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낙상예방 보조기구 지원사업 가정 방문하던 날

이옥분(가명) 할머니의 반지하방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헬스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긴 운동기구. 다리 운동으로 근력을 키우는 이 기구는 이옥분 할머니의 ‘인생템’이다. 할머니는 “내가 매일 두 번씩 이걸 타. 한번 탈 때마다 100번씩 타. 딱 마음에 들어”라고 자랑을 한다.

2017 노인 낙상예방 보조기구 지원사업

2017 노인 낙상예방 보조기구 지원사업 선정자와 상담중인 경기도보조기구북부센터 박소예 연구원


“할머니, 매일 운동하시나 봐요.”

“잘 때마다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저거를 타야 해. 타면 조금 나아.”
“할머니, 사용법은 기억나세요? 이거 하실 때 안 힘드세요?”
“그럼~ 요리 틀면 높이도 조절되고 조걸 돌리면 덜 뻑뻑하고. 내가 다 알지. 내가 중앙대에서 27년 동안 청소를 한 사람이야. 아무 걱정 없어.”
“실버카도 쓰세요?”
“잘 써. 내가 맨날 그걸로 (동네를) 돌고 있지.”

수십 년 대학을 다닌(?) 할머니는 실버카나 변기안전 손잡이 등 지원받은 다른 보조기구에 대해서 사용법을 빠삭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미리 씻어놓은 포도와 비타민 음료를 권하는 모습에서 꼿꼿한 할머니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할머니에게 ‘유모차 번호’를 적어드린 이유

지난 9월 말 아름다운재단 이형명 간사와 경기도보조기구북부센터 박소예 연구원은 ‘노인 낙상예방 보조기구 지원사업’을 통해 기구를 지원받으신 어르신들을 찾아갔다. 지난 7월 기구를 설치할 때 만나 뵌 뒤 2달 만의 방문이다.

설치할 때도 꼼꼼하게 어르신들의 상황에 맞게 기구를 조절해드리고 사용법도 알려드렸지만, 사업 관리는 그걸로 끝이 아니다. 기구들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또 불편하거나 모자란 점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보강해야 한다. 보조기구를 통해 어르신들의 삶이 더 나아져야 사업의 진정한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에 꼼꼼한 사후관리 방문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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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방문이 “정수기 판매 같다”며 간사들은 농담처럼 말했는데, 실제로 공통점이 꽤 많다. 일반 회사들이 “고객의 만족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 한다”고 외치듯이 아름다운재단도 어르신들의 더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 그 하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뛴다. 이 사업의 ‘VIP’고객은 바로 200여명 어르신인 셈이다.

사실 이 사업의 ‘고객 관리’는 쉽지 않다. 많은 어르신들이 기구 사용법을 어려워하시고 또 쉽게 잊어버리신다. 알려드려도 “그런 거 필요 없다”면서 ‘마이웨이’를 고집하시는 경우도 많다. 또 워낙 아끼고 안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기에 보조기구들도 아껴서 고이 모셔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날 찾아간 다른 가정의 김순례(가명) 할머니가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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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완전 보배에요. 너무 좋은 거라서 교회 갈 때만 써요. 비오면 안 쓰고. 녹슬면 안 되잖아.”
“할머니, 이 실버카는 좋은 거라서 비와도 녹 안 슬어요. 더 쓰세요.”
“쓰긴 쓰는데요. 내가 좀 아끼느라고.”

김순례 할머니는 실버카를 아껴서 사용하지만, 그래도 외출 빈도는 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무래도 외출이 늘지. 내가 자랑삼아 (실버카를) 가져가요”라고 했다. 고급 사양의 실버카가 자랑스러우신 게다.

기대보다 말끔한 실버카를 보면서 맘이 아프지만 “고장 나면 고쳐드리니까 마음 놓고 쓰세요”라고 권해드리는 것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이렇게 기구를 아껴두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서 미끄럼 방지 신발이나 지팡이를 2개씩 드리고 있다. 김 할머니도 다행히 그 중 하나는 아끼지 않고 열심히 사용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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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기구 사용법도 다시 알려드렸다. 실외 지팡이 접는 법, 실버카 브레이크 사용법과 바퀴 잠금 버튼 사용법 등을 시연하고 실습까지 마쳤지만, 할머니가 잘 기억해주실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김순례 할머니는 경증 치매를 앓고 있다.

“할머니, 쓰다가 모르실 때는 여기 스티커에 있는 번호로 전화하세요. 음… 전화번호 글씨가 좀 작네요. 제가 다시 크게 써드릴게요. 할머니, 이 차를 뭐라고 부르세요?”

“음… 그거? 유모차.”

정식 명칭 ‘실버카’가 아니라 할머니의 표현대로 ‘유모차’라고 적은 메모, 매직펜을 찾아 적은 굵고 큰 글씨에는 최대한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작은 노력이 깃들어있다.

어르신들 삶의 낙상까지 함께 고민합니다

가정방문은 자연스럽게 각종 민원상담으로 이어졌다. 어르신들은 “다른 약도 많이 먹는데 기억력 감퇴 예방약을 먹어도 되느냐”, “곧 재개발인데 임대주택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등등 여러 질문을 던졌다. 간사들도 관련 정보를 알려드리면서 전방위적 사후관리에 나섰다.

2017 노인 낙상예방 보조기구 지원사업

그러나 간사들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날 마지막으로 방문한 박정심(가명) 할머니는 보조기구를 열심히 사용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균형감각 저하로 인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 할머니는 “얼마 전에도 지팡이를 놓고 변기에 앉으려고 돌아서다가 넘어졌다”면서 “그래도 (넘어지면서) 지팡이를 붙잡아서 좀 다행이었다.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험 때문에 할머니는 바깥출입이 부족하고 사회관계도 좁다.

“병원 가서 꼭 검사 받으세요. 그럴수록 실버카로 다니면서 운동 많이 하셔야 해요”라고 연신 권하는 간사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도 “보조기구로는 해결해드릴 수 없는 부분인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라며 고민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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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조기구 너머의 문제까지 걱정하는 간사들을 보면서, 이 사업이 궁극적으로 예방하려는 ‘낙상’은 결국 단순히 물리적 넘어짐만이 아니라, 삶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부딪히는 인생 전반의 낙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노인 낙상예방 보조기구 지원사업 가정방문은 이런 삶의 낙상을 줄이려는 노력의 현장인 셈이다.

이 같은 노력들이 더욱 널리 퍼져 우리 어르신들이 여생 동안 지속적으로 사회의 사후관리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옥분 할머니가 운동기구로 근력을 키우고, 김순례 할머니가 비오는 날에도 아낌없이 실버카를 쓰고, 박정심 할머니가 여러 의료지원도 함께 받아서 활기차게 동네를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행복한 어르신들이 많은 사회. 노인 낙상예방 보조기구 지원사업은 그 변화의 작은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

글 박효원 l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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