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들고,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공익활동,  특히 ‘시민참여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공익활동’ 지원을 핵심가치로 합니다.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B 지원사업은 시민사회단체 및 풀뿌리 단체의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하고자 합니다.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B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평택평화센터’는 청소년들과 함께 어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대추리 10년의 기억을 담은 ‘구술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 2017년 12월 7일 ~ 9일까지 3일동안 10주년 행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현장의 이야기를 보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2017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B 지원사업] 대추리 10년의 기억, 평화로 다시 쓰다 – 평택평화센터

완성된 구술집은 ‘평택 평화센터와 대추리가 함께한 10년 행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평화센터10주년포스터

구술집의 내용 중에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후기를 발췌하여 공유합니다 🙂

나름 담담하게 얘기를 시작하셨으나, 역시 이야기를 풀어 가다 보면 밑에서부터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건가 보다. 말을 해 주시는 중간중간 몇 번이고 눈시울을 붉히셨고, 목이 메여 말을 채 다 끝마치지 못하신 것도 여러 번이었다. 어린 나조차도 할아버지의 밑에서 잔잔히 꿈틀이는 한을 읽을 수 있었다.매양 고된 일을 한 후에는 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 하셨다. 직접 돈 내고 직접 일 해서 일군 땅과 가꾼 작물을 하나도 거두지 못하고 빈손으로 고향을 나와야 했다고 하셨다. 말도 안 된다며, 제삼자마저 분통을 터트리게 하는 그런 일이었다. 픽션이라고 해도 믿어 의심치 않을 것만 같은 부조리함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대추리 주민들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러니 그 심정을 내가 어찌 감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헤아리고자 하는 마음도 먹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바지 밑으로 언뜻 드러난 할아버지의 발목은 눈이 내린 양 희었다. 그러나 그와 대비되듯 검게 그을린 팔이며 얼굴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이 먹고는 할 수 있는 게 쭈그리고 앉아 테레비 보는 것밖에 없다며, 당신은 그러기 싫으시다고 매일 부지런히 밭에 나간다고 하셨으니 할아버지의 근면함은 더 말해 봐야 입이 아플 정도이리라.할아버지 댁의 창고에는 여러 농기계가 있었다. 이주하며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텐데도, 할아버지는 평화마을까지 그 농기계들을 데려 오셨다. 농기계들이 있으니 그냥 놀 수 없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다. ㅡ여기서도 엿볼 수 있는 할아버지의 근면성실함. ㅡ 나에겐 그것들이 할아버지가 아직 끈을 놓지 못하신 것처럼 보여, 괜스레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졌다.할아버지 자택의 화단엔 다양한 식물들이 숨쉬고 있었다. 과수원과 수목원을 합친 것마냥 다양한 식물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바깥쪽에는 무궁화가 피어 있었다. 무궁화. 우리 나라의 국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여.” 법정 마을로 인정받지 못한 평화마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라 때문에 그런 수모를 겪어야 했음에도 나라를 버릴 수 없으셨던 걸까? 정원 한 쪽에 곱게 핀 무궁화를 보니, 또 형용못 할 꿉꿉하고 먹먹한 기분이 몰려왔다. 머리 위에 옅은 구름이 드리워진 듯한 기분이었다.인터뷰 진행이 이렇게 감정 소모가 심한 일일 줄 누가 알았겠던가. 눈물이 유난히 헤픈 편이기는 하지만, 인터뷰 도중에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할아버님이 중간중간 감정을 억누르시는 모습을 본 것이 눈물샘을 자극했나 보다. 인터뷰를 끝낸 후에도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한 상태로 있었다. 떫은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앞으로도 가끔씩 대추리가, 할아버지가, 그 때의 내가 느꼈던 온갖 꿉꿉하고 화 나는 감정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것 같다.

행사 방문 및 관련 궁금한 사항은 평택평화센터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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