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의 홀로서기, 보조기기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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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보조기기센터 최미나 보조공학사 인터뷰

대구광역시 보조기기센터 최미나 보조공학사

최미나 보조공학사는 지난 7년간 대구광역시 보조기기센터에서 ‘아름다운재단 장애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을 수 차례 맡은 베테랑이다. 대구광역시 보조기기센터는 2010년 개소했는데, 그는 바로 이 해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센터에 들어왔다. 그리고 2012년 센터가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의 수행기관이 되자마자 실무를 진행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덕분에 그는 아름다운재단 간사 못지않게 오래 이 사업을 지켜봤다. 전국 광역센터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협업구조를 만들고, 일관된 서류 양식과 가이드북 등의 시스템을 갖추게 된 사업의 변천 과정들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 그는 “사업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변했다. 현장의 자율성도 많이 인정해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혼자서도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삶, 보조기기가 가져온 변화

그러나 최미나 보조공학사에게 이 사업이 각별한 것이 시스템 때문만은 아니다. 사업 자체가 가진 차별성이 중요하다. 그는 아름다운재단 사업은 신청했다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전했다. 다른 단체들에 비해서 경제 기준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장애아동 가정이 저소득층이나 차상위계층이 아니더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업이다.

“사실은 오히려 저소득층 가구가 보조기기를 많이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지원해주는 곳이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아주 부유하지 않은 일반 가정에서라면 보조기기가 많이 부담스럽죠. 우리 사업에서 지원하는 품목만 봐도 목욕시트가 본체만 70만원이고 추가부품까지 하면 100만원이에요. 유모차나 기립보조기기도 200만원이 넘고요. 아이가 자라면 또 새로운 걸 사야 하고.”

기준이 까다롭지 않다고 해서 심사 절차가 만만한 것은 절대 아니다. ‘맞춤형’ 사업의 특성상 담당자는 적어도 3~4번씩 장애아동과 만난다. 센터 방문접수시 기초상담, 현장 방문평가, 기기 납품 및 사용자 훈련, 만족도 조사를 빠짐없이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에게 맞춰 보조기기를 전달하기에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복잡한 과정은 어찌 보면 장기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장애아동과 여러 차례 만나기 때문에 신뢰를 형성하고 현장의 수요를 파악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최미나 보조공학사는 각 장애아동의 사례를 되도록 꼼꼼히 메모해놓는다. 비장애인 아동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장애 아동청소년의 욕구도 계속 바뀐다. 장애 상태가 달라지기도 하고, 생애주기가 바뀌기도 한다. 한 번의 보조기기로는 이런 수요를 충분히 맞출 수 없다. 무엇이 더 필요할지 살피는 현장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보조기기가 단순히 신체적 불편만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보조기기는 장애아동들에게 자존감과 자립의 기반이다. 보조기기를 통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보조기기가 ‘존재의 변화’를 만드는 셈이다.

“중증마비인 학생이 있었어요. 엄마가 집에 없으면 가만히 앉아서 또는 누워서만 지내요. 그런데 보조기기를 통해서 기립이 되니까, 엄마 없이도 책을 읽을 수 있고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게 된 거에요. 다른 사례는 이제 막 2차성징이 시작된 남학생이었는데 여성 활동보조인이 화장실을 따라오는 게 너무 부끄러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보조기기를 통해서 혼자 소변을 보게 된 거에요. 한 번 상상해보세요. 이런 변화는… 단순히 신체기능이 좋아진 것 이상이죠.”

보조기기 너머의 삶… “종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물론, 현장에 늘 이런 감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원이다. 재원은 언제나 부족하다. 지난 2015년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지만, 아직 현장의 변화는 체감되지 않는다. 그나마 좋은 정책과 지원은 수도권에 집중돼 대구까지 오지 못한다.

센터 한 곳 또는 보조공학사 한 명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현장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변화는 멀게만 느껴지고 가끔씩 지칠 때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절박한 사정 때문에 이런 센터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아동 당사자나 부모님들과도 어려운 소통도 해야 한다. 최미나 보조공학사는 “마음이 단단해져서 이제는 잘 상처받지 않아요”라면서 편하게 웃었다.

그는 “(신청을 받아보면) 보조기기가 필요하지 않은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신청자를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구시 보조기기지원센터는 당사자나 보호자의 의지가 강하고 기기를 사용하기 좋은 환경일 때 우선적으로 보조기기를 지원한다. 그래야 기기가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랜 시간 사업을 진행해온 그에게도 아직 딜레마다.

“정말 힘든 환경이 있어요. 조손 가정인데 할머니가 안고 다니기에는 아이가 너무 커요.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이다 보니 유모차를 지원해드려도 사용하기 힘든 거죠. 또 아이를 제대로 치료시키기에는 너무 지쳐버린 한부모 가정도 있어요. 근력운동을 도와주는 보조기기를 지원해드리면 좋을텐데, 어머니가 이미 마음을 놓으신 거에요.”

그래서 그는 이 사업에 바라는 점이 참 많다.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하는 보조기기 품목이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더 많은 장애아동들이 지원을 받도록 보조기기 센터가 없는 지역까지 지원사업의 범위를 확산했으면 좋겠다.

사회에는 더 바라는 것은 더욱 많다. 장애아동이 보조기기를 통해 자존감과 희망도 회복할 수 있도록 보다 종합적인 서비스가 이뤄지면 좋겠다. 보조공학사이면서도 보조기기 너머 장애아동의 삶 전반을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 맞춤형 사업의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장애아동이 준 성찰일 것이다. 장애아동들과 함께 보낸 세월만큼 단단해진 그는 이렇게 당부했다.

“장애인 당사자도 독립된 사회의 일원이 되려고 스스로 마음먹어야 해요.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무시당해온 터라 ‘난 어차피 안 돼’라고 생각할 때가 많죠.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장애 당사자나 부모님에 대한 심리 지원도 병행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보다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이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비장애인 분들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아직 보조기기가 뭔지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은데, 보조기기는 장애인의 신체 일부를 회복시켜주는 것이고 몸의 일부분입니다. 이런 가치를 많이 알아주시고 기부도 많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박효원 l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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