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人의 글] 내냥소(내 야옹이를 소개합니다) 시리즈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서른 살 백수와 학교 명물 고양이 이야기
서른이 되고 며칠 되지 않은 1월, 근근이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썼다. 마땅히 오라는 곳도 없었고 특별히 모아놓은 재산도 없었다. 그냥 멈췄다. 긴 시간 동안 삶은 경쟁의 연속이었고 끝없는 레이스였다. 입시경쟁, 취업경쟁, 또 계속 되는 무언가를 위한 경쟁들…. 경쟁의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29살은 사춘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멈췄다. 그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향해 뛰지 않고 걸어가고 싶었다.
물론 그땐 이것이 2년여의 백수 생활의 시작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를 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달리 특별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는 뭐든 저렴했다. 밥도 저렴했고 1500원 이하의 커피숍이 세 군데나 있었다. 물론 냉난방과 인터넷이 구비된 무료 도서관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학교는 산천은 의구한데 인적은 간데 없으니…… 아는 이 하나 없는 나는 그냥 혼자 우두커니 벤치 앞에 앉아 있었다.
낮 익은 그 녀석이 다가오다
부루퉁한 얼굴로 다리로 모으고 앉은 녀석은 이제 웬만한 복학생보다 고학번인 오래된 학교 고양이였다.
사실 그간 이 녀석과 나와는 특별한 교류는 없었다. 그저 아는 얼굴일 뿐이었다. 도서관 앞을 왔다 갔다 하면 화단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녀석을 스쳐 지나가며 볼 뿐이었다. 녀석은 왠지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어느새 도서관 앞을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 앞에서 나는 녀석과 함께 졸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출처 : 고얌이 페이스북
어떤 때는 멈추고 늘어지게 누워서 게으르게 뒹굴거려야 보이는 것이 있다. 아니, 그래야만 자세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눈에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을 응시하고 마주 볼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고양이를 지나가던 길에 봐왔다. 근데 누가 녀석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하고 사는지, 가끔 안 보일 때는 어디를 가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 후 녀석을 한동안 따라 다녔다. 녀석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저스틴, 엑스관 고양이, 엑스관 뚱땡이 등등 녀석을 살갑게 부르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학교 등산로로 운동을 다니시는 아주머니는 사골을 고은 곰탕을 녀석을 주려고 싸오셨고, 엑스관 앞에는 녀석을 위한 사료통과 밥그릇이 있었다. 언제 밥을 줬는지 기록하는 수첩도 있었다. 수첩에는 이 녀석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들이 많은 학생들로부터 적혀져 있었다.
오랜 사춘기(?) 끝에 나는 아름다운재단에 왔고 학교를 떠났다.
떠나던 날 녀석은 그윽한 눈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보게나, 가끔은 뒹굴거리게나. 하늘도 보고 주변도 볼 수 있게. 그리고 가는 길에 캔이나 한 통 주고 가오”
참고로 녀석은 무려 페이스북도 하는 고양이다(고얌이 페북보기click).
안타깝지만 태풍 볼라벤이 왔었던 그 날 이후…. 녀석은 더 이상 학교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 고양이와 놀던 서른 살 백수는 아름다운재단 일꾼이 되었고, 이제 사무실 주변 길냥이들을 극진히 보살피는 케어테이커가 되었다.
여기서 잠깐! 케어테이커(caretaker) 란?
자발적으로 지역 내 길고양이를 돌보고, 나아가 중성화수술 등을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보살피는 자원봉사자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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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함께 ‘길고양이 무료 TNR지원(자세히 보기)‘을 진행중입니다. 길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 지원 및 길고양이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예방백신, 귀청소, 구강검진 및 치료, 수술기간 중 입원까지 무료로 지원합니다. 아울러 ‘카라의료봉사대(자세히 보기)’ 활동을 통해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보호받고 있는 고양이들에게도 동일한 보살핌을 제공합니다.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사업에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