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즐거운 보육공간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이 문을 연 지 벌써 5개월째가 됐습니다. 지난 1월 아름다운재단과 이주민인권운동단체 ‘아시아의 창’이 함께 손을 잡고 새로 문을 연 곳이지요.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홍보팀 간사 박효원입니다. 이런저런 일로 여러 번 들락거렸더니, 드디어 아이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됐고 심지어 각각의 개성도 파악하기 시작했답니다. (하하) 우리 친구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제가 관찰한 4월의 어느 하루를 살짝 보여드릴게요!

# 오전 8시 반

8시 반 즈음부터 하나둘씩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눈이 크고 예쁜 사라(가명)는 보기와 달리 행동이 완전 말괄량이 ‘상여자’지만 아침에는 조용합니다. 집에서 한국어를 잘 쓰지 않기 때문에 바로 조잘조잘하지는 않는대요.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사라. 그래도 열심히 배꼽인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제일 늦게 문을 연 지민이(가명)는 샘이 많아요. 곧 동생이 생기는데 큰일 났네요. 선생님이 아기 인형을 자주 안겨주면서 오리엔테이션(?)을 시키고 있지만, 동생이 태어나면 부모님의 관심을 끌려고 아기처럼 행동하겠지요. 지민이가 생애 첫 시련을 잘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힘내라, 지민아~

# 오전 10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꽃을 바라보는 아이들

날이 좋아서 근처 놀이터로 나갑니다. 아시겠지만, 아이들과의 외출은 정말 힘들지요. 아이들을 일일이 갈아입히고 신발도 신긴 뒤 손을 꼭 잡고 나갑니다. 특히 승우(가명)는 손을 꼬옥 잡아야 합니다. 타요버스에 꽂혀서 버스를 볼 때마다 자꾸 차도로 달려나가려 하거든요. 승우는 뭐랄까… 딱 호기심 많은 강아지 느낌이에요. 놀고 싶고 놀고 싶고 또 놀고 싶고…

놀이터에 풀어놓은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개미도 관찰하고 나비도 쫓아다니고 놀이기구도 섭렵하면서 사방팔방 뛰어다니네요. 새 어린이집에서는 외출이 훨씬 편해졌어요. 높은 계단이 있는 낡은 건물 3층에 세 들어 살던 시절에는… 말도 마세요. 밖으로 나가는 데만 3명이 필요했답니다. 한 명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고, 한 명이 아이들을 한 두명씩 데리고 내려오면, 한 명이 건물 아래서 아이들을 지켜야 했거든요. (눈물 주르륵)

그 시절을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나들이는 참 힘들어요. 어린이집 마당에 놀이시설이 있다면 아이들이 바로 틈틈이 나가서 놀 수 있을 텐데요. 마당에는 미끄럼틀 형태의 비상대피로가 있어서, 아이들이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설치하고 그네도 단 뒤에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바닥을 새로 깔면 미니 놀이터가 된답니다. (기부자님들의 관심 꼭 부탁드려요!!!!)

# 낮 12시

식사 하는 아이들

점심시간입니다. 오늘 메뉴는 카레에 김치, 도토리묵, 브로콜리 볶음, 토마토무침이에요. 기특하게도 아이들이 브로콜리나 토마토도 잘 먹네요. 하지만 예전에는 채소를 전면 거부하는 편식쟁이들도 많았답니다. 아무래도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부모님들은 너무 바쁘고 또 육아 정보도 접하기 어렵다 보니 균형있는 식습관을 갖기 어렵거든요.

배상윤 원장 쌤은 아이들 음식에 신경을 아주 많이 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걸 먹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유기농 식재료를 고집하세요. 몇 년 전에 어떤 곳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를 기부해주시기로 했지만 싫다고 하셨대요. 우리 아이들은 동등한 아이들이고 신선한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요. 그 곳에서도 뜻을 이해하셔서 후원금으로 함께 해주고 계세요.

# 낮 1시 반낮잠자는 아이들

낮잠 시간입니다. 잠든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평화롭네요. 사실 얼마 전까지 더 많은 아이가 함께 낮잠을 잤습니다. 돌도 안된 갓난쟁이들이 여럿 들어왔거든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린이집을 그만뒀어요. 부모님들이 아이를 본국에 돌려보내기로 하셨거든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아이를 기르는 게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다 보니 일반 어린이집에 가면 50만 원에서 최대 90만 원 가까이 비용이 들어갑니다. 보험이 없다보니 아이가 한번 폐렴이나 장염으로 입원하면 그 비용도 어마무시하지요. 게다가 노동시간도 만만치 않습니다. 9시 퇴근이 기본인데, 이런 잔업은 선택사항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 아기를 맡겼던 부모님은 그래도 아기랑 떨어지기가 싫으셨어요. 그래서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을 찾아왔지만, 6시에 퇴근할 직장을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해요. 게다가 최근 이 지역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부쩍 심해졌거든요.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하면서 희망에 가득 찼던 어머니는 결국 “선생님, 죄송해요”라면서 눈물을 쏟아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원장 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저도 먹먹했고요. 이런데, 갓난쟁이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요? 아이가 눈에 밟혀서 어쩌나요?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모님들도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만 많이 있다면, 잔업 없이 아이와 함께 저녁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요?

# 낮 4시

놀이하는 아이들

자유시간이에요. 잠에서 깬 아이들이 다시 뛰어다니네요. 저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로이(가명)는 조금 거칠게 뛰어노는 편이에요. 본국인 베트남으로 돌아갔다가 얼마 전에 다시 입국했는데 넓디넓은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지내다가 돌아왔거든요. 뛰어다니는 품새에서 야생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선생님들은 로이를 특별히 더 챙깁니다. 아직 한국어가 서툴고 한글도 서툰데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니까요. 동생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자원봉사하시는 한글교실 강사님이 오셔서 로이와 수업도 했습니다.

켈상(가명)은 반대로 참 여립니다. 친구들이나 형아가 건드려서 조립하던 장난감이 부서져도 울고, 넘어져도 울고, 부딪혀도 울어요. 선생님이나 손님들에게도 먼저 와서 안기고, 아기들이 자고 있으면 옆에 인형도 놓아주는 다정다감한 아이랍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켈상이지만, 혹여나 학교에서 친구들이 여린 켈상을 놀리지 않을까 선생님들은 걱정도 좀 된답니다. 게다가 켈상은 또래보다 작고 몸도 약하거든요. 더 아기였을 때 곰팡이가 피는 지하 방에서 살면서 여러 차례 폐렴으로 입원도 했어요. ㅠ. 다행히 선생님과 부모님의 노력으로 많이 튼튼해진 켈상. 몸도 마음도 더 많이 자라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했으면 좋겠네요.

# 낮 5시 반

부모님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원장 쌤은 한명 씩 붙잡고 5월 수업계획을 설명해주시네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부모님들과 소통하기 위한 원장 쌤의 전략은 ‘살살 꼬시기’에요. 일부러 간식 시간을 늦추고는 “먹고 가세요” 하면서 매의 눈으로 부모님과 아이의 모습을 관찰하는 거죠. 그리고는 개선점을 찾아내 이런저런 조언도 하고, 관련 동영상을 찾아서 보여줍니다.

아이들을 다 돌려보내고 난 시간은 6시 반. 그러나 선생님들은 이제 다시 업무 시작입니다. 어린이집 운영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물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여러 가지 행정 업무도 하면서요. 최근 선생님들의 가장 큰 걱정은 에어컨입니다. 곧 여름이 다가오는데 아직 에어컨이 없거든요. 땀을 많이 흘리거나 아토피가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더워지기 전에 빨리 설치해야 하는데…

# 그리고 돌아오면서

화초심는 아이들과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한 하루는 평온하고 즐거웠지만, 그러면서도 내내 마음 한 켠이 참 슬펐어요. 이렇게 세상 행복한 얼굴로 웃고 떠들고 뛰어노는 아이들이지만, 조금 더 자라서 학교에 가면 알게 모르게 차별을 겪을 테고, 더 크면 온갖 혐오의 말과 글을 접하겠지요. 국적이 무엇이든 부모님의 신분이 어떻든, 모두 존엄하게 태어난 귀한 생명이고 평등한 존재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님들, 아이들을 위해 밤낮없이 뛰는 여러 선생님, 기꺼이 자원봉사와 기부에 나서주신 분들을 생각하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모든 분이 다 함께 울타리가 되어 아이들을 지켜주시리라, 불평등한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어린이집의 부족한 부분들도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름다운재단도 최선을 다해서 뛰겠습니다. 5월은 우리 모든 아이에게 평등하고 푸르른 달이니까요.

 글 : 박효원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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