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배우 송혜교 씨는 한 주얼리 회사와 ‘초상권 무단 사용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는 이 소송을 시작하면서부터 “배당금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지원하겠다”면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금을 낸 것이다.

그리고 이 기부금은 그의 바람대로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하는 권진아(가명)씨의 희망이 되었다. 주얼리에서 시작된 기부가 어느새 새로운 주얼리, 빛나는 꿈으로 이어진 셈이다. 대학에 진학한 진아 씨는 한창 졸업전시회를 여느라 바쁜 예비 디자이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2년째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는 장학생이기도 하다.

일상, 집, 가족… 그가 빛내고 싶은 행복들


‘주얼리’라고 하면 왠지 화려하게 빛나는 느낌이지만, 직접 만나본 진아 씨는 무척이나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그는 “예쁜 것도 좋지만 실용적인 디자인이 더 좋아요”라고 말했다.

특별한 날에만 쓰는 액세서리보다는 매일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액세서리가 더 좋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있는 듯 없는 듯한 단순한 디자인. 장식 요소가 많기보다는 깔끔하게 절제된 미니멀 스타일. 그러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느낌.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물건들. 이런 것들이 그의 마음을 끄는 디자인이다.

아마도 이러한 취향은 진아 씨의 삶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하루하루의 소박한 일상과 가족, 집이 참 중요한 것 같았다. 그가 바라는 행복, 자신의 작품으로 더욱 빛내주고 싶은 삶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이번 졸업 작품만 봐도 그렇다.  금속 소재라면 꼭 주얼리 작품이 아니어도 되는 이번 전시에서 그는 금속 벽걸이 시계와 촛대를 출품했다. 오래 고민하다가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한 작업, 그 결과물은 모두 생활소품이다. 그는 “전 내 집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봐요”라며 웃었다. 작가님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요청했다.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clock]

“시계는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라는 제목인데요. (시계에 붙어있는) 스누피가 집 위에서 꿈을 꾸고 있어요. 꿈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잖아요.”

가족의 품으로 [candlestick]

“촛대는 ‘가족의 품으로’예요. 전 어릴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지냈는데, 요즘에는 좀 분위기가 좋아져서 만나는 횟수가 늘었거든요. 언젠가 가족들이 완전체로 모였다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벌써 모두 판매가 끝났다. 전시를 마치면 누군가의 집에서 어떤 가족들의 일상과 함께할 것이다. 그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는데 작품이 팔리니까 너무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서다. 판매 상황을 전해주는 그의 입꼬리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돈 많이 드는 전공…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이제 모든 학업을 마치고 디자이너로 날아오를 날만 남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예술 분야가 다 그렇듯 디자인도 꽤 돈이 많이 드는 전공이다. 그래서 애초에 전공을 선택할 때부터 고민이 많았다는 진아 씨다.

처음 이 길을 꿈꾼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시설에서 진행된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미술의 매력에 푹 빠졌고 섬세한 자신의 성격에 잘 맞을 것 같아서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으로 골랐다.  이 길을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당연히” 해봤다.  무엇보다 돈이 걱정이었다.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시설 선생님들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면서 지지해주었다.

그의 걱정대로 학업에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작품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공구와 재료를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계를 사용해 모양을 다듬어가는 모든 단계에 돈이 들었다. 수업 1개에 드는 돈은 대략 50만 원. 1학기에 전공을 4개 정도 들으니까 작품 제작 비용만 200만 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진아 씨는 그럴 때마다 시설을 떠나면서 받은 자립정착금과 모아놓은 후원금 등을 조금씩 꺼내 학업에 썼다. 그리고 최대한 아꼈다. 은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좀 더 싼 황동을 샀다. 은을 자르다 나온 가루는 알뜰히 모았다가 다시 녹여서 재료로 썼다. 좋은 공구를 살 수 없어서 사포로 일일이 마무리 작업을 했는데 힘이 많이 들고 결과물도 성에 차지 않았다.

아름다운재단 장학금을 받으면서 그는 은도 더 많이 구입할 수 있었고 새 공구도 살 수 있었다. 작품이 더 빛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학금을 통해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책도 사고 영어 강의도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진아 씨의 마음도 함께 빛났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생긴 또다른 변화가 있다. 친구들이다. 아름다운재단 장학생 행사를 통해 진아 씨는 비슷한 상황을 겪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함께 동아리 활동도 했다. 학교에서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혼자서 그는 많이 외로웠다. 힘들어도 말할 사람이 없었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잘된 모습만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저랑 같이 장학금을 받는 친구들이나 언니∙오빠들은 저에게 가족 같은 느낌이에요. 뭔가 마음 속이 찡한…. 그걸 뭐라고 해야 하지? 울컥하기도 하고. 하여튼 친구하고는 다른 의미에요. 그 이상이고, 오래 보고 싶은 사람들이죠. 각자 하는 일들을 보면 너무 자랑스럽고 응원해주고 싶고. 저한테는 큰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디자인은 사치? 정말 재미있다면 시도하세요”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이미 썼고 지금은 작품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있다. 되도록이면 디자인의 폭이 넓고 급여 조건도 좋은 외국계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실용적인 성격답게 계획도 매우 현실적이다. 청약통장에도 저축을 많이 하고 결혼자금도 모을 생각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살고 싶다.

그걸로 끝은 아니다. 언젠가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 학교에서 창업과 연계된 수업을 들었는데, 자신이 디자인한 작품들을 다른 사람들이 사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직장 생활을 5~6년 하면서 경험을 쌓고, 그 뒤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창업을 고민해볼 계획이다.


자신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는 후배들을 향해 진아씨는 이런 조언을 건넸다.

“’이런 환경에서 디자인이라는 것은 사치’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정말 재미있다면 시도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면 다른 친구들과 경쟁하게 되는데요.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생각을 잘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진아 씨가 만드는 주얼리는 아마 무척 단순하고 소박하겠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울 것이다. 좋은 날에도 슬픈 날에도 함께 할, 마치 가족처럼 친구처럼 내 삶을 지켜줄 무언가. 진아 씨가 꿈꾸는 행복의 모습이 담길 테니 말이다.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진아 씨의 눈이 주얼리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글 박효원ㅣ사진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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