큼, 음식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것은 자존을 보듬는 작업과 다름없었다. ‘요리의 기술’이 길희망 참여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이유였다.
같은 시간 ‘음악의 기술’ 워크숍 은 ‘소풍작곡’을 목표로 진행됐다. 가장 먼저 나눈 것은 작곡법이었다. 화성악을 전혀 모르는 이조차 코드진행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정서를 즉흥연주와 스캣 창법으로 오롯이 체험할 수 있었다.마음을 담는 멜로디, 리듬을 우쿨렐레와 셰이커, 멜로디언 등의 소품악기와 풀어내는 시간은 참여 청소년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느끼는 대로 흥얼거려도 괜찮구나, 알아채는 순간 예상외의 노래가 탄생했다.
수업 내내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내 기획 부문 ‘내나라강원도’의 제이크는 “음악은 나의 고등학교 생활을 지속시키는 굉장한 동력이다. 음악 없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다. 음악은 납작한 시간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외따로 떨어진 사람들을 한데 묶어줄 수 있어 좋다”면서 즐거워했다. 자발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여행길에서 만난 친구와 음악으로 더 가까워지게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워크숍을 진행한 ‘하즈’는 노래를 만드는 과정이 여행에서 느끼는 여러 정서를 잘 담아내도록 도울 거라고 이야기했다.긴장을 풀고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노래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바람처럼 참여 청소년들은 누구도 누락시키지 않고 서로를 담아 멋진 소풍노래 합주를 이뤄냈다.
또 다른 여행자인 선정 단체 교사를 위한 워크숍도 별도로 진행됐다. 지역과 여행자가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공정여행에 대한 이해와 사업수행 가이드를 논의하는 교사 워크숍은, 청소년의 자발적 여행을 안전하게 이끄는 일정과 멘토링,회계 정산 방법 노하우를 담고 있었다. 따로 또 같이 진행된 여행의 기술 워크숍은 이미 ‘함께 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여행의 기술 워크숍을 마치고 청소년들은 그간의 작업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정성들여 만든 음식과 집중해서 포착한 유쾌한 순간 그리고 이 설렘이 담긴 노래. 사진과 요리 PPT와 음악발표회는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서먹했던 청소년들을 끈끈하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협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들의 잠재력이 만든 시간이었다.
안전한 여행을 위하여
이튿날인 6월 5일은 한국응급처치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안전교육심폐소생술(CPR)과 AED 사용법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챙겼다. 안전교육을 통해 참여 청소년들은 여행이 의외성과 모험의 현장이라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여행이란 위험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여행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보물찾기와 단체사진 촬영을 마치고 1박 2일 동안의 열기캠프 모든 일정을 끝냈다. 활짝 웃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곧 펼쳐질 그들의 여행이 궁금하다. 기획 부문 10개 팀과 비기획 부문 5개팀이 국내외로 떠날 여행은 열기캠프처럼 따뜻하고 순수하며 즐거울 것이다. 흥미진진한 여행의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글 우승연 | 사진 임다윤, 이동훈
[길 위의 희망찾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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