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세월호 참사 등 여러 사안들이 터질 때마다 기웃기웃 열심히 활동하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두 활동가가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제주에 내려가 ‘제주 4.3’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주변에서는 새로운 도전이라며 응원도 했지만 또 육지에서만 평생 살아온 두 사람이 제주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지, 단체를 잘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도 한가득 했습니다. 주변 분들의 걱정과 응원 속에서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를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으로도 선정되었습니다.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도전을 시작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제주다크투어를 만드는 은주, 가윤. 의외로 둘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급하게 한 장

제주다크투어를 만드는 은주, 가윤. 의외로 둘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급하게 한 장

강정마을에서 시작된 인연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활동가가 된 은주는 천주교인권위원회라는 인권단체에서 7년여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등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고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반대’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 같지만, 알고 보면 주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 곁에 함께 해 온 사람입니다.

2012년 3월,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안에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2년 3월,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안에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지역 현장을 알아야 국제연대도 가능하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태국으로 각국을 돌아다니던 가윤은 외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참여연대에서 활동했습니다. 백남기 농민 사건, 세월호 참사 등 인권 침해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유엔에,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한국에서 활동가로 처음 만난 현장인 강정마을이 가윤에게는 첫사랑 같은 곳입니다. 국제사회 활동을 하다 보니 국내의 이슈를, 지역의 현장을 잘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한국 인권실태를 국제 사회에 알리러 유엔에도 갔습니다

한국 인권실태를 국제 사회에 알리러 유엔에도 갔습니다

이런 두 사람이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다가 만났습니다. 차분하고 침착한 은주와 발랄하고 통통튀는 가윤이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의아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은 어느덧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같이 제주를 여행하고 영화도 보러 가고 데모도 같이 하고 밤을 새우며 수다도 떨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이 함께 제주 4.3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강정은 4.3이다’

육지에서만 자란 두 사람도 사실 제주 4.3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면서 가끔 주워들은 게 전부였지요. ‘강정은 4.3이다’는 문구를 보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70년 전에 일어난 4.3이 왜 지금 강정과 같다고 하는 걸까요. 두 사람은 사드를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 집에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으로 우익들이 나타나 행패를 부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 4.3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진상이 온전히 규명되지 않은 것이 현재의 많은 인권 문제가 일어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 방문했던 동광리 큰넓궤 동굴. 4.3 당시 주민들이 피신해 있다가 학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동광리 큰넓궤 동굴. 4.3 당시 주민들이 피신해 있다가 학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선배들을 따라 4.3 유적지들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제주 곳곳, 4.3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많은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과거의 역사, 잘 봉합된 상처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사건입니다. 조부모와 부모들이 살아낸 시간이자, 그 가족들이 공포에 억눌려 쉬쉬하기도 하고 사회적 해결에 대한 엄두를 내보지 못하고 지내온 세월이기도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념과 연좌제에 막혀 너무 오랫동안 제주 안에 고이고 맺혀있던 이 응어리를 충분히 말하고, 말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또 우리가 4.3을 알아갔듯이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이 제주의 진짜 이야기,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더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라는 단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70년의 어둠을 걷어내는 길

제주다크투어는 제주도 곳곳에 있는 4.3 유적지들을 함께 방문하고 기록하고 지켜나가려 합니다. 제주에 오시는 많은 분과 함께 제주 4.3 유적지들을 찾아다니며 제주의 역사와 사람살이를 이야기하고 제주 4.3을 널리 잘 알리려고 합니다. 제주다크투어도 요즘 제주 4.3과 제주 역사, 문화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중이예요. 읽고 또 읽어도 아직 배울 것이 많지만 또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즐거움도 함께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제주 4.3에 대해 알리는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이 아닙니다. 시기마다 제주 4.3을 위해서 헌신했던 주체들이 있었고 특히 제주 사람들의 헌신이 항상 있어왔지요. 우리가 하는 활동은 앞서 여러 사람이 만들어놓으셨던 노력과 헌신이 없었으면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아시아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시아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제주다크투어는 제주 4.3을 넘어, 아시아 국가폭력 피해자들과도 연대하려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도 제주 4.3과 같은 대규모의 국가폭력이 많이 있었고 그 피해자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요. 이러한 이야기들을 국내에 알리고 연대해나가는 활동도 함께 해나가려 합니다.

두 활동가의 용기, 응원해주세요!

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 1차 발표, 그리고 최종 발표가 난 후, 제주다크투어는 제주 4.3 때 희생된 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4.3 평화공원 위령공원을 찾아가 향을 피웠습니다. 아직 서툴고 미숙하지만 3만 영혼들의 뜻을 기리면서 잘 해낼 수 있도록 지켜봐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서울에서의 안정된 일을 접고 제주에 내려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낯선 곳에 새로 정착도 해야하고 낯선 사람들과도 어울려 일해야 하고 모든 것들을 우리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습니다. 4.3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 긴 시간, 슬픔의 무게를 우리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겁도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제주 4.3을 알려나가고 이를 통해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믿음이 저희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제주 4.3이 해결되고 기억되지 않으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제주다크투어의 용기를 응원해주세요. 제주에서 잘 정착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시고 때로는 칭찬도, 잘못 나아가고 있을때는 쓴 소리도 아끼지 말고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주에 오시는 모든 분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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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안녕하세요~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 입니다

글 l 사진 제주다크투어

<2017 변화의시나리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 신규 지원단체로 선정된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 4·3과 같은 국가 폭력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사회 만들기를 단체 핵심정의로 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1%나눔 기부자와 함께 <사회참여와통합사회영역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변화의시나리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은 시민참여를 단체활동의 토대로 삼고, 지역과 사회 각 분야에 발생하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적 공익활동을 펼치는 개인 또는 그룹을 찾아 이들의 단체 설립과 초기 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합니다. 향후 이들이 건강한 단체로 성장해서, 해당 분야에서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시민사회 역동을 만들어 내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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