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얼마나 안 피워야 끊은 것인가.
담배를 피워보지 않은, 혹은 끊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묻곤 한다. ‘피운 기간만큼 안 피워야 끊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끊었다’는 것이 ‘담배 생각이 나지 않게 됐다’는 의미라면, 담배는 절대로 끊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10년을 피우다가 11년을 끊어도 이따금 불쑥 생각나는 것이 담배다.
원하지도 않는데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이 나서 ‘이러다가 평생 못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잊고 싶은 사람이 있다.
금연 카페에서 읽은 글이다. 물론 여기서 그 사람은 ‘담배’다. 그래서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잊는 것이라고들 한다. 금연의 이러한 속성은 아마 모든 ‘부작위의 결심’의 속성이기도 하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담배가 떠나간 빈자리는 의외로 크다. 담배를 끊기 전에 이 빈자리를 미리 알아두면 금연에 닥쳐서 당황하지 않고 잘 이어갈 수 있다.
금연의 빈자리
첫째, 나의 뇌를 자극하던 약물, ‘니코틴’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니코틴 공급을 끊으면 뇌는 그것을 도로 달라고 짜증을 내거나 초조해한다. 이것을 금단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니코틴 공급 재개를 단호하게 거절하면 뇌는 ‘그러면 니코틴 대신에 다른 것이라도 달라’며 협상을 제안한다. 알코올로 협상이 타결되면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카페인으로 타결되면 하루 한두 잔 마시던 커피를 예닐곱 잔씩 마시게 된다. 이런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약리적 금단현상에 해당한다고 한다.
둘째, 입안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항상 담배를 물고 빨던 입 안이 허전해진다. 이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사탕이나 그밖에 다른 먹을 것으로 채운다. 볼펜을 입에 무는 사람도 있다.
셋째, 곁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술보다 덜하긴 하나 담배 역시 사회성의 도구의 하나다. 일 하다가, 아니면 회식 자리에서 얘기하다가 사람들이 담배 피우러 몰려 나가 사라질 때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어야 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런 빈자리를 예상하지 못하고 마주하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는 공허함에 당황하기 쉽다. 우선 빈자리를 메우는 행동 – 약물을 대체하거나, 입을 채우거나, 혼자 있지 않으려 하거나 – 에 몰두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빈자리는 오히려 선명해지기만 한다. 이럴 때에는 차라리 자신 곁으로 온 빈자리를 기다려 맞이하는 것이 좋다. 뇌가 뭐라도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구나, 입이 허전하니 빨고 싶구나, 다 어디 가고 나 혼자 앉아 있구나, – ‘내 그럴 줄 알았지’ – 하고 말이다. 다행히 시간은 기억의 편이 아니어서, ‘내 그럴 줄 알았지’ 하다 보면 기억은 옅어지고 빈자리는 어느새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써볼거당 (글쓰기) 프로젝트’로 진행됩니다. 간사들의 일상 속 다양한 시선, 생활의 기술/정보를 기록하고 나누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